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시대, 개벽의 시대
문화사회부/문화사업회 주최 ‘원문화의 밤’
홍석현(석원) 중앙일보 회장 강연 전문 녹취록
# 문화, 여기까지 왔구나.
아무 얘기나 해도 된다고 해서 20~30분 정도 오실 줄 알고 얼떨결에 승낙을 했는데 사기당한 것 같아요(일동 웃음) 가벼운 마음으로 (제의를) 받아들였는데 무슨 말씀을 드릴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받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서없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문화사업회의 초청을 받았기 때문에 문화 이야기를 해야 될 텐데, 문화라는 단어가 사실 사람의 수만큼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도 10여 년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재단(유민문화재단)을 갖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문화에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 문화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덜컥 답을 드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21세기는 ‘문화의 세기, 문화의 시대’ 이런 말들을 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이제 ‘영웅의 시대’가 갔다고 합니다. 새로 대두하는 영웅이 있다면 저는 문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날은 처칠과 같은 위대한 정치가도 없고 또 맥아더나 아이젠하워 같은 전쟁 영웅이 태어나는 시대도 아닙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할만한 위대한 종교인이 나오는 시대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인지가 발전을 해서 웬만큼 대단한 인물이 나오지 않으면 그야말로 압도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문화의 세기에는 전 세계를 압도하는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어느 분의 인터뷰 시리즈를 읽고 ‘아, 문화가 여기까지 왔구나’ 생각을 했는데, 혹시 여러분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피카소’이래, 살아있는 화가로서 제일 존경을 받고, 요즘 작품 값이 보통 작품이 2~30억 합니다. 옛날 작품은 몇 백억씩 합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년 2월 9일~)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생한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1960년대 이후 세계현대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사진과 회화, 추상과 구상, 그리고 채색화와 단색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라는 매체를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 편집자 주)가 인터뷰를 했는데,
“이제 영웅은 없다. 다만 문화인이 영웅이다.”(라고 했습니다.) 문화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큰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문화인이 철학, 종교, 정치를 얘기하면 듣습니다. 그만큼 문화의 세기가 온 겁니다.
저는 문화를 스포츠, 대중가요까지 포함을 해서 생각을 합니다. 사실 단군 이래 지구촌을 움직인 조선 사람이 있다면 저는 ‘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의 아들이기도 하고 제 아들의 친구이기도 한데 얼마 전 그 아버지를 만나서 (들었는데) 25억 뷰(유튜브 클릭 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지구촌 인구의(여러 번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3사람 중 1명은 싸이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강남스타일’, 축구 영웅 메시, (골프 영웅) 타이거 우즈, 피파(FIFA) 블레터의 부패사건이 화제에 오르기도 합니다만 축구 피파의 위원장이면 웬만한 대통령 이상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문화가 영웅인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과거의 존경을 받고 (권위를) 유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쌨던 사람들이 정치인들이었지만 (이제는)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모든 것이 문화 속으로 수렴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종교인들도 과거와 같은 권위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설법은 네이버 지식을 찾아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일동 웃음) 그리고 어느 종교가 되었든 스타가 설법하는 시대지 동네에서 목회를 하는 그런 분들이 참으로 설 땅이 없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 문화가 과거의 종교, 정치, 군사보다 앞서가느냐 하는 점에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저는 과학문명의 발달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IT’ 혁명과 ‘SNS’ 다 해서 정보라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지식인의 공유물이 아닙니다. 병원 진료 와서 의사보다 더 많은 지식을 인터넷에서 찾아와서 들이대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신비주의가 더 이상 종교인의 영역으로만 남아 있지 않은, 투명한 세상이 돼서 뒷거리나 뒷방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시대가 지난 것이 아닌가?(싶습니다.) 과거에(사실 기독교 문명도 그렇고 우리 불교 문명도 마찬가지지만) 문화는 종교 속에 있었습니다. 종교 건축을 하다보니까 건축이 나오고 회화, 조각이 나왔습니다.
기독교 문명에서 문화 예술의 큰 고객은 교회였습니다. 고려시대에 불교가 국교였을 때에는 사찰이 그랬을 것입니다. 이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얘기 했듯이 종교나 철학이 문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문화인이 종교를 얘기하고 철학을 얘기하고 대중가요 속 가사나 미술 건축 또는 음악 속에서 자기네들이 영성(靈性)을 얘기합니다. 종교라든지 철학을 생으로 들려주는 것은 더 이상 대중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가 속히 오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 중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화여대 교목을 한 김흥호(목사이자 대학교수. 1919년 2월 26일 황해도 서흥에서 아버지 김성항 목사와 어머니 황성룡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7년 국학대학에서 철학교수가 됨으로써 선생의 길을 걷게 된다. 1948년 스승 다석 유영모를 만나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그 후 일식, 일좌, 일인, 일언의 실천 생활에 들어간다. 1956년에 이화여대 교수가 된다. 1965년 목사가 되고, 1975년부터 1984년까지 이화여대의 교목을 역임한다. 그의 설교와 강의는 풍부한 비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리로써 뛰어난 설득력을 지닌 특징이 있다. 그는 "깊이 생각해서 쉽게 말한다."는 원칙 하에서 자신의 깨달음과 실천의 지혜를 절묘하게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그의 설교, 강의뿐 아니라 저술들이 전집으로 기획되어 출판되는데 150여종에 달할 것이다. - 편집자 주) 목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이화여대에서 ‘연경반’을 통해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불선을 다 가르치시는 분인데 그분이 이러한 경향을 이야기하면서 (하신 말씀이) 크게 봐서 서양문명을 중심으로 얘기하셨겠죠. “자연의 시대는 천년을 갔고 신의 시대가 종교의 시대가 천년을 갖고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인간의 시대가 열렸다. 그 인간의 시대가 열리면서 과학문명이 신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면서 결국 문화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 문화와 행복
그러면 이제 ‘문화란 무엇이냐’ 질문을 하게 되겠는데, 아까 우리가 좋은 음악을 듣고 하는 것도 훌륭한 문화겠지요(식전에 비올라, 피아노 공연이 있었음), 오늘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문화를 넓게 정의를 하고 싶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결국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인간 존재가 뿜어대는 모든 양태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여기 계신 분들도 하나하나 다르고 형제의 경우도 다르고 일란성 쌍둥이도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불자로써 아는 것이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이고 그 연결된 뿌리에서 발현되는 모든 것을 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성리학에서는 주자가 ‘성즉리(性卽理)’라고 했고 왕양명도 비슷한 이야기지만 ‘심즉리(心卽理)’라고 한다면, 거기에 비추어 저는 ‘문화즉리(文化卽理)’, 문화라는 것이 결국 우리의 뿌리에서 발현된 것이다.(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불자로써 귀한 인연법에 따라서 생을 받고 태어납니다. 운명이 있다고 하고, 전생의 업이 있다고 하는데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생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가꾸고, 참 멋과 즐거움을 향유하고, 가족과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 존재의 뿌리에서부터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행복 하고 싶다’라고 하는 목소리가 아닌가.(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책으로 보면 이 분은 늘 행복론(幸福論)을 이야기합니다. 아주 쉽게 얘기하죠. 결국 “행복하자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에 나의 행복이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행복도 소중하다.” 이분 말씀이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