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10-05 12:34
[목요공부] 10월1일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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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현주
 조회 : 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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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초기도& 목요공부
참석인:김진선,권덕근,류재은,강련주
9월24일 "이성호 "(연대교육학 교수) 의 강의"창조적 인재로 키워라" 내용 간추림 -> 아이들이 스스로 할수있는 힘을 기르도록 기다릴수 있는 힘....수양력과 연구력이라... 수양력(영구력(취사력
질문: 법없이 살수 있는 착한사람과 원불교에서 공부한 사람과의 차이 굳이 법없이도 살 수있는에 원불교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지...?
답 : 작은 일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큰일을 당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준비된 사람만이 견딜 힘이 있다 하심
숙제!!! 1. 수행품에서 공부인과 비공부인이 나오는 대목 찾아서 읽고 오기 2."생이지지","학이지지","곤이득지"가 원불교서 공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3.일기 제출
힌트 1.수행품 11장 읽으세용
회화(會話) 시간에 전 음광(全飮光)이 공부인과 비공부인의 다른 점이란 문제로 말하는 가운데 「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어떠한 경우에 이르고 보면 또한 다 삼학을 이용하게 되나, 그들은 그 때 그 일만 지내 가면 방심이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평생을 지내도 공부상 아무 진보가 없지마는, 우리 공부인은 때의 동·정과 일의 유·무를 헤아릴 것 없이 이 삼학을 공부로 계속하는 까닭에 법대로 꾸준히만 계속한다면 반드시 큰 인격을 완성할 것이라.」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음광의 말이 뜻이 있으나 내 이제 더욱 자상한 말로 그 점을 밝혀주리라. 가령, 여기에 세 사람이 모여 앉았는데 한 사람은 기계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좌선을 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그저 무료히 앉아 있다 하면, 외면으로 보아 그들이 앉아 있는 모양은 별로 다를 것이 없으나, 오랜 시일을 계속한 후에는 각각 큰 차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니, 기계 연구를 한 사람은 어떠한 발명이 나타날 것이요, 좌선에 힘쓴 사람은 정신에 정력을 얻을 것이요, 무료 도일(無聊度日)한 사람은 아무 성과가 없을지라, 이와 같이 무엇이나 그 하는 것을 쉬지 않은 결과는 큰 차이가 있나니라. 또는, 내가 어려서 얼맛동안 같이 글 배운 사람 하나가 있는데, 그는 공부에는 뜻이 적고 광대 소리 하기를 즐겨하여 책을 펴 놓고도 그 소리, 길을 가면서도 그 소리이더니 마침내 백발이 성성하도록 그 소리를 놓지 못하고 숨은 명창 노릇하는 것을 연전(年前)에 보았고, 나는 또 어렸을 때부터 우연히 진리 방면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하여 독서에는 별로 정성이 적고, 밤낮으로 생각하는 바가 현묘한 그 이치이어서 이로 인하여 침식을 다 잊고 명상에 잠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며, 그로부터 계속되는 정성이 조금도 쉬지 않은 결과 드디어 이날까지 진리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이것을 두고 볼지라도 사람의 일생에 그 방향의 선택이 제일 중요한 것이며, 이미 방향을 정하여 옳은 데에 입각한 이상에는 사심 없이 그 목적하는 바에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바로 성공의 기초가 되나니라. 2. 대산5집 2부 연도수덕 9.옥추보경
