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으로 날아가는 새가 되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긴 명창 김소희 님을 지켜 본 이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분이 죽은 후 정말 새들이 춤추며 명창 주변을 배회했다는 이야기이다.
새들의 맑고 청아한 소리와 김소희 명창의 맑고 청아한 소리는 어느 소리가 새소리고 어느 소리가 명창소리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정도로 듣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도 했다가 기쁘게도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영전에 지인을 통해 극락조를 조화로 올렸었다.
오늘 윤선생의 종재식에 하얀 국화와 쪽빛아이리스가 어울리도록 극락조 5대를 꽂아 장식했다.
그가 92세 열반하기까지 6.25참전 때 공군으로 참전하였는데, 직접 사람 죽이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아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내심 생각해 왔다.
나는 극락조의 전설처럼 이제 편안히 다리를 내려놓고 하늘을 훨훨 날아서 극락에 돌아가시라고 기도했다.
언제부터일까? 극락조 꽃을 천도재의 꽃으로 장식하는 버릇이 생겼다.
꽃이라고 말하기는 새부리 같고, 새 머리 깃털 같고, 새라고 말하기는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운 극락조.
이번 겨울은 꽃이 다 말라가는 계절이었다는데 양재동 꽃시장에서는 극락조 꽃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극락조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극락조는 보르네오 섬과 인도네시아 서부 일대,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일대 깊은 숲 속에 산다. 종의 종류가 다양해서 42개나 되는 종이 있다 한다. 크기 또한 차이가 극심해서 참새만한 크기에서 어지간한 거위 크기의 큰 종도 있다.
뉴기니아 원주민들은 이 새의 깃털 가죽을 유럽인에게 팔 때는 날개와 다리를 제거 한 후 팔았다고 한다.
다리가 없는 새는 신을 모시는 새이기 때문에 절대 땅은 밟지 않고 하늘에서 흐르듯 살기 때문이고, 이슬만 먹고 살다가 죽을 때에야 땅에 떨어진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유럽인은 그대로 받아 들여 ‘천상의 새'다시 말해 'Birds of Paradise'라는 이름이 정식으로 주어졌다. 원주민들이 신의 새로 부른다는 극락조의 현지 명을 유럽형으로 천상의 새로 바꾼 이름인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이름을 붙여진 극락조화를 나는 하와이교당 봉불식에 가서 여러 종류의 극락조를 보았다.
한국에서 한대 내지 다섯 대를 한 묶음으로 비싼 가격에 잘 포장 되어야 사게 되는 극락조화가
하와이에서는 정원의 잔디밭 모퉁이마다 피어있으니 꽃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와이교당 봉불식장 빨간색의 정열적인 극락조로 불단장엄을 했었다.
여기저기 축하 단체에서도 극락조로 장식한 화환이 선물로 들어왔다. 어디서나 천상의 새는 환영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 환희심을 나는 여행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윤 선생님은 5남매의 아버지로서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 시절, 월남 파병 등 전쟁시대를 살아오신 분이 한 생을 마감 하실 때 얼마나 한이 많았을까? 가슴 절이는 삶이 심줄을 씹는 듯 질긴 생명력이 삶의 근육임을 느끼게 한다.
그의 아들은 종재식에서 아버지께 올리는 조사를 통해
아버지! 우리들에게 재산 한 점 남겨주지 않아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국립묘지 유공자 묘역으로 가지 않으시고 어머니가 계신 영모묘원에 안치하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버지! 자식들과 자부가 아버지 임종을 지켜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버지! 그 아픈 종양의 통증을 잘 견뎌주시고 죽음의 고통을 감내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아버지! 어리석은 우리 자녀들 용서 못할 일까지 다 감싸주셔서 감사 합니다는 고사를 올렸다.
아버지의 생의 마무리가 자식을 평화롭게 하고 가시는 아버지 삶이 감사하는 듯하였다.
자식은 저마다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후원하다가 부담주지 않고 훨훨 떠나는 삶이 극락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얀 국화 같은 깨끗한 마음을 삶의 지조로 하여 실천으로 자식을 지켜가며,
인간이 죽어갈 때 자식이 부모가 남겨놓은 재산분배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지 않게 해야 하고,
가족이 제사 때나 명절 때 성묘가기 좋을 곳에 안치되어야하고,
마지막 외롭지 않게 자식들의 이별을 받으며 가야하고,
죽어갈 때 추하지 않고 해탈의 품위를 지키며 떠나야하고,
남은 자녀손이 모두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이별의 자리가 인간으로서의 최후 극락이 아닐까?
극락조화를 보며 오늘 종재를 모신 윤선생의 자손들에게 다섯가지 극락을 선물하시고 가신다는 생각에 기분이 명쾌해진다.
극락조처럼 하늘을 허허 하게 날아가는 겨울 끝자락에 선 영혼은 봄기운을 따라 인연 깊은 곳에 다리를 내려놓기 위해 날아 떠나간다.
인생의 봄은 가꿔야 아름답고 자연의 봄은 철을 만나야 따사롭다. 상념에 빠져들며 손에 든 따사한 커피 한잔 속에 나의 지나온 삶도 녹여내 본다. 만물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을 지내야 하듯, 잘 견디며 끝까지 살다 가는 인생의 봄은 다시 따뜻하고 향기롭게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