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이 딱 되어서 육근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일원상 법어입니다.
거기에는 한 생각도 없고, 한 형상도 없지만
소리 없는 소리가 있다.
거기에는 말 없는 말이 있고,
형상 없는 형상이 있다.
언어 없는 언어를 법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냥 아는 것입니다.
비어 있으니까 그냥 압니다.
그것을 법어라 그럽니다.
법의 소리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머리를 굴려서
물어 보기도 하고 알아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알게 된 다음에는 생각 없이도 다 알아서 하지요.
그것을 법어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없는 생각이다.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일원상을 신앙하고 수행하는 자는
반드시 이 법어를 작용해야 하는데 이 법어가 뭡니까?
‘만고의 표본’ 이라고 합니다.
이제 모든 법은 일원상 법어로만 표현이 됩니다.
그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을 하려면 맨 먼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을 떠야 하지요? 눈을 떠야 무슨 일을 할 수 있잖아요?
눈을 뜨게 되면 그 다음부터 모든 일이 자동적으로 됩니다.
눈을 못 뜨면 못 합니다. 더듬더듬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모든 일과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육신의 눈을 떠야 우리의 삶에 불편이 없습니다.
그것처럼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바로 우주를 살아가는데 불편 없이 사는 제일 처음이자 마지막 조건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육신의 눈만 뜨면
중생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의 삶을 사는데 가장 첫 번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눈을 떠야 걸어가기도 하고,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이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원불교에 오면
제일 먼저 신앙의 대상을 배워서 수행의 표본을 삼는데,
그 표본이 일원상입니다.
그것이 일원상 법어이고, 그 법어가 바로 마음의 눈입니다.
눈을 안 뜨고는 참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