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의 회랑
이순주(선조 교무)
실바람이라도 움직이면 씨앗이 날아가 번식의 꽃을 피우는 소득이 있다. 그래서 휴가지에서도 뭔가 찾아다니며 체험하는 여행이 내 스타일이 되었다. 비인에서 죽도까지는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민박집 바람의 커튼 속에서 편히 쉬고 싶은 7학년 전후반에 있는 언니들을 설득하여 차에 태우고 죽도까지 움직였다.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형 전통이 정결하게 느껴지는 지적정원으로 꾸며진 섬이다. 1.7킬로 회랑 지붕 길 따라 섬을 돌수 있도록 해변정원이 꾸며졌다. 진흙 민물에서 자라는 연꽃 연못이 회랑 아래로 피어있고, 골골마다 산수화 주인공처럼 우거진 소나무 가지는 시인의 노래로 태어났다. 잠시 머물며 고서를 읽고 싶은 곳에 도서실이 꾸며져 있었다. 삼삼오오 가족이 바다독서실에 들어가 자연의 독서도 하고, 가져간 책도 읽으며, 마음도 읽는 죽도의 사랑채 손님이 되어 즐기고 있었다. 옛 기화집도 조성하여 자고 갈 객실도 마련했다. 섬 안에 정원분수도 있어 섬이라기보다 벼슬 높은 선비가 하야하여 별장에서 보내는 것 같은 분위기다.
회랑을 따라 걸으며 쉬며 돌고 돌아 처음 출발지가 보이는 장소에 이르자, 분재 화분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집안 뒤뜰에 분재실을 마련해 놓은 듯, 정겨워 성큼 성큼 분재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죽도의 회랑을 돌며 옛 선비의 풍류와 학식을 겸비한 집을 다녀온 듯 평온함을 느꼈다.
일행은 내년에도 또 오자고 한다. 내년에는 좋아하는 책 한 권씩 가져와 읽고, 시조 한 수와 애송시를 낭독하자고 여운을 남겼다. 동굴 안에 마련된 동굴카페가 궁금했지만, 배가 고파서 생선냄새가 물씬 나는 식당으로 왔다. 밑반찬이 즐비하게 나오는 전라도와는 다른 투박한 상차림이었다. 시대에 따라 먹거리도 진실하고 화사하고 품격 있어야 한다. 찾아보면 있겠지만 구경은 하고 먹긴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죽도의 포장마차 촌을 눈으로 둘러보고 무창포로 향했다.
여행에서 감각과 감상으로 얻어지는 여유는 지혜가 되고 지식이 되고 희망이 되는 듯하다. 인생을 여생의 여정이라 했다. 죽는 날까지 여행하며 보살로 살리라.
“허공은 여래(如來)요, 인생은 보살이요, 여수(如水)라.”
허공이 청명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한 희망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이치에 합일할 뿐이다. 죽도에서 보살과 여래와 여유를 얻었다.
(2016.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