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26 일요 법회 때 경강 내용입니다. 미리 원고를 준비하였지만 실제 발표 내용과 일부 다른 것 같네요. 한글 첨부파일이 조금 이상하여 아래에 글을 적습니다.
반갑습니다. 5단 김성연 입니다.
4 정진 운동 중 ‘선’ 정진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전 ‘좌선법’을 참고 바랍니다.
저의 경우는 책에 의거한 의리선 (선지자들의 지혜 이용하므로 설명하기는 좋음) 입니다.
교감님이 오늘 훈련으로 참석하지 않았는데, 출가 교무님들의 좌선의 경지가 높으니, 실제적인 것 (손바닥을 어떻게 하며 다리는?)은 소개하지 않을 것이며 판교 선방 등에서 지도 받기 바랍니다.
심신을 별도로 생각할 수 없는데, 身에 관해서는 한의사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정전 ‘좌선법’과 대산 종사 법어 제4 적공편 20장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청년회부터 좌선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 덕분으로 인도 요가를 알게 되었으며 청년회 다니는 중 대학원 때 원장님 덕분으로 잠시 한국 토종 정각도를 접했습니다. 저의 경우 선이 가장 잘 되었을 때는 청년회 시 종로교당 좌석에 앉았을 때입니다. 당시 독감으로 아파서 (죽을 때 심경) 모두 내려놓았을 때입니다. 禪에는 좌선, 와선, 행선, 무시선이 있습니다. 정산 종사 법어에 의하면 좌선은 내수양, 내정정의 첫 단계 (정산 종사 법어 제6 경의편 65-66) 입니다. 원불교 선은 묵조선인데, 소태산 대종사님이 단전주 선을 추천 하신 것입니다. 일심에 들어가게 하며 음계에 접속하게 하는 간화선을 후천 젊은이들이 어려워할 것이라고 예상하신 것입니다. 게송에 나오는 “유는 무로”는 비움을 의미합니다. 단순하게 시작하기 바랍니다. 시작이 반이며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길도훈교무님 (3년마다 원불교에서는 평가하니 그 전 일은 생각하지 말 것)의 자문을 받아 [길도훈 교무님 단전주 선 책 소개] 등 뒤로부터 숨이 들어온다고 생각한 이후에 단전 (위치는 변한다 합니다.)이 다북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은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견성에는 꼭 좌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 합니다. (오은성 교무님 ‘견성’ 책 소개) 하지만 양성과 솔성이 아주 중요합니다.
득도보다는 낙도가 먼저”라는 정산 종사님 법문이 있습니다. 물론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지만 즐겁게 시작하여야 합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후천 현대인은 비종교적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 합니다. 수많은 수행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월산님에게 소태산 대종사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청년회 때 질문한 생각이 납니다. 음계 (영계)와 양계의 시간관념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으며 마음의 자유를 얻은 분에 대한 질의입니다. 일반적으로 formatting 되어 모를 뿐이지 여기 교도 중에도 전생 수행자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 몸을 받았더라도 다양한 근기와 업이 있어서 시간에 따라 달리 나타날 따름입니다. 고 준산님께서 주신 “모두 잊는데, 무슨 상관인가?” 의두가 생각납니다. 너무 어려운 방법을 추구하는 한국 불교와 무조건 믿으면 천당 간다는 기독교를 후천 신세대는 잘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타스님의 ‘선수행의 길잡이’ 책 소개) 어찌 중국 선사 (주로 간화선 추구하였습니다.)만 있었겠습니까? 세계 도처에 다른 지역 수행자도 있었습니다. 지금 서구에서는 비종교적인 명상이 유행합니다. 무엇보다도 삼학병진의 기초가 禪 (대종경 제15 부촉편 9장 참고) 입니다. 물론 행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국 선교인 도교는 노자님 등이 종합화한 것입니다, 신체에서의 기의 흐름을 중요시하는 단학선원이 있으며 주문에 의존하는 티벳 밀교도 있습니다.
저의 발표 후에 질의시간을 가질 것이며 제가 아는 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교도들이 미약한 원불교 (‘불교 정전’에 인도불교 → 중국 불교 → 우리의 불교) 다니면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너무 빨리 법을 내놓았다고 한탄 하셨다는 소태산 대종사님이 생각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복잡한 수행과 비합리적인 신앙을 공부의 요도 (수행문) ‘심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신앙문) ‘사은사요’로 정리하여 주셨습니다. 저희 교도들이 신앙만 하면 후천 불법 정수 중 일부만 이용하는 것입니다. 모두 망각되지만 혜복이 문제입니다. 주위에 복 많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인들은 복을 많이 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업은 업대로 복은 복대로 갑니다. 부처님은 복혜양족 (복이 없으면 생기게 하신다고 ‘불교 정전’에 소태산 대종사님이 법문하심) [대종경 제 1 서품 17장] 입니다.
원불교 다니면서 얻을 것은 일원의 ‘무궁한 묘리’ (나, 불교, 후천 행복 직결되는 ‘삼학팔조’와 ‘사은사요’, 용심법), ‘무궁한 보물’ (너, 선교, 단전주 선), 그리고 ‘무궁한 조화’ (우리, 유교, 사회생활, 십인일단) [대종경 제8 불지품 20장]이며 이중 ‘무궁한 보물’인 禪의 일종인 단전주 선에 대하여 오늘 말씀 드리지만, 사실 병진이 필요합니다. 선을 하다가 조심할 점은 신비한 현상 (남회근의 ‘정좌수도강의’ 책 소개)이며 소승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禪은 마음을 쉬는 휴식처요 마음을 씻는 세탁소라고 소태산 대종사님이 법문하시었습니다. (대종경 선외록 19. 요언법훈장 2장) 번뇌를 끊는 좌선은 動 준비 위한 것입니다. 일반교도들이 우선 용이하게 ‘삼학팔조’와 ‘사은사요’를 접근가능하게 합니다. 단전주 선이 기초가 됩니다. 하단전이 잡히면 상단전 (머리), 중단전 (가슴, 훈훈함 관련?)도 따라서 잡힙니다. 상단전부터 열리면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영혼을 보는 사람은 아마 상단전까지 열린 사람일 것입니다. 두둑한 하단전을 가지면 철주의 중심과 석벽의 외면 부동심을 얻게 됩니다. 불법의 본의를 찾기 위하여 중국에서 선종이 나왔지만 후천 세상에서 실행하기가 너무 어려워 현재 젊은이들의 흥미가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서구에서는 명상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제간인 정산 종사님과 소태산 대종사님 사위인 주산 종사님 (대산 종사님의 방법)의 자세가 다릅니다. 양자인 송천은종사가 원불교신문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정산 종사님의 단전은 말랑말랑하였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솥뚜껑 거꾸로 놓은 형태의 단전) 도교의 복잡하고 신비한 기질 변화 [‘수양연구요론’ (소태산 대종사님이 처음에 일반 제자들에게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수행이 아주 잘 된 제자에게만 선물로 주었다 합니다.)에 나오는 니환이 뚫리는 현상 (허령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같음: ‘연신환허’)를 조심하게 하여야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정산 종사를 굴에 가두어 신기한 기운을 꺾으며 세간의 관심을 따돌려 정법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중 ‘수승화강’만 강조한 ‘단전 주 선’은 소태산 대종사님의 오랜 경험 끝에 나온 것입니다. 기단보다는 단전주 일심 심단을 더 중요시하시었습니다. 좌선의 성공 요인은 담담함 (진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