玉樞寶經의 要點 道者는 以誠而入하고 以默而守하고 以柔而用하나니 (도자) (이성이입) (이묵이수) (이유이용) 도는 정성으로써 들어가고 묵묵으로써 지키고 부드러움으로써 쓰나니 用誠似愚하고 用默似訥하고 用柔似拙하니 (용성사우) (용묵사눌) (용유사졸) 정성을 씀에 어리석은 것 같고 묵묵함을 씀에 어눌한 것 같고 부드러움을 씀에 졸한 것 같으니 夫如是則可與忘形이오 可與忘我요 可與忘忘이니라. (부여시즉가여망형) (가여망아) (가여망망) 무릇 이같이 한즉 가히 더불어 몸을 잊고 가히 더불어 나를 잊고 잊었다 하는 것도 잊을 것이니라. 入道者 知止하고 守道者 知謹하고 用道者 知微하니 (입도자)( 지지) (수도자)(지근) (용도자)(지미) 도에 든 자 그칠 줄 알고 도를 지키는 자 삼가할 줄 알고 도를 쓰는 자 미묘한 것을 아나니 能知微則 慧光生하고 能知謹則 聖智全하고 (능지미즉)(혜광생)(능지근즉)(성지전) 능히 미묘한 것을 안즉 혜광이 나고 능히 삼가할 줄 안즉 성지가 온전하고 能知止則 泰定安하고 泰定安則 聖智全하고 (능지지즉)(태정안) (태정안즉)(성지전) 능히 그칠 줄 안즉 크게 정하여 편안하고 크게 정하여 편안한즉 성지가 온전하고 聖智全則 慧光生하고 慧光生則 與道爲一하니 (성지전즉)(혜광생)(혜광생즉)(여도위일) 성지가 온전한즉 혜광이 나고 혜광이 난즉 도와 더불어 하나가 되나니 是名眞忘이라 惟其忘而不忘이라. (시명진망) (유기망이불망) 이것을 참으로 잊은 것이라 오직 그 잊어서 잊지 않음이라. 忘無可忘하고 無可忘者 卽是至道니라. (망무가망) (무가망자)(즉시지도) 가히 잊어서 잊을 것이 없고 가히 잊을 것도 없는 자 곧 이 지극한 도니라 道在天地나 天地不知하고 (도재천지) (천지부지) 도가 천지에 있으나 천지도 알지 못하고 有情無情이 惟一無二니라. (유정무정) (유일무이) 유정 무정이 오직 하나요 둘이 아니니라. 1. ...........도교의 경문(經文) 옥추경... -수양연구요론 ...........기도문-중앙단원(中央團員) 불교의 정수를 반야심경이라고 한다면, 도교의 정수는 이 옥추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종사님 당시 옥추경을 많이 말씀하셨다. 도자(道者)는 이성이입(以誠而入)하고, 도라는 것은 정성으로서 들어가고, 정성이 없으면 도에 들어 갈 수가 없다. 공부 길에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있는데 공자님은 생이지지(生而知之)하고, 안자님은 학이지지(學而知之)하며, 증자님은 곤이득지 (困而得之)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들어가서는 같다. 그런데 여기서 생이지지나 학이지지나 곤이득지가 다 정성 없이 들어간 법이 없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가는 제일의 열쇠가 성(誠)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큰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정성이 없다는 것은 {나는 못합니다} 하고 항복 문서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증자 같은 양반은 삼순구식(三旬九食)하고 십년불의(十年不衣)하였다. 즉 가난해서 10년 동안 새 옷을 못해 입었다. 우리 대종사님 계실 때 출장복 하나 놓고 출장할 때만 입었다. 또 매꼬모자 5개 사 놓았는데, 써야 머리에 방방 해서 쓰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들고만 다녔다. 그런데 증자님 같은 양반도 은녹대부 벼슬을 주니까 나는 벼슬보다는 도가 더 좋으므로 이 생활을 해야 겠다고 하여 밭을 매면서까지 공자님의 도덕을 얻기 위해 일단의 정성을 다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님은 생이지지하고, 안자님은 학이지지하고, 증자님은 곤이득지 했으나 길은 같다. 공자님은 十有五而志于學하고(열 다섯에 비로소 도에 발심 이 나셨고) 三十而立하고(서른에 큰 뜻을 굳게 세웠고) 四十而不惑하고(마흔에 모든 유혹이 마음을 달래어 가지 못하게 했고) 五十而知天命하고(오십이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단 말이다. 