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서는 단전주법을 가르치고 있다. 기운을 아랫배 단전에 집중하여 일체의 삿된 마음[邪心]을 일으
키지 않고 일심을 얻는 좌선법이다. 간화선에서 사용하는 1,700공안 중에서 20개만 선정하여 의두요목이
라 하고 좌선시간에는 연마하지 않고 좌선이 끝난 후에 잠깐잠깐씩 연마하도록 하고 있다.
선을 수행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좌선이 가장 중심이 되고 있다. 선의 궁극적인 뜻은 대기대
용을 마음대로 부려쓰는 것이며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요 실천이지만 오랜세월을 내려오는 동안에 정적 수
행방법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원불교에서는 무시선 무처선을 강조하게 되었고, 좌선뿐만 아니라 행선 입
선 와선[行,立,臥禪]까지 하도록 했다.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선이 오히려 가장 비활동적인 수행으로 변질되얶기 때문에 불교는 현실과 차츰 거
리가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는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선의 참모습을 되찾기 위하여 '무시
선 무처선' '동정간 불리선'을 강조하게 되었고, 간화선이나 묵조선이 아닌 단전주선을 가르치게 된 것이
다.
휴휴암 좌선문은 이미 수백여년 전에 완성된 것이지만 가장 활동적인 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나타내었다.
당시로서 이미 이러한 활동적 행동철학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놀랄만 하다. 그러나 수백여년이 지난 오늘
날의 선은 오히려 소극적이요 현실도피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원불교의 무시선 무처선은 더욱 높이 평
가될만한 것이며, 좌선문의 정신과 무시선 무처선의 정신은 크게 통하는 점이 많다. 따라서 원불교를 수
행하는 사람은 단전주법에 의한 좌선이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이 좌선문을 읽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좌선
문의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여 활불(活佛)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이 공덕을 열가지로 설명하였다. 곧
1.경거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진다.
2.육근동작에 순서를 얻는다.
3.병고가 감소되고 얼굴이 윤활하여 진다.
4.기억력이 좋아진다.
5.인내력이 생겨난다.
6.착심이 없어진다.
7.사심이 정심으로 변한다.
8.자성의 혜광이 나타난다.
9.극락을 수용한다.
10.생사에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좌선의 공덕이야말로 가장 큰 보물이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어떠한 부귀영화며 명예와 재
물인들 이보다 더 큰 보배일 수는 없는 것이다. 좌선은 앉아있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시선 무처선
이 되어야 하며, 좌선문의 정신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ㅡ중산 정광훈 정사ㅡ
휴휴암좌선문
대범 좌선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지선의 자리에 사무쳐서 마땅히 스스로 성성하게 함이니,
온갖 생각을 끊고 끊되 혼침한 데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욕심경계에 있으되 욕심이 없고
티끌 세상에 살되 티끌에 벗어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바깥 경계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안 마음이 바깥 경계로 나가지도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주착하는 데도 없고 의지하는데도 없어서
떳떳한 광명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외경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중심이 적적하여 요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밖으로 쏠리는 정신 빛을 돌이켜 비쳐서
자성 본원에 사무치고 있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역경과 순경에도 끌리는 바가 없고
소리와 색에도 굴리어 가는 바가 없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깊숙한 데 비치매 그 광명이 일월에 넘치고
만물을 화육하매 그 덕이 건곤에 승하는 것을
이르되 선이라 하며,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정에 드는 것을
이르되 좌라 하고,
차별 없는 경계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나타냄을
이르되 선이라 하나니,
종합하여 말할진대,
천만경계에 치연하게 작용하나
마음의 정체가 여여 부동함을 이르되 좌요,
종으로나 횡으로나 묘용을 얻어서
일 일에 걸림 없음을 이르되 선이니,
대략 말하면 이와 같으나,
자상히 들기로 하면 지묵으로 능히 다할 바가 아니라,
나가의 큰 정은 정도 없고 동도 없으며
진여의 묘한 체는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라,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공이로되 공도 아니요, 유로되 유도 아니라,
크기로는 바깥 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대기와 대용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나니,
뜻있는 수도인은 마땅히 잘 참구하여
크게 깨치기까지 한정하고 공부하면,
홀연히 깨치는 한 소리에
허다한 영묘가 다 스스로 구족할지니,
어찌 저 사마 외도의 전수하는 것만으로써
스승이니 제자니 하며,
또는 얻은 바가 있는 것으로써
구경처를 삼는데 비할 바이랴.
