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오이나무
조정제
불곡산 자락, 우리 전원주택 창가에 오이를 네댓 그루 심었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겉 자라 올랐다. 잎은 내 손 네댓 개를 포개도 남을 만큼 넓고 키는 바로 위층 아들 방에서 잡힐 듯 말듯하다. 아마도 올해 영양가 있고 기름진 갖가지 거름을 많이 했기 때문이겠지….
음식쓰레기는 이웃 불곡산 기슭, 뒤뜰과 이어진 곳에 가로 세로 1미터 깊이 2미터 정도의 구덩이 파서 묻는다. 그곳에 음식쓰레기를 버리면, 아니지 거기 차려놓으면 까치가족이 먼저 시식을 한다.
까치는 음식쓰레기를 노리는지 바로 그 위 굴참나무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한번은 청설모가 까치 알을 노리는지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목격하였다. 거의 까치집에 이르렀을 때에 까치가 놀라서 날아올라 청설모를 공격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 까치내외가 공격하였고 이윽고 이웃집 까치까지 협공하더니 청설모의 참패로 끝났다. 청설모도 호두 잣 과일 버섯 새의 알 등을 좋아하니 음식쓰레기 고객 중의 하나다. 겨울철에는 고란이가 더러 나타나고 가끔 큰 노루도 눈에 띈다.
우리는 데치라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다. 데치는 작은 손자가 이름을 지은 것인데 그대로 부르고 있다. 강아지는 묶어 키우기 불쌍하고 민망해서 낮은, 미관에 별지장 없게 낮게, 울타리를 쳐서 키운다. 그 여석에게 간간히 옛날식으로 먹다 남는 것을 먹였더니 이제 인공사료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까치가 음식쓰레기를 맛있게 시식을 하시고 나면 자주 야생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행차하신다. 고양이가 찾아오면 데치와 한판 기 싸움을 벌인다. 강아지가 입양되어 오기 전에는 우리 집이 고양이의 순찰코스에 들어 있는지 자주 와서 정원테이블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오수를 즐겼었다. 안주인 경희여사는 그 꼴을 봐주지 못하고 신짝을 던져 쫓고 야단법석을 부리면 고양이는 ‘애당초 내 땅인데 왜 그려?’ 하는 듯이 힐금거리며 느릿느릿 사라지곤 하였다. 경상도에서는 안주인 이름도 ‘갱이’(경희)라고 발음하고, 고양이도 ‘갱이’라고 부르니 호칭도 동일하고 또 깜찍한 이미지도, 거동도 닮은 데가 많은데 왜 ‘갱이’를 미워하는 건지 원…. 고양이는 밤 9시나 10시경에도 자주 납시는데 이때에 데치는 정원 밖 고양이를 보고 이리저리 덤벼드는 시늉을 하며 고요한 산골짝 하늘이 찢어져라 짖어댄다. 고양이는 아직도 음식쓰레기 접근은 허용되지만 울타리 쳐진 정원 안에는 얼씬도 못한다.
까치와 고양이가 감식하고 자리를 뜨면 불곡산 온갖 잡새들을 초대하여 잔치 상을 베푼다. 그들은 때론 노래하고 때론 울고불고 다투는 꼴이 인간들 잔치 집과 진배가 없다.
작년에 음식쓰레기를 묻어둔 구덩이에 흙을 덮고 올해 박을 네댓 그루 심었다. 작은 구덩이에 함께 심었는데 요것들이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달리 자라 뻗어가는 것이 꼭 의식이 있는 거 같았다. 햇볕과 전혀 무관한 행보다. 인간에게는 영기질(靈氣質)이 있고 식물에게는 기와 질만 있다고 하더니 정말로 기가 통해서 서로 배려하는 거 같다. 신통하다. 작년에도 박을 심어서 추석 제사 밥에 넣어서 맛있게 먹었으니 올해도 기대가 크다. 요새는 제비가 오지 않으니 내 기대는 그것으로 만족하다.
