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각개교절에 인터넷기사 보다가 스크랩한 내용입니다.
원불교 '일원상' 유래는
독립염원 기도후 자결결의 맨손 지장이 핏빛으로 변해
단결 상장 소태산이 문에 붙여
혈인기도(血印祈禱)를 끝낸 소태산이 김제 금산사에서 한동안 휴양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소태산이 출입문의 문설주에 종이로 일원상을 그려 붙여놓았다. 원불교에서 일원상을 사용하게 된 유래다.
혈인기도는 기미년 3ㆍ1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비롯됐다. “지금 온 나라에 만세운동이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가 나라 잃은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민족적 거사에 동참 의지를 밝혔다. “우리는 크게 생각하고 크게 죽을 줄 알아야 한다.” 소태산은 이어 기도를 지시했다.
표준제자 9명은 4월부터 소태산과 함께 영광의 영산에서 특별기도에 들어갔다. 기도는 매월 음력으로 6, 16, 26일 세 번씩 올려졌다. 어느덧 석 달이 흘렀다. 이날 소태산은 제자들의 동의를 얻어 앞으로 열흘 동안 기도를 더 올린 뒤 그날 모두 자결하기로 결의를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제자들 앞에는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다’고 씌어진 백지 한 장이 놓여져 있었다. 차례로 종이에 맨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었다.
소태산이 자결의 증서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믿기 지 못할 이적이 일어났다. 흰 종이에서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홉 개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한 핏빛으로 드러났다. 아무도 손가락에 인주를 묻힌 사람은 없었다. 기도는 소태산과 제자들의 단결력을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만들었고 교단의 상징인 일원상의 탄생을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다.’ 원불교는 일원상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원상은 전통적인 대승불교의 정신을 담고 있다. 일원상의 이론을 처음 세운 선종의 삼조(三祖) 승찬(僧瓚)은 “원만함이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의미를 풀이했다.
일원상을 그림으로 처음 표시한 이는 육조 혜능(慧能)의 제자 남양혜충(南 陽慧忠)으로 전해진다. 일원상은 말 그대로 하나의 둥근 원의 모습이다. 일원상은 삼라만상의 근원을 가리키는데 완전 무결하고 위대한 작용을 하는 우주의 모습을 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선문의 종사들은 종종 제자를 인도하는 법어를 내릴 때 자주 손가락이나 털이개(拂子ㆍ불자), 주장자 등으로 허공이나 땅에 일원상을 그린다. 아니면 붓으로 그리기도 한다. 이는 진실하고 절대적인 진리, 곧 불성 불심 진여 대도를 상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