休休庵坐禪文
夫坐禪者는 須達乎至善하야 當自惺惺이니
부좌선자는 수달호지선하야 당자성성이니
截斷思想호대 不落昏沈을 謂之坐요
절단사상호대 불락혼침을 위지좌요
在欲無欲하고 居塵出塵을 謂之禪이며
재욕무욕하고 거진출진을 위지선이며
外不放入하고 內不放出을 謂之坐요
외불방입하고 내불방출을 위지좌요
無着無依하야 常光現前을 謂之禪이며
무착무의하야 상광현전을 위지선이며
外撼不動하고 中寂不搖를 謂之坐요
외감부동하고 중적불요를 위지좌요
廻光返照하야 徹法根源을 謂之禪이며
회광반조하야 철법근원을 위지선이며
不爲逆順惱하고 無爲聲色轉을 謂之坐요
불위역순뇌하고 무위성색전을 위지좌요
燭幽則明逾日月하고 化物則德勝乾坤을 謂之禪이며
촉유즉명유일월하고 화물즉덕승건곤을 위지선이며
於有差別境에 入無差別定을 謂之坐요
어유차별경에 입무차별정을 위지좌요
於無差別境에 示有差別智를 謂之禪이니
어무차별경에 시유차별지를 위지선이니
合而言之컨댄
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이나 正體如如를 謂之坐요
치연작용이나 정체여여를 위지좌요
縱橫得妙하야 事事無碍를 謂之禪이니
종횡득묘하야 사사무애를 위지선이니
略言如是나 詳擧인댄 非紙黑能窮이라
약언여시나 상거인댄 비지묵능궁이라
那伽大定은 無靜無動하고
나가대정은 무정무동하고
眞如妙體는 不生不滅이라
진여묘체는 불생불멸이라
視之不見하고 聽之不聞하며
시지불견하고 청지불문하며
空而不空하고 有而非有라
공이불공하고 유이비유라
大包無外하고 細入無內하며
대포무외하고 세입무내하며
神通智慧와 光明壽量과
신통지혜와 광명수량과
大機大用이 無盡無窮하나니
대기대용이 무진무궁하나니
有志之士는 宜善參究하야 以大悟爲則하면
유지지사는 의선참구하야 이대오위즉하면
㘞地一聲後에 許多靈妙皆自具足하리니
화지일성후에 허다영묘개자구족하리니
豈同邪魔外道 - 以傳授로 爲師佐하고
기동사마외도 - 이전수로 위사좌하고
以有所得으로 爲究竟者哉아.
이유소득으로 위구경자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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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
夫坐禪者는(부좌선자) 대범 좌선이라 하는 것은
須達乎至善하야(수달호지선) 모름지기 지선의 자리에 사무쳐서
當自惺惺이니(당자성성) 마땅히 스스로 성성하게 함이니.
截斷思想호대(절단사상) 온갖 생각을 끊고 끊으되
不落昏沈을(불락혼침) 혼침한 데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謂之坐요(위지좌) 이르되(좌)라 하고,
부좌선자는 수달호지선하야 당자성성이니 절단사상호대 불락혼침을 위지좌요
在欲無欲하고(재욕무욕) 욕심경계에 있으되 욕심이 없고
居塵出塵을(거진출진) 티끌 세상에 살되 티끌에 벗어나는 것을
謂之禪이며(위지선) 이르되(선)이라 하며,
재욕무욕하고 거진출진을 위지선이며
外不放入하고(외불방입) 바깥 경계가 안으로 들어오지도 아니하고
內不放出을(내불방출) 안 마음이 바깥 경계로 나가지도 아니하는 것을
謂之坐요(위지좌) 이르되(좌)라 하고,
외불방입하고 내불방출을 위지좌요
無着無依하야(무착무의) 주착하는 데도 없고 의지하는데도 없어서
常光現前을(상광현전) 떳떳한 광명이 앞에 나타나는 것을
謂之禪이며(위지선) 이르되(선)이라하며
무착무의하야 상광현전을 위지선이며
外憾不動하고(외감부동) 외경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中寂不搖를(중적불요) 중심이 적적하여 요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謂之坐요(위지좌) 이르되(좌)라 하고,
외감부동하고 중적불요를 위지좌요
