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민이’의 똑똑한 법문(法門)
얼마 전에 초등학교 학생이 된 '후민이'는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예쁜 아이입니다.
후민이는 예횟날이면 어김없이 엄마아빠를 따라 교당(敎堂)에 오는 정말 착한 어린이입니다.
지난 주 교당 지하1층 어린이 법당 앞을 지나다가였습니다.
“후민아, 이제 학교에 다니게 돼서 좋지? 얼마나 좋아? 후영이형처럼 학생이 됐으니..... "
나를 보자 얼른 달려와 살갑게 매달리는 후민이를 보고 물었습니다.
“반절은 좋고, 반절은 안 좋아요!”
“그래?”
나는 후민이의 대답에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얼른, ‘네, 참 좋아요!’라고 대답해 올 줄 알았는데, 후민이의 대답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너무나 예상 밖의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어정쩡해 진 채로 다시 물었습니다.
“새 친구들도 많이 생겨서 좋지? 친구들은 몇 명이나 돼?”
후민이는 또벅또박 다부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안 세어봤어요. 한 스무명은 넘을 것 같아요.”
늘 반짝이는 눈빛만큼이나 생각이 남다르고 영특한 후민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법당으로 올라오면서 나는 후민이의 대답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보았
습니다. ‘반절은 좋고 반절은 안 좋다’는 말이 재미있기도 했고, 또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가감 없이 비춰내는 후민이의 맑은 마음거울이 얼마나 예뻐보이던지요. 또, 후민이의 말을
곱씹어 볼수록 마치 세상사를 깊게 통달하여 그 것들의 호오(好惡)의 진상(眞相)을 꿰뚫어
말 해주는 무슨 법문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어쩌면 후민이는 아직 학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간 학교에서 이미 다 알고 있는 한글을 다시 처음부터 '가나다라' 하며
가르치고, 또 벌써 오래 전에 읽었을 ‘호랑이를 타고 산 속을 달리는 소년장군 이야기’
같은 것을 다시 들어야 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학교가 반쯤만 좋다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또 나에게서 그런 상투적이고 재미없는 우문(愚問)까지를 들어야 했으니.....
하지만, 느낀 그대로 어린이답게 거침없는 현답(賢答)을 들려준 후민이가 얼마나 예쁘고
귀엽던지요. 나도 후민이처럼 그렇게 맑고 탁 트인 마음거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후민이를 보면 나는 지금 제 엄마아빠를 따라 중국 베이징에 가 있는 우리 둘째 손자가 떠
올립니다. 순진하고 귀엽고 또 무척 영리해 보이는 얼굴모습이랑 조리 있는 밀솜씨와 표정
들까지 꼭 우리손자 수환이와 참 많이 닮기도 했지만, 어쩌다 교당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꼭 우리 손자처럼 얼른 달려와 매달리는 후민이가 그렇게 살갑고 예쁠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