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선물
이선조(순주 교무)
오늘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구나! 새벽기도와 선을 마치고 마당에 나가 보니 고요함 가운데 하얀 속살을 대지 위에 내보였다. 내가 자고 나온 황토법당 지붕위에도. 통일을 염원하며 세워둔 첨성대 모양의 마음 성찰대(省察臺)에도 신부 옷처럼 하얗게 눈이 내렸다.
눈을 쓸 교무님들의 노고가 보이는지, 오원님이 눈이나 쓸어드리고 가려고 그런다며 빗자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원님이랑 같이 눈을 치웠다. 원마을 13단지 입구에서 12단지 버스 타는 곳까지 길을 냈다. 오늘도 이 길로 출근한 사람이 있는지, 크리스마스 새벽미사에 나간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발자국이 두서너 개나 있었다. 처음에는 법당 주위 디딤돌과 갑판 부문만 쓸어 볼까 하던 맘이 커져서 위아래로 길게 쓸어가니 길이 길게 뚫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일찍부터 수고하시네요.” 하고 칭찬을 했다. 마을사람들에게 선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은 우리가 산타가 되었네요.” 우리는 느낌으로 보람을 공유하였다. 13단지에서 내려오시는 노신사 한 분이 원불교에 다니려면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으셨다.
“그냥 오시면 되지요.”
열기찬 응답이 나왔다. 정자동으로 일요일마다 9시, 11시 중에 오시면 됩니다.
“정자동은 멀고요 여기로 나올 수는 없나요?
“일요일 저녁 8시에 오세요."
“그리하겠습니다.”
"선생님 존함은요?"
"이종o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이 교무입니다."
내가 이곳에 살려면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어야겠다. 그래, 눈이 오면 눈길을 쓸고, 추운 날엔 따뜻한 차, 더운 날엔 시원한 차 한 잔이라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1일 판교주민들 바당바위 해맞이 행사에 따뜻한 가래떡 한 가락씩 공양해 볼까? 생강차 한 잔을 공양해 볼까?' 새로운 화두가 떠오른다.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람 있게 주고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12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법회를 보아야 하나 하는 화두 속으로 마음의 선물 보따리가 들어 왔다.
(2012.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