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崇禮門)을 지나오며
숙 산 김 성 규
오늘, 광화문(光化門)과 대한문(大漢門) 앞을 지나오면서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지척(咫尺) 간의 저들 사이가 어찌하여 저토록 멀어져야 하는지.... 또, 서로 등을
돌려대는 저 거리의 함성을 들으면서 숭례문(崇禮門)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
을지.... 여간 마음이 착잡하지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자기중심(自己中心)이 서면 결코 아무렇
게나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글쎄다.
봄은 씨앗을 잘 고르고 곱게 심어 가꾸려는 농부에게 먼저 다가온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도 보다 의롭게 뜻을 가다듬고 보다 새롭고 의연한 모습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조금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서로 뜻을 함께 하지 못
하고 등을 돌려댈 이유가 따로 있을 리 없건만.... 과연 우리에겐 그런 기회와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정(正)과 사(邪)를 분명히 하고....
그리하여, 더 넓고 크게 우리의 희망과 꿈이 빛을 발하는 광화(光化)와 대한(大漢),
그리고 숭례(崇禮)의 거리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마치 낯선
이국(異國)처럼만 느껴지는 도심(都心)속 거리를 돌아보며 많은 상념(想念)이 오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잘 못된 생각과 허황한 욕심의 끝은 언제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법,
문제는 나를 더 많이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너와 내가 화(和)하고, 우리 모두가
화(和)해서 만화(萬和)를 이루어 이 거리를 화합(和合)과 상생의 요람으로 거듭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꿈이 있는 사람은 오늘 하루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성공은 늘 많은 인고(忍苦)의 시간을 거쳐서 온다고 하였다. 현자(賢者)들은 ‘나를
버리는 것이 곧 더 큰 나를 이루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남쪽에서는 밝은 봄꽃소식이 한창이라는데.... 그런데, 황량해만가는 나의
심사(心思)는, 그리고 차창(車窓)밖 말 없는 숭례문의 단청(丹靑)에 자꾸만 눈이 더
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