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교구 신년하례식 인사말씀
올해는 닭의 해 입니다. 닭은 어두운 밤에 새벽을 알립니다.
우리 원불교인들에게 새벽의 의미는 예불을 올리고 선을 할 때 ‘나는 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이 우주의 주인이면서 이 우주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우주 존재의 모든 요소는 각자 각자가 자기 우주의 중심에서 자기 우주의 주인이 되어 자기 삶을 노예로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 여기에 우리의 공부와 수행의 길이 있습니다.
태산이라고 하는 거대한 산 앞에 우리는 보잘 것 없이 보여서 우주의 중심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미물 중생은 하나 쯤 사라져도 이 우주는 끔쩍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태산이라던지 우주라던지 하는 그 거대한 것은 우리의 관념이 갖고 있는 이름의 허상입니다. 실상은 돌맹이 하나, 흙 한줌, 바위하나, 모래 알갱이 하나,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물 한방울, 공기 분자 하나, 이런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모여서 거대한 태산이라던지 우주라던지 하는 관념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거기에서 어느 돌맹이나 어느 풀 한 포기를 중심이 아니라고 다 없애버리다 보면 태산 전체가 우주 전체가 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니 모래 알갱이 하나가 태산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모래 알갱이 하나라는 미미한 존재로 살다가 선정에 들어 나로부터 벗어나 보면 우리의 실재는 우주의 중심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입정 상태 그대로 우주의 중심에 머무는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살아 가는 것을 무시선 무처선이라고 합니다.
생태적으로는 저녁에 잠드는 것이 입정이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출정인데 우리는 새벽에 육신이 출정하면 정신은 무시선 무처선으로 되돌아 가는 입정을 다시 하자는 것이 수도의 길이 됩니다. 하루 일과를 아침 선정 시간에 느낀 우주의 중심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이 무시선 무처선을 하는 하루의 삶입니다. 그러므로써 우리가 우주의 주인으로서 우주의 중심에서 우주를 돌리고 우주의 방향을 틀기도 하고 우주를 운전하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살게 됩니다.
법계의 터럭 끝이 바로 법계의 중심이고 시골 산간의 작은 암자가 우주의 중심일 수 있고 물결의 파도 한 가닥이 바로 대해의 중심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는 수도가 깊은 경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돌이 물소리를 들으면서 무무역무무 하는 심경은 땅을 기어 가고 있는 지렁이도 그럴 것입니다. 모든 미물이 우주의 중심에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선정에 든 존재임을 알면 우리가 지렁이보다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는 절대 평등의 소식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땅 바닥을 기고 있거나 푸른 하늘을 날고 있거나 우주의 미물 중생 모두가 우주의 중심에서 자기 삶을 운전하고 관리하고 자기 인과를 지어갑니다. 각자가 각자의 삶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닥치는 고난과 파란을 잘 헤치고 극복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우리가 이 우주를 어떻게 운전해 가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운전대를 잡는 순간입니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우리는 이 세상에 영문도 모른채 내 던져진 존재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견해는 우리는 우주의 한 구석에 버려진 존재라는 느낌이 있어 산다는 것이 별로 희망도 안 보이고 신나지도 않는 견해입니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고 내동이쳐진 존재도 아닙니다.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귀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닭의 해를 맞이해서 제가 올리는 신년 인사입니다. 올해 각 자의 모든 서원에 큰 성취있으시기를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교의회 의장 조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