즉 성리를 짐작했단 말이다) 六十而耳順하고(이순이라는 것은 출가위다. 대종사님께서는 나는 스승을 정하지 않았다 하셨는데 천하를 스승으로 삼으셨다. 누구든지 외부 사람이 오면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도덕가는 도덕가대로 물어 보시어 다 흡수하셨다. 이순(耳順)이다. 다 들어오는데 막히고 걸림이 없다) 七十而 從心所欲不踰矩라 (마음가는 대로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공자님도 주역을 가죽끈이 세 번 달아지도록 읽었다. 사람이 무엇을 할 때는 {정성} 이것이 들어야 천하 만사를 여는 열쇠가 된다. 생이지지한 공자님도 주역의 가죽끈이 세 번 달아지도록 읽었다. 공자님은 생이지지인데도 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순서를 어기지 않으셨다. 안자님은 삼십에 천명이라 언제까지 순서를 밟을 수 없으므로 생이지지로 학이지지했다. 그러므로 문일지십(聞一知十) 지백(知百) 지천(知千)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알기는 공자님하고 똑같이 알았다. 그러나 그 때는 법을 그 안자님한테 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더디고 곤(困)한 증자님이 도를 받았다. 그 양반은 곤이득지다. 증자님은 순 정성 하나로 도를 받았다. 대종사님도 9세시부터 일관하신 것을 보면 공자님하고 정성한 공부 길이 거의 똑같다. (生而知之) 정산종법사님은 안자님 같으셨다. 정산종법사님께서 경상도에서 오실 때에 생이지지한 것을 대종사님께서 알았다. 하지만 대중의 신망과 천지의 진리에 응함이 덜 하셨기 때문에 늘 배우시는데 학이지지셨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쭉 하는 것이 증자님 공부하신 것을 우리가 체 받는 것 같다. 순서가 있게 체 받데 앞으로는 {성(誠)} 이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부처님이 생이지지일 것 같으면, 학이지지는 아란존자이였다. 증자님은 도통을 안자님 보다 더 받았다. 그래서 만대에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또 자사님은 생이지지인 것 같다. 보통 사람은 학이지지되어 가지고 가볍게 날려 버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조금 속하고 빠를 것 같으면 날려 버린다. 날려 가지고 크게 깊게 오래가지 못한다. 도가에서는 같은 것이로되 곤이득지를 학이지지 보다 더 쳐주는 법이 있다. 그러므로 정성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묵이수(以默而守)하고} 죽기보다 무서운 것이 지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데 묵묵으로 지킨다는 것은 죽기보다 무서운 것이다. 조금 알면 많이 불려 이야기하는 것인데 많이 알고 있으면서 조금 내놓는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이묵이수 묵묵으로서 지키는 것 무서운 것이다. 큰 근기가 아니면 안된다. 도가 없으면 이묵이수가 안된다. 너희들이 여기에 표준을 두어야 한다. {이유이용(以柔而用)하니} 부드러움으로써 쓴다. 최대의 강인데 최대의 부드러움으로써 쓰고 활용한다는 것 무서운 것이다. {용성사우(用誠似愚)하고} 정성할 것 같으면 어리석은 것 같다. 일부러 그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어 버린다. {용묵사눌(用默似訥)} 묵묵한 것을 쓸 것 같으면 어눌한 것 같다. 『용유사졸(用柔似拙)하니』 부드러운 것을 쓸 것 같으면 졸한 것 같다. 이것이 만능 겸비한 여래의 자리다. 졸한 것과 능한 것을 겸비하고 쓰되 능한 것을 쓸 때 졸한 것을 바탕하고 졸한 것을 쓸 때 능한 것을 바탕 하여 쓰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능히 폭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명암자유(明暗自由) 능졸자유(能拙自由) 대소자유(大小自由) 밝은 것은 어두운 것으로 지키고, 능한 것은 졸한 것으로 지키고, 큰 것을 작은 것으로 지킨단 말이다. 