올해 다시 작년 그 자리에 구덩이를 파보았더니 그 속에 질이 우수한 유기질 비료가 생성되어 있는 게 아닌가. 얼시구 좋을시고. 그 양질의 비료를 파서 창가 오이 밭과 장미 밭에 묻어주고 물을 자주 주었더니 오이가 그렇게 잘 자랄 수가 없었고 사계절 장미는 담 너머서도 보이게 키가 웃자라고 꽃이 예쁘게 피었다. 꽃은 예년보다 더 크게 더 탐스럽게 자랐고 꽃도 더 오래 아름다움을 뽐내었다. 거름이 좋으면 꽃이 더 오래 간다는 가설假說을 내세워볼만 하다.
음식쓰레기는 물에 헹궈서 염분을 제거하고 버린다. 이 쓰레기는 재활용이 많이 되기 때문에 그 많은 고객들에 대한 배려이다. 남은 음식은 일차 데치가 먼저 맛을 보고, 버리는 음식쓰레기는 까치, 고양이, 산새들이 먹고 나서 구덩이 속에 흙을 덮고 묻어두면 보이지 않는 지렁이, 박테리아 등등이 분해하고 익년에 박이 빨아먹고 그리고 유기질 비료는 오이와 장미 차례가 되니 그 재활용 과정이 다양하고 길다.
계란껍질도 모아서 재활용한다. 껍질은 영양분도 좋고 칼슘이 많아서 산성화된 토질을 중성화시켜준다기에 올해는 오이 비료로 써보았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계란 속의 엷은 흰색 막은 식물을 말라 죽인다니 제거해보려 했으나 일일이 떼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은 물로 씻어내는 것이다. 계란껍질을 대야에 넣고 물을 뿌리면 흰 거품이 많이 인다. 비누거품 같은 게 독해 보인다. 그다음 장갑 낀 손으로 으깨서 헹구기를 거듭하면 흰 것이 뜨물같이 씻겨나간다. 그다음 신문지에 늘어 말리고 빻아 오이 밭에 뿌리면 그만이다.
나의 아침은 개똥 치우기로 시작해서 그것을 오이 밭에 묻어주는데 오이가 그렇게 잘 자라는 것은 잘 삭힌 음식쓰레기, 개똥, 계란껍질, 그리고 쌀뜨물 덕이지 싶다. 나의 애틋한 관심도 기가도 통했을 게다.
데치는 주인이 현미를 먹기 시작하면서 현미밥이 혹 남게 되면 그 맛도 보게 된다. 문제는 개똥냄새다. 사람 음식을 먹이니 그 냄새는 인분과 틀리 지 않다. 개는 이빨이 본래 늑대와 같아서 인간들의 잡식성 음식을 씹기까지는 덜 진화했고 소화기관도 짧아 소화력이 약해서 잘 소화되지 않은 채 똥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양이 작아도 냄새가 독한 거 같다. 그래서 개똥을 오이 밭에 뿌리고 나면 냄새도 제거할 겸 오이 밭에 물을 듬뿍 준다. 오이는 개똥을 얻어먹게 되니 오이나무도 간접이나마 현미 덕을 보게 되는 셈이다.
오이나무는 자라고 또 자라서 이제 2층에서 아래로 줄사다리를 내려서 아들네가 침대에 누워서도 보고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오이나무가 ‘잭과 콩 나무’ 동화처럼 쭉쭉 빵빵 더 자라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나도 도리 없이 오이나무를 저 하늘로 올려 보내지 않을 수 없겠구나 싶다.
(시조)
이른 아침 뒤뜰로 나가보니, 오이가
하늘 품에 안길 듯이 놀랍게 쑥 자랐다
저 높이 구름 헤집고 동화나라 찾나봐.
친구야 함께 가자 강아지야 너도 가자
오이나무 올라타고 동화역을 향해가자
저 아래 혼탁한 세상 숨 막혀서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