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서
처가쪽 사촌되는 언니네 딸 결혼식에 갔다.
뭐 거기까지 갔느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요즘 세상살이가 처가 쪽으로 자꾸 가까워지는 것 같다. 더욱이 그 언니는 처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성품이 참 좋은 분이고 원불교를 신앙할 뿐 아니라 나도 잘 알고
지내는 분이다.
그런데 결혼 주례를 목사님께서 하시고 진행도 모두 기독교식으로 하는 것이아닌가.
평소 생각에 결혼 당사자들은 같은 종교를 신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고 집안까지 같은 종교라면 더더욱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온 터라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불편하고 어쩌다 저렇게 만났을까 하고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신랑의 행동이 어떤지, 생김새는 어떤지, 시댁 부모님
모습이 인자하신지 어떤지 뜯어보면서 앞으로 신부가 종교로 인해 고생 안하고 잘 살아야 할텐데 하며 안 해도 될 걱정을 혼자 속으로만 하게 되었다.
식을 마치고 식사를 하면서도 그 생각이었다. 그런데 순간 한 마음을
돌려 보니 내가 종교라고 하는 상에 집착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삼동윤리를 배우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종교, 한 인류라는 큰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가? 이러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내가 이렇게 남의 종교에 대해 속 좁은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부터 좀 더 이해하고 넓은 마음을 갖고 상대를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점차 편해졌다.
인사차 온 신랑 신부의 행복해 하는 모습과 인자하신 시댁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스스로 종교의 틀에
나를 묶고 안 해도 될 걱정을 했는지 나를 한 번 더 되돌아 보았다. 세상은 모든 다름으로 이루어지고
이 다름 속에서 조금씩 양보하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개인끼리 불화하고 국가간에
전쟁을 하고 세상은 시끄럽지 않는가?
정산종사님의 인화가 제일 큰 기술이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가족에게,
가까운 인연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늘 만나는 교무님과 교도님들께 내가 먼저 가슴을 열어야겠다. (정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