廻光返照하야 (회광반조) 밖으로 쏠리는 정신 빛을 돌이켜 비쳐서
徹法根源을 (철법근원) 자성 본원에 사무치고 있는 것을
謂之禪이며 (위지선) 이르되(선)이라 하며,
회광반조하야 철법근원을 위지선이며
不爲逆順惱하고(불위역순뇌) 역경과 순경에도 끌리는 바가 없고
無爲聲色轉을(무위성색전) 소리와 색에도 굴리어 가는 바가 없는 것을
謂之坐요(위지좌요) 이르되(좌)라 하고
불위역순뇌하고 무위성색전을 위지좌요
燭幽則明逾日月하고(촉유즉명유일월) 깊숙한 데 비치매 그 광명이 일월에 넘치고
化物則德勝乾坤을(화물즉덕승건곤) 만물을 화육하매 그 덕이 건곤에 승하는 것을
謂之禪이며(위지선) 이르되(선)이라 하며,
촉유즉명유일월하고 화물즉덕승건곤을 위지선이며
於有差別境에(어유차별경) 차별있는 경계에서
入無差別定을(입무차별정) 차별없는 정에 드는 것을
謂之坐요(위지좌) 이르되(좌)라 하고,
어유차별경에 입무차별정을 위지좌요
於無差別境에(어무차별경) 차별없는 경계에서
示有差別智를(시유차별지) 차별있는 지혜를 나타냄을
謂之禪이니(위지선) 이르되(선)이라 하나니
어무차별경에 시유차별지를 위지선이니
合而言之컨댄(합이언지컨대) 종합하여 말할진대
熾然作用이나(치연작용) 천만경계에 치연히 작용하나
正體如如를(정체여여) 마음의 정체가 여여 부동함을
謂之坐요(위지좌요) 이르되(좌)요,
합이언지컨대 치연작용이나 정체여여를 위지좌요
縱橫得妙하야(종횡득묘하야) 종으로나 횡으로나 묘용을 얻어서
事事無碍를(사사무애) 일일에 걸림 없음을
謂之禪이니(위지선) 이르되(선)이니,
종횡득묘하야 사사무애를 위지선이니
略言如是나(약언여시) 대략 말하면 이와 같으나
詳擧인댄(상거) 자상히 들기로 하면
非紙黑能窮이라(비지묵능궁) 지묵으로 능히 다할 바가 아니라,
약언여시나 상거인댄 비지묵능궁이라
那伽大定은(나가대정) 나가의 큰 정은
無靜無動하고(무정무동) 정도 없고 동도 없으며
眞如妙體는(진여묘체) 진여의 묘한 체는
不生不滅이라(불생불멸) 생도 아니요 멸도 아니라
나가대정은 무정무동하고 진여묘체는 불생불멸이라
視之不見하고(시지불견)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聽之不聞하며(청지불문)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空而不空하고(공이불공) 공이되 공이 아니요
有而非有라(유이비유) 유로되 유도 아니라
시지불견하고 청지불문하며 공이불공하고 유이비유라
大包無外하고 細入無內하며(대포무외 세입무내) 크기로는 바깥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
神通智慧와光明壽量과(신통지혜 광명수량)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大機大用이 無盡無窮하나니(대기대용 무진무궁) 대기와 대용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나니,
대포무외하고 세입무내하며 신통지혜와 광명수량과 대기대용이 무진무궁하나니
有志之士는 宜善參究하야(유지지사 의선참구) 뜻있는 수도인은 마땅히 잘 참구하여
以大悟爲則하면 㘞地一聲後에(이대오위칙 화지일성후) 크게 깨치기까지 한정하고 공부하면 홀연히 깨치는 한 소리에
許多靈妙-皆自具足하리니(허다영묘-개자구족) 허다한 영묘가 다 스스로 구족할지니
유지지사는 의선참구하야 이대오위칙하면 화지일성후에 허다영묘-개자구족하리니
豈同邪魔外道-以傳授로 爲師佐하고(기동사마외도-이전수 위사좌) 어찌 저 사마 외도의 전수하는 것만으로써 스승이니 제자니하며
以有所得으로 爲究竟者哉아(이유소득 위구경자재)
또는 얻은 바가 있는 것으로써 구경처를 삼는 데에 비할 바이랴.
기동사마외도-이전수로 위사좌하고 이유소득으로 위구경자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