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분당교당
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맵
분당교당비전 어린이마당 청소년마당 단회 보고서 자료실
  • 자유게시판
 
작성일 : 2016-06-07 01:53
애절한 고사
 글쓴이 : 이선조
조회 : 3,133  

고 사

아버지, 떠나신 지 49일이 되어 저희들이 종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살다가 어느 날이 되면 아버지 전에 고사를 올릴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저희들한테 이런 날이 이렇게 급히 올 줄은 모르고 그저 철없이 살았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면 아버지는 어느 틈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시고, 애들 노는 것을 보며 장난을 걸고 웃으시고, 런닝과 파자마 바람으로 금방 담배라도 한 대 피실 것 같고, 어디 나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됐다고 거절하시기도 할 것 같고, 엄마 따라 밭에도 나가 불편한 몸으로도 물을 옮겨주고 뭐라도 하실 것 같은데, 이제 저희들이 아버지, 하고 부를 아버지가 없네요.

제가 어릴 때 떠오르는 아버지 모습은 동넷일 본다는 자부심이 있고, 사람들하고 유쾌하게 한잔 하시면서 농담을 하시고, 논에서 일을 하시고, 그랬던 모습들입니다. 제가 더 어릴 적에는 엄마속도 많이 상하게 하신 모양이지만 제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는 뭔가 신나게 웃고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계시는 모습입니다.

제가 3학년 때인가요? 방학 동안 외가 동네에 가서 주산을 배워온 제가 기특하셨던지, 온 동네 담배밭들을 나가실 때는 저를 수행비서라도 되듯이 데리고 나가셨지요. 동네 아저씨들 이름을 적고, 각자가 키우기 시작한 담배 모종들을 고랑마다 수를 세게 하고, 집에 오면 그 밭들의 모종수를 줄줄 부르시며 주판을 튕기게 하시고는 합을 낸 걸 흐뭇하게 들여다보고 하셨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덕분에 제 머릿속에는 온 동네의 지도와 거기 사시는 한 분 한 분의 아저씨들 이름이 윗담부터 아랫담까지 골목 깊숙한 집들까지 모두 들어 있었어요.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 사건이 별스런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저는 그렇게 세상에 대해서 뭔가 내가 내 뜻을 가지고 인정받으며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는 감사한 마음을 얘기해 드리고 싶어섭니다.

그래도 금방 제 기억은 고등학교 일학년으로 건너뛰고, 전주로 학교를 가게 되었다고 자랑스런 마음에 저를 데리고 학교 앞까지 가보시고, 하숙집을 정해 주시고, 그 근처를 걸어다녀봐야 지리를 익힌다고 저를 데리고 근방을 돌아다니셨던 기억이 나네요. 1 담임 선생님을 뵙고 가시는 길이라고 복도 창문 밖에 서 계셨던 아버지. 뛰어나갔지만 아버지한테 짧게 인사만 드리고 아버지 가는 뒷모습을 쳐다봤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제가 생전 못 보던 초록색이 도는 체크 비슷한 윗옷 반코트 같은 걸 입고 계셨어요. 그 옷이 생소하기도 하고 그때 막 재미있게 읽기 시작한 영국 탐정소설 주인공 같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학교에 오신다고 멋을 내주신 아버지한테 뭔가 쑥스럽지만 감사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그 장면을 그렇게 오래 기억하는 건 어쩌면 그 옷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제가 많이 그립던, 걸어다니시던 아버지의 뒷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1, 가을이 지나갈 때 아침부터 심란한 마음이 오락가락하다가 학교가 끝난 오후에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랑 엄마가 전주 예수병원에 가셨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다는 비보를 듣고, 그 때부터 일 년 내내 아버지 누워 계시고 엄마 간병하시던 전주 예수병원에 있었습니다. 다리에도 팔에도 거의 전신에 나사를 끼워 박고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계시고 수술하고 수술하고 또 수술하고. 주말에 엄마한테 가서 아버지랑 우리 셋이 병원에서 찌개 하나 끓여 놓고 밥을 먹을 때, 뭔가 암담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병원이라도 부모곁이니까 좋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반항도 못하고 원하는 것도 없이 그저 아버지가 딱하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저희들 성장할 때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언성이 높아질 때 한 이삼년 전부터 건강이 더 안 좋아지며 볼꼴 못볼꼴 다 본다고 엄마랑 작은언니가 힘들어 할 때도 저는 그저 우리 딱한 아버지,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엄마한테도 말씀드렸지요. 나는 운도 좋다고, 아버지 나를 이뻐만 하시더니, 이상하게 아버지 제일 힘들고 아프실 땐 나는 마주치지도 않고 그만해지면 얼굴 보게 되어서 밥도 먹여 드릴 수 있고, 손도 잡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나는 복도 많은가 보다고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며칠간은 왜 그렇게 손이 잡고 싶은지 밥 한 술만 떠 먹여 드리면 좋겠는지, 그게 무슨 마음인지 그러고 싶어서 울었습니다.

