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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13. 일원상의 신앙 I

최명찬 | 2009-03-18 01:36:32

조회수 : 2,431

 13) 일원상의 신앙1.hwp (119.5K) [33] DATE : 2009-03-18 01:36:32
 

신앙은 무엇입니까?

일원상의 신앙은 절대라고 합니다.

일원상의 신앙에서

이 절대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식과 일원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자식과 일원상 중에 하나를 취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식을 취하지, 일원상은 못 취하겠지요?

그렇게 하면 신앙에서는 절대가 안 됩니다.

일원상과 내 몸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죽어도 이것만 된다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얼마만큼 우리가 신앙의 대상을 절대화할 수 있겠는가?

언어도단의 입정처라는 이 비어있는 마음을

무엇하고도 바꾸지 않을 그런 신앙이 있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옛날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지막 득도를 하시는데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이렇게 하늘에서 게송이 들려옵니다.

여기까지 반은 깨쳤는데, 그 뒷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이렇게 소리를 내는가 보았더니 ‘마구니’ 입니다.

마구니가 어디서 들었는지 그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뒤에 게송을 더 얘기 해 달라” 고 하니,

마구니가 “그러면 너의 몸을 주겠느냐? 내가 너를 잡아먹어야 하겠는데

네 몸을 주면 내가 그 뒷말을 해 주겠다.” 고 합니다.

부처님은 도를 구하는 마음이 절대이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 낭떠러지 끝에 서서 떨어져라.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라. 

천 길이나 높은 거기서 떨어져라.” 하고 마구니가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도를 구하기 위해서

천 길이나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참 어렵습니다. 신앙의 절대화!


나무가 있는데, 내가 지금 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밑은 천 길 낭떠러지입니다.

스승이 옆에서 “손 놔라.” 하십니다. 놓을 수 있겠습니까? 놓기 어렵지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천 길 낭떠러지에 탁 섰습니다.

“내가 여기서 떨어질 테니 그 마지막 게송을 들려 달라.” 하고

벼랑 끝에 서서 죽을 준비를 합니다. 그것을 듣고 죽기 위해서.

마침내 그 마구니가 게송을 말합니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여기까지 내 쉬고,

“몸을 떨구어서 죽는 대가로 다음 것을 들려준다.” 하고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그 말끝에 부처님께서 도를 탁 깨치셨습니다.

이제 약속을 했으니 떨어져야지요.

도를 깨쳤으니까 목숨을 바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낭떠러지에서 탁 떨어집니다.

그 때 마구니가 연꽃으로 변해서 떨어지는 부처님을 떠받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앙의 절대화를 이끌어 내려면

내가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을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던져버릴 수 있는 만큼 얻게 됩니다.

나는 어느 때 어느 순간이라도 일원상이라는 법신불 사은님께서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달라” 고 했을 때

다 던져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신앙의 절대화입니다.


이것이 성립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서

부처가 되려고 수행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진리 앞에 다 던져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요구도 다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절대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일원상 신앙을 해나갈 때 이런 절대성!

내 모든 것을 요구하면

다 던져버려야 얻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서원이 구족해서

용맹스럽고, 지혜 있는 자만이

자신을 던져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마음 경계 하나도 못 던지잖아요.

이제 일원상 진리를 신앙하는 우리는

일원상 진리를 내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는 신심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본래 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 신앙의 절대성을 이제부터 조금씩 배워봅시다.

  • 구인 선진님께서 목숨을 내 놓으셨듯이
    신앙은 믿음이요.
    믿음이 있으야 신성에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자 즉 신성이 참나가 주인공 노릇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보통사람은 자신의 관념과 육체가 주인인지
    착각 속에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희로애락에 젖어 살고 있지요.
    개신교에서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봉사 우선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 가슴이 열리도록 눈물을 많이 강조합니다.
    때문에 탁자를 치며 울며 소리내며 자신의 잘못을 용서바랍니다.
    가슴이 열리면 신에 더 가까이 다가 갈 수가 있죠.
    불교,원불교는 좌선으로 단전에 힘을 주하는데 신성에 가까이
    가려면 가슴을 열어 드려야 하는데 많이 미흡하죠.
    그래서 요즘 불교에서는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를 열심히 하다 보면 가슴이 열리고 감사의 눈물 즉 자신의 내면의 눈물을 많이
    흘리게 되면 절대적 신앙인 신성에 다가설 수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3보(스승,법,비젼)가 일체가 되어야 하듯이 믿음에 신성에 다가서는 지름길은
    인성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 해 봅니다. 참 나을 사랑하며 한 걸음 실천하는자만이
    얻게 되리라.
    일반적으로 너가 참아라! 참아서 될까요. ,..../
    김형안 | 09-03-18 12:34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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