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님께서 일원상의 진리를 밝혀주시고 뒤에 신앙을 밝히신 것은 누가 되었던 내 법을 만난 사람은 만나는 그 순간부터 진리적 사고를 하고 진리적 신앙을 하기를 간절히 염원하셨기 때문에 생각되어집니다.
‘일원상의 신앙장’을 보면 마지막에 ‘이대로 믿는 것이다.’하고 한 번만 명시해도 될 텐데, 대종사님께서는 한 조목 한 조목에 다 ‘믿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으며’를 계속 말씀하신 것은
“설사 모르더라도 그대로 믿어라. 이것이 사실이고 절대 거짓이 아니므로 그대로 믿어라.”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장을 대할 때 진정으로 일원상의 진리로 믿는가. 믿으면 얼마나 믿는가.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믿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강도가 강하고 깊을수록 마음이 맏음의 뿌리에서 나오므로 진리적 사고가 나오게 되고 자연히 마음이 변화하고 생활도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 어느 성자가 신앙의 대상에 대해서 이처럼 소연하게 그 길을 밝혀주신 성자가 있을까 생각되어집니다.
결국 일원상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일원상의 진리를 우주 만유의 본원으로 믿는 것이며, 일원상의 진리를 제불제성 심인 즉 제불제성의 마음이 일원임을 믿고 일체중생의 본성 즉 일체중생이 참 마음자리가 일원임을 믿는 것이 곧 일원상의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우주 만유의 본원이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을 일원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비고, 밝고 조화로운 것입니다.
제불제성의 심인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떤 것이 모든 성자들의 마음인가.
비고, 밝고 조화로운 것입니다
일체중생의 본성은 어떻게 생겨는가.
내 마음, 참 마음자리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
비고 밝고 조화로운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믿으면 진리를 깨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일원상의 신앙에 대한 실천 강령으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법을 내셨지만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일원상의 신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일원상의 신앙 한 조목 한 조목에 그 길을 안내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원상의 진리에 대한 신앙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말로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불공을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