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 둥근달님
언어감각이 매우 뛰어난 시인 유시화는 1980년대부터 <성자가 된 청소부> 등을 비롯하여 라쥐니시 등 명상 관련 책을 번역하여 붐을 일으켰던 꽤 잘 나가는 저술가이다.
어떤 자리에서 필자는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소태산>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었다.
일반사람이 보기엔 다소 생경한 소태산이란 이름에 대해 그는 어떤 강한 영감을 받은 듯 했다.
少太山이라는 법호에 대해 누구는
“나는 호를 大太山이라 해야겠다”고 하는데
이런 물량적인 비교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문자에 속지 마라.
‘솥에 산’(⇒ 少太山)이란
발음 나는 대로 솥에 들어가야 산다는 뜻이다.
일찍이 소태산은 “앞으로는 가마솥에 콩 튀듯이 도인이 나온다”고 하였다.
교리를 압축 요약한 표어에 處處佛像 事事佛供이라 명시하였듯이,
소태산 대종사는 우리 모두 부처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소태산의 경륜이 실현되는 모델시티 전망품인 용화회상 처처불상 사사불공하는 세상이다.
이때까지 一佛 신앙이었지만
소태산은 千如來 萬菩薩의 경륜을 폈다.
“나는 만생을 살리는 솥이 될란다” 하였고
스스로 호를 소태산이라 하고
“앞으로 가마솥에 콩 튀듯이 도인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방언공사를 마치고 9인 제자들에게
“알고보면 도 공부하기는 썩은 새끼 끊기보다 쉽고 코풀기보다 쉽다”고 하였다.
“오는 세상에는 유치원에서 견성하고 초등학교부터 양성 솔성 보림공부를 한다”고 하였다.
“오죽 못난 도인이 의식주 걱정할 것이냐. 앞으로 도인이 시글시글 하다”고 하였으며
“발부리에 차이는 것이 도인이다”라고 하였다.
집집마다 생불이 살며
죄복의 소종래를 알므로 따로 불단에 빌 것도 없으며
당처에 따라 불공하며 네 종교 내 종교 가릴 것 없다고 하였다.
특정인을 신앙코자 하는 제자들에게,
그게 아니라 여러분 하나하나가 깨면 부처님이고
대명 세계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아궁이에 열심히 불을 때어 솥을 달군다.
가마솥 안의 무수한 콩들이 앗 뜨거라 하고 하나가 튀어나오면,
연달아 너도나도 튀어나온다.
공들여 불을 지펴 달구어진 그 큰 가마솥은
콩 하나만 익히기 위함이 아니다.
솥안에 든 숱한 콩들을 고루고루 다 익힌다.
김제 모악산 금산사는 미륵대불로 유명하다.
미륵대불은 백제 유민인 만경 출신 진표율사가
미륵불의 수기를 받고 6길의 鐵佛을 조성한 것이다.

금산사 미륵전
이중환의 <택리지>에,
미륵전은 본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용소에 수만 섬의 소금을 부어 터를 닦아 세웠다 한다.
소(沼)를 메꾸어 세운 금당에 철불을 조성할 때 여러 차례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 정성에 감응하여 꿈에 미륵불이 나타났다.
“솥을 걸어라. 그 위에 부처를 세우면 바로 서리라”
미륵불이 가르쳐 주는 대로 행하였더니 과연 불상이 제대로 섰다.
6길 철불은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되었으며
지금의 미륵대불은 조선조 인조 때(1627) 세운 3존상이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철조 6장불을 받쳐주던 좌대(鐵須彌座)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은 우주의 중심이요 축을 상징한다.
미륵불이 철수미좌(蓮花座臺) 위에 섰다는 것은,
앞으로 오는 세상은 부처님의 기본 입각지가 이에서 바탕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모악산 근방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금산사 솥을 만져보았느냐” 묻는다고 한다.
미륵불을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으레 대불상 좌대 아래 굴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미륵이 밟고 선 가마솥(철수미좌)을 어루만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송대에서 짚신을 삼던 당신님이 김광선에게 물었다.
“형님 이름이 원호지라오?”
