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쌍섬을 홀로 점령하며
-물길위의 새벽-
이순주(선조 교무)
새벽산책은 어디서나 싱그럽다. 마치 내 자신이 찬란한 해가 되어 세상을 밝히는 기분이 든다. 아침선禪은 바닷가 바위에서 하기로 하고 일행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갈매기떼가 부지런을 떨며 아침 먹거리를 만들고 동료를 부르고 있었다. 어젯밤 들어 왔던 물이 빠져나가고 고르게 밭고랑을 친 듯 모래밭이 정갈하게 펼쳐져 있다. 물이 가득 찬 바다도 아름답지만, 물이 다 빠진 바다도 아름답고 기품이 있다. 마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넘어서 담담하게 세상사를 살아낸 지덕겸수의 준엄한 품격을 갖춘, 고품격 갯벌바다의 아침이다. 정년퇴임하고 마지막 길에서 수도원생활을 하는 언니들 같은 모습이다. 일상을 수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왔을 뿐인데, 원불교 역사를 정결한 은혜문화로 만들고 있다. 한 인간의 삶이 조개 한 개의 작은 존재일지라도 하늘과 땅, 조수 내왕이 한 기운으로 우주 속에서 위대한 생명을 만들며 공존한다. 조건없이, 끊임없이, 조수 내왕의 정성과 여여함을 간직한 자연의 거대하고 위대한 힘을 마음껏 품어서 갯벌이 된 바다는 열심이 나갔다 들어왔다 할 뿐인데, 위대한 생명체의 숨결을 만들고 있다. 작은 생명이 갯벌 속의 건축주가 되어 뽀근뽀근 집을 만든다. 작은 고기들이 파도가 남겨 놓고 간 물속을 지키고 있고, 소라껍질을 머리에 쓰고 옆으로 기어가는 소라게 가 개미떼처럼 움직인다.
멀리 뻘바다를 걷다가 늪에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일행들을 뻘밭 가에 두고 홀로 쌍섬으로 발길을 옮겼다. 쌍섬은 돌과 모래로 육지와 만나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 준 길이다. 그러나 바닷물이 들어오면 섬으로 고립된다. 그곳에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만약에 고립되는 불상사가 있다 할지라도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비옷과 핸드폰 하나만 들고 이 섬 미지의 세계를 가보려는 마음으로 쌍섬을 맨발로 걸어서 점령했다. 그런데 그 성취감은 오히려 나를 두렵게 했다. 섬안에 혼자 있다는 점이 그랬다. 죽음의 점령, 태어남의 길, 인연의 만남도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죽음 길도 이렇게 고요하고 낯설고 언제 시간에 갇힐지도 모르고 업력의 늪에 빠질지 모르는 길이다. 빨리 갔다가 섬 길이 바닷물에 잠기기 전에 돌아오리라는 상념을 몰고 섬에 간지라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홀로라는 생각에 잡혀있다. 1시간이 흐르고 물 들어오는 소리가 커졌다. 육지로 나오는 길에 조개 캐는 아주머니가 갈매기떼 속에서 아련히 보였다. 호미자루까지 물이 차오르는데도 아주머니는 조개를 잡고 있었다. 오늘 같은 고요한 새벽은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도 조개를 캐고 바다가 낸 섬 길의 돌을 따라 걸어 나올 수 있다는 듯이 바딧가에서 사는 삶의 경험을 말하는 듯했다.
인생은 수 없는 경험 속에서 해탈과 자유를 누린다. 인생살이나 수도하는 일도 바다와 같은 것. 성공의 길, 보람의 길, 고지에 이르는 성불의 길도 자연의 조화속이다. 순리대로 공을 쌓으며 살게 되는 삶의 맛이 맑은 날 바닷가의 새벽처럼 싱싱하다. 참 좋다. 핸드폰 답이 없는 인연의 업력을 다 받아 들여야 새 생명이 된다. 양념 맛을 초친다고 느끼는 언어의 사나운 파도 소리도 고요하게 즐기자. 하나로 당당히 자기 사명의 길을 걷자. 바람을 몰고 들어오는 파도소리가 청정하다. (2016.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