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3-08-03 10:17
4대 어느 가장의 시
|
|
글쓴이 :
이선조
 조회 : 1,735
|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명세서만 적힌 돈 없는 월급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내 능력 부족으로 당신을 고생시킨다고 말하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무능력한 남편입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 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요것 저것 조잘대는 막내의 물음에 만사를 제쳐놓고 대답부터 해야 하고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큰 녀석들때문에 뉴스 볼륨도 숨죽 이며 들어야 합니다.
막내의 눈높이에 맞춰 놀이동산도 가고 큰놈들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자료도 찾고 답사도 가야합니다.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유치원비,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교복도 얻어 입히며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생일날 케이크 하나 꽃 한송이 챙겨주지 못하고. 초코파이에 쓰다만 몽땅 초에 촛불을 켜고 박수만 크게 치는 아빠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어머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어머님의 불효자식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장거리 전화 한 통화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가까이 모시지 못하면서도 생활비도 제대로 못 부쳐드리는 불효자식입니다.
그 옛날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 밭으로 변하여 기력이 쇠하신 당신 모습을 느끼며 주말 한번 찾아뵙는 것도 가족 눈치 먼저.
살펴야 하는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는 어머님 의 못난 아들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40대 직장(중견) 노동자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는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 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을 감싸 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덕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여 목소리 낮추고 움츠리며 사는 고개 숙인 40대 남자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포장마차 속에서 한 잔 술을 걸치다가 뒤 호주머니 카드 만 많은 지갑 속의 없는 돈을 헤아리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어머님의 불효자식, 나는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어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 일 때보다 더 행복할 줄 아는 40대 입니다.
"추이" 누구나가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글이기에 퍼 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