“그러지라”
김광선의 족보명이 圓鎬이다. 둥근 냄비라는 뜻이다.
“삭정이 불에도 포르르 끓는 냄비 정도 가지고 쓰겠오?
이 산 저 산 나무 다 잡아먹는 가마솥은 되야지요.”
당신님은 사석에선 열두살 연상인 김광선에게 존대말을 썼다.
“그러면 당신님은 머라 호를 지을라요?”
“나는 만생을 다 살리는 솥이 될라요.”
아마도 소태산이란 법명은 여기에서 발단된 것 같다.
스승에 의해 ‘솥산’이라 불리운 鼎山은 뒷날 이런 말을 했다.
“이 솥 鼎짜는 뜻이 깊다.
모든 곡식이 솥을 거쳐 나와야 먹을 수 있는 밥이 되듯이,
모든 법도와 공부인의 언동이 법주의 감정을 맡아 나와야
새 기운을 빌어쓰는 것”이라 하였다.(한울안한이치 6-25)
솥이란 무엇인가.
이 땅에 밥을 두고 사는 우리들의 행동반경을 압축한 것이다.
밥을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솥은 밥에 명을 걸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공감대를 의미한다.
대산은 三學을 솥에 비유했다.
“솥은 밥을 삶아내고,
법은 대도인을 삶고,
삼학은 세계인을 삶는다.
삼학 솥은 無量壽를 무한히 삶을 수 있다”(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194쪽)

솥은 세발이 달린 것을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친다. 부엌의 가마솥도 세 날개가 부뚜막에 걸린다. 가장 안정적인 포지션을 우리는 鼎立이라고 한다
.
사람의 몸은 밥만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법을 먹고 살아야 한다.
영육이 아울러야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소태산이 금산사에 간 때는 증산이 화천하지 10주기 무렵이었다.
증산은 죽기 전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 하였고
박중빈이 올 것을 예견하였음인지
‘솥이 들썩임은 미륵불이 출세함이로다’라 하였다.
금산사 미륵전에 어느 날 불공을 드리던 스님 하나가 죽었다.
소동이 나자 소태산이 나서 조용히 그의 이마에 열 十자를 그었더니 소생하였다.
10인 1단 단조직에서 소태산의 방위는 十이다.
여기에 하늘이 임하였노라는 뜻이다.
진짜 소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생불님이 나셨네!
미륵님 나셨네!
천사님께서 재림하셨다는 소문이 났다.
이렇게 민심이 술렁이자 주지가 경찰서에 밀고하였고
소태산은 김제경찰서에 잡혀가 1주일간 구금되었다.
소태산은 영광으로 내려가 2차 산상기도 해제식을 마치고
부안 변산 월명암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증산의 신도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그를 수소문하여 떼를 지어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월명암에 도저히 머물 수 없게 되자,
증산의 신도들은 비용을 마련하여
산 아래 실상사 옆 마을에 집을 마련하여 소태산을 모셨다.
1980년대 손바래기 증산생가에 안치되었던 초상화. 증산의 제자들은 그를 상제님, 천사님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증산은 "나는 代先生이다" 하였고 "내 일을 하러 뒤에 大先生이 온다"고 하였다.
그들은 금산사에 그가 온 것을 증산상제가 재림한 것으로 알았다.
증산의 제자들은 그를 옥황상제의 화신으로 알았다.
상제님처럼 위력을 베풀어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아 지상 선경을 건설하여 부귀 영달케 하여 주길 그들은 바랬다.
“나를 시루(甑山)로 보지 마라. 나는 솥이다.
내가 어릴 때 철모르고 산으로 기도하러 다닐 때
우리 모친께서 시루에 떡을 쪄주어서 매일 공을 드리기는 하였으나,
이제 나는 시루가 필요 없다.
나는 만생령을 먹여 살릴 밥을 짓는 솥이 되어야겠다”
소태산은 왜 솥이라 하였는가.
시루는 솥 위에 걸려야 제 구실을 한다.
솥은 시루마저 포용하여 완성계 차원을 의미한다.
그래서 九天上帝라 자칭한 증산의 경륜을 더 한층 살려
소태산은 하늘을 상징하는 十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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