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11-01 07:51
[목요공부] 성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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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소명
 조회 :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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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 지타원 정명중 교감님을 모시고, 김경애, 김자원, 이준희, 김화성, 신소명
3.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선과 악을 초월한 자리를 지선(至善)이라 이르고, 고와 낙을 초월한 자리를 극락이라 이르나니라."
4.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도는 원융(圓融)하여 유와 무가 둘이 아니요,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며, 생과 사가 둘이 아니요, 동과 정이 둘이 아니니, 둘 아닌 이 문에는 포함하지 아니한 바가 없나니라."
-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간 사람, 지나간 일에 매이지 말고 살아야 한다.
7.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만일 견성만 하고 성불하는 데에 공을 들이지 아니한다면 이는 보기 좋은 납도끼와 같아서 별 소용이 없나니라."
8.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솔성(率性)이라 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소유인 것을 알았으나 전일에 잃어버리고 지내는 동안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바 되었는지라 여러모로 주선하여 그 잃었던 권리를 회복함과 같나니라."
- 옛 불교에서는 '견성, 성불'이 주가 되었으나, 원불교에서는 '성불제중'이 주다. 견성이란 게 무엇인가? 입정, 선정을 통하여 언제나 돌아갈 곳, 그곳이다.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보면 부모는 자식 앞에서 본성을 나투기가 어렵다. 자식에게 어떻게 해 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것이 자식의 능력을 크게 키우기도 하지만, 비인간적으로 키울 수도 있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마라> <사소한 것에 화를 내지 마라>는 책을 보면, 첫째, 비우자, 놓자. 둘째, 활용하는 '연습, 습관'이 필요하다. 이것이 '수행'이다. 성품을 보아, 성품대로 살고자 하는 것, 이것이 연습이다. 변화되는 사람, 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습은 연구가 아니다. 저절로 될 때까지 하고 또 하는 것이다. - 정전은 총서편, 교의편(성리를 풀어서 해 놓은 것), 수행편(성불하기 위한 솔성, 훈련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心地)는 성품(性品)이다. 원래 요란하지 않고, 원래 어리석지 않고, 원래 그르지 않는 게 심지, 곧 성품이다. 그것이 대소유무 시비이해를 따라 상대심 시기심 등에 따라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르게 나타난다. 요란하지 않다는 것은 분수에 맞다는 것이다. 편안하다는 것이다. 물론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신분의성에서 '분'은 지혜다. 빈 마음으로 내놓아야 한다(공적영지). 끌림으로 내놓는 알음알이는 지혜가 아니다. 탐(욕심) 진(화) 치(어리석음)는 삼독심이다. 치심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열등감으로 나타나 우울증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를 수도 있다. '체 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잘 모르면서도 아는 체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잘 난체, 있는 체로 나타날 수도 있다.
* 주보에 실린 내용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읽어볼 것!!
나 자신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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