너희들 여기에 부지런해야 지 다른데 한눈 팔아서는 안된다. {부여시즉(夫如是則) 가여망형(可與忘形)이오 가여망아(可與忘我)요.} 형상과 나 이것 챙기다 똥독에 빠져 무슨 일 못한다. 그러므로 잊을 때는 한 번 잊어 버려야 된다. 예전에 우리 처음 살 때는 속옷 하나 가지고 3년을 입고 살았다. 지금은 아마 1년 입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요즈음은 너무 사치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양주에 있을 때에 6개월을 양말 한 켤레로 산을 다니면서 신는데 떨어져서 짓고 또 짓고 하여서 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여름에도 옷이 없으니까 그럭저럭 걸치고 다니는데 교도는 없는 줄 알았는데 교도 한 사람이 있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천하에 한 소식을 얻고 공부를 할 때는 망형망아(忘形忘我)가 되어야 한다. 그 것(형상, 나) 챙기다 나중에 똥독에 빠지고 중생 되어 버린다. 차경석선생이 증산천사 제자가 되었다. 증산천사는 그전까지만 해도 부자였던 그 사람을 더러운 개나리 봇짐을 짊어지게 하고 돌아 다녔다. 어느 날은 키가 작은 증산천사를 모시고 사돈집에 가서 「스승님 모시고 왔으니 밥을 내 놓으라」고 하였다. 차경석선생이 천자 한 번 될 만하다. 가짜 천자라도 될 만하다. 여기 있는 훈련교무들, 떨어진 옷 입고 나를 따라가자고 하면 몇 사람이 될 지 모르겠다. 망형망아로 일생 살고 나서는 썩어 없어질 것, 남이 나를 챙겨야지 평생 자기가 저를 챙겨서 되겠는가? 거지가 그런 다. 평생 집집마다 밥 한끼 얻어먹으려고 복 지으라고 쫓아다닌다. 일생을 망형망아 한다는 것 보통 서원 세워 가지고는 어려운 것이다. 망형망아해 버려야 된다. 그래서 남이 챙겨 준다. {가여망망(可與忘忘)이니} 가히 더불어 잊을 것도 잊어 버려야 된다. 내가 아상을 떼고 망형망아가 됐다고 해서도 안된다. 잊을 것도 또 잊어 버려야 된다. {입도자지지(入道者知止)} 그러기 때문에 도에 든 자는 멈출 줄 알아야 된다. 날뛰다가 그칠 줄 알아야 된다. 그칠 줄 아는 것이 도다. 여기에 표준을 잡아야 된다. 별스럽게 날뛰다가도 이러면 되는가 해서 턱 멈출 줄을 알아야 된다. 헌차는 조금 더 갈 것이고, 새차는 멈추는 것 가는 것 뒤로 빼는 것 자유자재다. 일생사가 여기에 있고 영생사가 여기에 달려 있다. {수도자지근(守道者知謹)하고} 다 부처님이고 부처니 내가 삼가할 줄 알아야 된다. {용도자지미(用道者知微)하니} 도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미(微)한 자리, 현묘난측한 자리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알아야 참으로 아는 사람이다. 현묘난측한 자리를 알면 지혜가 나온다. 거기서 허령, 지각, 신명이 나온다. 알려면 허령, 지각, 신명을 알아야 알았다고 하지 알지도 못하면서 알았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많다. 주송을 한다든지, 선을 한다든지, 염불을 오랫동안 하면 첫 단계가 허령이 열린다. 그래서 안 보이는 것이 보이고, 앞일을 내다보려고 만 생각하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잘못하면 3년 못 가서 없어지게 된다. 알았다고 해서 사방에서 금은 옥백이 오면 그만 미쳐 버린다. 그러므로 요즈음 점쟁이들이나 영이 열린 사람이 처음에는 아는 체하나 나중에 닫혀지면 죄를 더 짓는다. 그러니까 그것 닫아 버려야 된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너희들이 지니고 다닌다. 창자가 있는데 단전주를 해서 거기에 정력을 모을 것 같으면 허령이 열리는 수가 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영리해서 그림만 그려 놓았다. 그런데 대종사님이나 정산종법사님은 그것을 알으셨다. 무이구곡 거기에 면면약존(綿綿若存) 용지불근(用之不勤)하면 거기서 허령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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