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도다!
2016년2월 22일 허광윤 분당.
지난 봄의 일이다. 화창한 봄날, 새 차를 구입하여 새로 부여 받은 차 번호판을 달고 집으로 운전하고 오면서 겪은 일을 회상해 본다. 마음에 미리 생각해 둔 차 번호가 있었는데, 나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동차 영업사원이 임의대로 정한 번호판을 등록하여 새 차에 붙여 놓은 것이다. 나름 그 영업사원은 고객인 나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특별히 공을 들여 해 놓은 일이라’ 나의 칭찬을 기대하며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번호는 내가 불길하게 생각하는 번호였으므로 오히려 나는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름대로 친절을 베푼 그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차 번호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아보았더니, 절차가 만만치가 않았다. 한번 등록한 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아서, ‘폐차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차 번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오는 내내 앞서 달리는 자동차의 번호판만 유심히 보면서 투덜거리며, 때로는 나름 좋아 보이는 번호를 보면, 부러운 마음으로 중얼거려가며 거의 두 시간을 운전하여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한가지 깨달음이 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 치는 것이었다. 이 화창한 봄날, 생기로 가득 찬 가로수 길을 새 차로 운전하면서, 나는 남의 차 뒤꽁무니에 붙어있는 매연에 검게 그을린 차 번호판에 코를 박고 쳐다보며 계속 궁시렁대며 불평하면서 운전을 하고 온 것이다. 차 번호는 운전은 물론 차 성능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차 번호가 무엇인가, 단지 차를 식별하기 위해 붙인 바코드 번호 같은 것이 아니던가!. 그런 무의미한 일에 마음을 온통 뺏기어 귀한 시간을 허비하여 버린 것이다. 나에게 친절을 베푼 영업사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여야 도리인 것을, 나는 살아가는데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을 가지고, 오히려 나에게 친절을 베푼 영업사원을 도리어 난처하게 한 일까지 떠오르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오늘 운전하면서 왔던 여정을 나의 일생과 비유하여 보았다.
차 번호를 부여 받게 된 것이 나의 출생이고, 집에 도착한 것이 인생 여정의 종점, 나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여 보았다. 태어나 인생을 살면서 진리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곳에 마음을 두고, 엉뚱한 곳만 쳐다보며 불평하며 삶의 종점에 도착한 것이다. 더군다나 무엇이 은혜이고 아닌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아! 이보다 안타깝고 불쌍한 일이 또 있을까! ‘눈을 뜨고서도 앞을 못 보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아닌가! ‘’아!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이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하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 온갖 부질없는 집착에 굴절되어 참 세상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목표를 가졌을 리 만무하다.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잘못된 생각을 깨닫지 못한다면, 허상만 쫓으며 허우적대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잘못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 집착의 뿌리를 끝까지 찾아서 뽑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 권력, 시기, 질투, 미신, 이러한 것들에 메어서 발버둥치다 죽어가는 것이다. 마치 화창한 봄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새 차를 몰고 가면서도, 바로 코 앞에 가는 남의 차 뒤꽁무니에 붙은, 매연에 검게 그을린 번호판만 쳐다보며 투덜거리며 운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 마음에 그릇된 집착은 없는지, 그 집착은 어디서 왔는지를 고요한 가운데 살펴가며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하는 진리를 구하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그 영업사원에게 차 한잔 대접하여야겠다.
허광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