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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12-02 15:09
[목요공부] 12월 2일, 불지품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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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신소명
 조회 : 3,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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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 지타원 정명중 교감님을 모시고, 김경애, 강현주, 김자원, 최홍은, 정도선, 이준희, 박현화, 신소명
2.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저 태양보다 다습고 밝은 힘이 있나니, 그러므로 이 자비가 미치는 곳에는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이 녹아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변하며, 잔인한 마음이 녹아서 혜시하는 마음으로 변하며, 사상(四相)의 차별심이 녹아서 원만한 마음으로 변하여, 그 위력과 광명이 무엇으로 가히 비유할 수 없나니라." '자비'와 '대자대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국한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비는 나와 가까운 인연에 제한적으로 나퉈지지만, 대자대비는 모든 생령을 살리고 변화시킨다.
9. "법위(法位)가 항마위(降魔位)에만 오르더라도 천인(天人) 아수라(阿修羅)가 먼저 알고 숭배하나니라." '항마위'는 마를 항복받고 법대로 하는 등급이다. 법(法)이란 무엇인가? 순리대로 하는 것이 바로 법이다. '법위 등급'이 정전 맨 뒤쪽에 위치한 것은 대단한 공부 표준이다.
13. 사람은 왜 천지의 주인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천지의 도를 보아다가 각자의 도구같이 쓰게 되기 때문이다. 천조의 대소 유무를 원만히 깨달아서 천도를 뜻대로 잡아 쓰는 불보살들은 곧 삼계의 대권을 행사한다.
일원상의 진리는 '불변'과 '변'으로 가름해 볼 수 있다. 둘은 아니지만 나눠서 말하자면, '불생불멸(윤회, 영생)의 이치'는 불변하는 자리다. 하지만 그것은 '인과의 이치'에 따라 변하고 있다. 인과는 희망의 이치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변화의 이치에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훈련법'과 '일기법'을 내놓으셨다.
천인은 천지의 도를 보아다가 각자의 도구같이 쓰는 사람이며, 우주의 이치를 보아다가 인과를 변화시키며 사는 사람이다. 변과 불변이 다른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장중에 한 구슬같이 환히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알기 위해 '경(經)- 정전, 대종경 등-'을 공부한다.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우주에 진리가 있고, 성인이 나시면 그 성인에게 진리가 있다가, 성인이 가시면 그 진리가 '경'에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해도 경을 통해서 밝혀갈 수 있다.
14. "중생들은 그릇이 작은지라, 없던 것이 있어진다든지 모르던 것이 알아지고 보면 곧 넘치기가 쉽고 또는 가벼이 흔들려서 목숨까지 위태롭게도 하나, 불보살들은 그 그릇이 국한이 없는지라, 있어도 더한 바가 없고 없어도 덜할 바가 없어서 그 있는 바를 온전히 지키고 그 명(命)을 편안히 보존하나니라." 큰 경계를 당해 보면, 큰 그릇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원불교 공부를 하고 인과의 공부를 아는 사람은 어떤 경계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인과는 돌고 도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작용에 따라 진급하고 강급한다. 공부인 비공부인 표가 난다. 그래서 (13장 말씀에서처럼) 인권이 천권보다 더 존중되는 것이다.
15. "천상락이라 함은 곧 도로써 즐기는 마음락을 이름이요, 인간락이라 함은 곧 형상 있는 세간의 오욕락을 이름이라."
16. "사흘의 마음 공부는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낸 물건은 하루 아침 티끌이라." 유에 집착하는 것은 인간락이며, 유무에 집착하지 않으면 천상락이다. 은혜의 씨를 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 '보은자'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 내가 기쁘게 살 수 있고, 아이들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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