 

지난 118일 새벽 다섯 시에 작은 언니한테 위급한 전화를 받고 제생병원으로 가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 가시나 보다, 아무것도 못해드렸는데 그냥 이렇게 가시나 보다, 이게 끝인가 보다.

이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계시면서 너무나 안 좋은 때도 여러 날 여러 번 있었고, 좀 괜찮은 날도 있었고 그러다가 이젠 아무렇지 않은 분마냥 말짱한 몇 달이 있었지요. 그러다가 지난 가을 겨울부터 점점 안 좋아져서 겨울이 되면서부터 몸이 안 좋아 온식구가 걱정중이었습니다. 그러던 때라 울면서 병원으로 갔고, 중환자실을 올라가 계실 때도 이렇게 삶을 끝내시는가 보다 여기며 들여다보기 안타깝게 그렇게 사경을 헤매고 손발이 묶여 계시기도 하고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며 그런 시간을 보내셨지요.

어느 날은 아버지를 만나러 갔더니, 문을 열어 달라고 저 문 하나만 열면 나갈 수 있겠다고 정신을 놓으신 듯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 때는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사시는 게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거라면 그만 가셨으면 하는 그런 불효한 마음도 먹었습니다.

그래도 갑자기 저를 알아보시는 듯 바라보시며, "내가 인제 죽지는 않겠다."하셔서 그 말씀이 또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했던지요.

일반병실로 옮겨 계시다가 26일에 설을 바로 앞두고 퇴원하셨지요. 그리곤 엄마가 아버지 곁에서 매일매일 아버지를 지키셨어요. 혼자 계시면 엄마 너무 힘들고 지치실까 봐 요양보호사를 붙여 드렸는데, 그 때부터 두 달 동안 아버지는 좋은 날들과 안 좋은 날들 그냥 그런 날들을 왔다갔다하시며 병상 생활을 하셨습니다.

