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3-04-12 20:27
뒤에야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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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선조
 조회 :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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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야 알았네
진계유(陳繼儒)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진계유(1558 ~ 1639)
명나라 말기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사람. 자는 중순(仲醇)이고, 호는 미공(眉公) 또는 미공(麋公)이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고, 고아(高雅)함을 숭상했다. 젊어서 동기창(董其昌), 왕형(王衡)과 함께 명성을 나란히 했다. 『금병매(金甁梅)』를 지은 왕세정(王世貞)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9살 때 유자(儒者)의 의관을 태워 버리고 관료의 길을 포기한 뒤 소곤산(小昆山) 남쪽에 은거했다. 나중에 동사산(東佘山)에 살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시문에 뛰어났고, 단한소사(短翰小詞)가 모두 풍치가 있었다. 글씨는 소식(蘇軾)과 미불(米芾)을 배웠고, 그림에도 능했다. 동기창이 사관(詞館)으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서화로 천하에 오묘했지만 항상 그에 대한 칭찬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불렸지만 모두 병으로 거절했다. 82살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풍류와 자유로운 문필생활로 일생을 보냈다. 저서에 『보안당비급(寶顔堂秘笈)』과 『미공전집(眉公全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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