아프신 것도 한 두 해 일이 아닌데도 이제 치매에 뇌경색 판정까지 받으신 데다, 그간에도 몸고생으로 힘드신 것은 반평생에 가까우신 일이라 늘 많은 약을 드셨고, 몇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수월하지 않게 살아오셨지요.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천도법문을 읽어드리며, "이 세상에서 아버지 영가가 선악간 받은 바 그것이 지내간 세상에 지은 바 그것"이라고 할 때 차마 자녀로서 안타깝고 애달파서 아버지 인생이 두고두고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요. 아버지가 저희를 알아보시지도 못하다가 드시는 것도 신통치 않고 몸에 오른 열도 내리지 않고 계실 때, 어느 순간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먹어졌습니다. 사은님 뜻대로 하소서. 지금까진 아버지가 아프시면 낫게 해 달라고 건강을 위해 기도했지만 아버지를 이렇게 계속 붙잡고 있다가는 엄마도 너무 힘들고 저희들도 지쳐서 아버지 어디 먼 병원으로나 보내고 싶어지고 인간 도리도 못하는 비정한 자식들 될까 봐 이제 그만 가실 거라면 편안하게 가셨으면 싶어졌습니다. 아버지 죄송해요. 그렇게밖에 마음을 낼 수 없었어요. 사은님 뜻대로 하소서, 건강을 주시려거든 어서 일어나 봄날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실 수 있도록,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가실 거라면 편안한 마음과 몸으로 가실 수 있도록 살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인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정견을 가지고 대도를 따라 가셔야 할 텐데 우리 아버지 법연도 맺은 거 없이 평생 사시고, 바깥 활동을 못하고 살으셨으니 성격으로나 포부로나 이 세상에 품은 뜻도 원대하게 있었을 텐데 사내대장부로 살지 못하고 평생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시느라 세상에 공적도 없이 가실 텐데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열반하시고 나면 내 목소리라도 듣고 독경 한 줄에라도 마음을 실으셨으면 좋겠는데, 그렇게라도 길을 밝혀 드리고 싶어서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법문을 읽어드리기 시작했지요. 천도품을 봉독하기 시작하면서 벌써 저는 속이 쓰리고 목이 메여서 몇 번씩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수심결을 읽고 정전으로 돌아와 몇 곳을 봉독했지만 그것도 아주 많이 못해 드려서 아쉽고 죄송합니다. 봉독하다가 아버지 뭐하시나 침대 위를 올려다보면 주무시다가 어느 틈에 눈을 번쩍 뜨고 그 상태로 오래오래 계실 때도 있었어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 싶으면서도 제 바램이 아버지곁에 도움이 되기를 우리 아버지 걸어가실 그 길에 무언가 빛이 보이도록 인도하는 그 무엇이 되기를 바래서 계속 봉독했어요.

아버지 가시고 다시 그 천도품을 수심결을 읽으며 제가 얼마나 또 그 시간 그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던지요.

그래도 아파 누워 계실 때에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속상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천도재를 지내며 이거라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니 인생 참 신기하고 이상합니다. 저한테는 이제 신앙이라는 게 제 인생의 빛처럼 되었는데 우리 아버지한테는 그것을 맺어드리지 못해서 그것도 마음에 남습니다. 종교생활을 하셨더라면 가는 길이 너무 서럽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지 않았을까 마음 한 보따리 잘 챙겨간다고 더 편하게 가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고 아쉬울 뿐입니다.

 

아버지, 그 날 아침 아버지 몸이 천천히 식어갈 때 큰언니도 막내도 모두 아버지 손을 만져보았다가 얼굴을 만져보았다가 저희들 모두 그렇게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엄마한테 제가 말씀드렸지요. 우리 너무 서럽게 여기지 말자고. 제가 고1때 사고가 나고 이제 28년이나 되었으니, 아버지 엄청나게 많이 버텨주신 거라고요. 엄마가 아버지 아프실 때마다 나 혼자 어떡하라고, 막내는 키워야지. 하셨다가 그 다음에는 애들이나 다 결혼시키고 가지, 하셨다가 이제 이렇게 막내가 서른 중반을 넘기고, 막내네 애가 둘이나 크고 있으니 아버지 정말 많이 오래 잘 버텨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늘 사랑으로 보아주시고 믿어주시고 우리 옆에 이렇게 오래 아프시면서도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파 계실 때는 이러다가 가시겠다 싶어서 더럭더럭 겁도 많이 났어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내 얼굴은 보고 가시겠지, 나한테 무슨 귀한 말씀 한 귀는 남겨 주시겠지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 것도 다 부질없는 욕심이고 철없는 꿈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막상 가시는 날 아침에는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전화로 아버지 호흡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한테 편하게 가셨다가 편하게 오시라고만 하고는 고마웠다고밖에 말씀을 못 드리고, 사랑한다 이런 말따위는 아버지한테 해보지 못한 딸이라 마음은 그래도 말은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길로 영영 떠나시는 줄은 모르고, 내가 달려가면 우리 아버지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차를 타고 달리며 어느 순간부터 이제 우리 아버지 못 보겠다 진짜 못 보겠다, 가신 것 같다 싶어지며 나이가 이렇게 먹었는데도 어린아이 아버지 잃은 듯이 서럽고 애달웠습니다.

사람이 철없기를 앓고 누워 계실 때는 이렇게 가시려나 하면서도, 정작 가시는 한 순간은 너무나 허무하게 아무런 약속도 없이 그냥 그렇게 그 순간 운명이 달라지는 걸 이렇게 모르고 살았어요.

 

아버지,

우리 아버지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생이 아프고 괴로워서 고단하셨을 텐데 일흔여섯 해를 사시고, 아버지를 떠올릴 많은 일들을 남겨주시고 떠나시니 감사합니다.

성품을 논하며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사를 준비하며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는 한 분으로 사셨지만 우리 일곱 자식한테는 일곱 개의 달로 이런 저런 모습을 각각 다 비춰주고 가셨을 거를 생각합니다.

말로는 저를 이뻐하셨다고 제가 말하지만요, 제가 어려서 몸이 약했으니 아버지 마음이 기우셨을 테고, 어느 자식인들 아버지 눈에 예쁘지 않은 놈 있었을까요. 표현하시지 않으셨어도 아버지 가슴 속에 저희들이 다 아깝고 이쁘게 들어차 있었겠지요.

오늘은 저 혼자 아버지를 떠올리며 제 기억만을 꺼내두지만, 저희들이 앞으로 이 생을 살아가는 내내 우리 아버지가 이랬다고, 우리 아버지가 그 때 이러셨다고 저희들이 웃기도 하고 아버지 흉내도 내며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이어가겠지요.

언제 그러셨었죠? 농사는 지어 놓으면 남의 논이 훨씬 더 잘되 보이는데, 자식들은 바라보면 내 자식 만한 놈들이 없다고요


 
 

Total 1,175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지적소유권 법적조치 ----- 소유권이 … 관리자 2011-12-02 51251
공지 아이디 또는 비빌번호를 잊으셨나요? 운영진 2010-03-05 54688
공지 사진 첨부는 반드시 첨부파일로 올리… 관리자 2008-10-17 53849
공지 본 게시판은 이렇게 사용합니다. 운영진 2008-06-25 58104
공지 홈페이지 사용 방법 FAQ (7) 운영진 2008-06-25 67479
1100 옥탑방 고양이 이선조 2016-08-05 1697
1099 죽도의 회랑 이선조 2016-08-02 1797
1098 무인도 쌍섬을 홀로점령하며 이선조 2016-08-02 1754
1097 피서지의밤 (4) 이선조 2016-08-02 3157
1096 걸인(乞人)을 울린 톨스토이 (2) 김성규 2016-08-01 1780
1095 모두야 꽃이야 (2) 이선조 2016-06-16 5009
1094 "풍류(風流)로 세상을 ...." (1) 김성규 2016-06-15 1616
1093 합창연습 이선조 2016-06-11 3298
1092 법문연마. 이선조 2016-06-08 1621
1091 올여름 휴가 때 일어야 할 책 -. 이선조 2016-06-07 1580
1090 애절한 고사 이선조 2016-06-07 3134
1089 < 맹인의 등불 > (1) 김성규 2016-05-23 1614
1088 .<성남시민 세금지키기> 서명 독… (5) 김인택 2016-05-22 3159
1087 둥실터 봄 나들이 박덕수 2016-05-12 2054
1086 보완 수심결 핵심 (1) 김성연 2016-05-04 704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