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신문 (6/3/2016)에 원불교 (교리도에 신앙문과 수행문이 있는데, 원불교는 병행을 중시하지만 불교와 같이 일종의 수행종교)에서도 신앙을 강조 [아주 완벽하지 않은 종교인이 미륵불 내세 생각하며 당대 고려하지 않는 격 → 無相 필요한데, 잘 못 하면 ‘우물 안 개구리’ 되며 주위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기만의 우월감을 가지며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국수적 됨 (자기 소속 집착에서 벗어나는 ‘응무소주이생기심’ 필요), 믿음 (信)으로 견성 가능 (대산 종사님의 ‘꾸어서라도’) 하지만, 선천의 천권 신앙, 후천의 인권 생활 시대에 생활에서 보여 지는 병행에 따른 성불이 훨씬 더 어려움] 하자는 기사가 나왔는데, 과학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종교 [대산 종사님에 의하면 수운 신사 법문 중 ‘성경신’을 소태산 대종사님이 가장 좋아 하셨다는데, 보통 종교인 (꾸어서 견성한 자)은 잘 못된 ‘신성경’과 잘 못된 ‘신경성’을 따름, 비종교적 일반인들이 보기에 지금 후천에, 종교는 자기만 옳다면서 이익 집단화하고 있으며 발전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전도(顚倒)된 확신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후유증으로 세계 여러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생각]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기존 정의의 종교가 흔들리고 새 종교 필요합니다. 잘 못하면 뒷북칩니다! 기존 정의의 종교가 사라질 것을 경남교구장으로 계신 수산 김경일 교무님이 매체에서 지적하였으며, 선진국 미국 (매우 실용적임)에서 불고 있는 개인적 명상 (종단 불교가 아니고 불법의 수행법을 빌려 온 것이며 일종의 ’생활시 불법’임, 기후 변화와 인공 지능의 영향으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만, 포기하면 안 되며 시스템 변경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매우 높으니 자주력 필요) 바람이 이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5/1/2016 전국에서 5만명 이상 (실제 정법 신앙자는?)이 모인 개교 100주년 (원불교는 초기에 일본 압제 등으로 고생하였지만, 상대적으로 순교자가 적고 이제까지 쉬워서 허황된 희망만 하며 노력 없이 자만하고 있음) 행사와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 법문에 도취 (너무 쉽게 일어서서 앞으로 시기하는 무리가 주위에 있을 것임, 자아도취만하고 훈련으로 자기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허황된 착각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함! 출재가 누가 생활에서 정법을 실행하는가? 주인은?) 하지 않고 우리는 자신 단계 올리는 훈련 (소태산 대종사님의 금강산 법문, 3대말을 생각함, 대산 종사님의 ‘공부위주 교화종’ 법문)으로 보림 (육조대사의 경계 많은 긴 기간 보림!) 적공 겸손 병진 자중 [정산종사님의 ‘명대실소’ 경고 법문, 이소성대 보림 (無조동 경동) 생각남] 필요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병진을 강조하신 이유는 취사 없는 수양/연구는 모르는 것과 결과가 같기 때문 (쓰지 않는 부채 격으로 병진 필요) 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은 늦더라도 인도 상 요(要)법 (5만년 대운을 생각하면 지금 늦은 것도 아님!)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저축조합과 방언공사로 이소성대하셨습니다. 원불교 초기의 적은 숫자 교도와 규모를 다시 생각하여 자중하며 지금 출재가 모두들 정진 적공 병진합시다! 현재 교화를 고려하여 신앙 [원불교는 유교와는 달리 신앙문을 가진 종교이며 일반인들은 빡빡한 현실 생활에서 위로 받기 (행복) 위하여 신앙 필요]성을 증진하자는 것에 대한 유혹이 있겠지만, 현재 무아봉공의 생활 [주위 인연 교화가 아니라 교리 교화에 따라 생활로 이어져야함, 비효율적인 종교 시설보다도 생활 (→영육쌍전)에서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야 함 → ‘수행의 훈련’ 필요]이 더욱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여 저는 잠시 교리도를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 (청탁본무이므로 출재가 거진출진으로 같이 어울리는 청탁병용 생활이 몸에 배신 분)은 일본 압제 중에서도 열반 전에 지역성 초월한 교리도 틀을 ‘불교 정전’에 내놓으시었으며 (여기에는 ‘사은’ 개념에 포함되는 ‘사요’가 빠지고 사은에 보답하는 보은의 대요가 있음), 그 후 2대 종법사이신 정산 종사님 때 [병고 중이었으므로 3대 대산 종사님 (대종경 제9 천도품 32-38장 참고)이 주도 하시었을 것?이며 2대 정산 종사님께서 추인?하셨을 것임] 현재 교전에 있는 ‘정전’ 교리도가 완성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진리인 일원 ‘하나’님을 원불교에서는 일원상 법 (교리도, 정전과 대종경 불지품 20장)으로 나타내고 또 인과보응 (음양상승 과학)의 신앙문을 통하여, 인격신 기존 종교의 틀을 혁신적으로 벗어났습니다. 허황된 종교 신앙보다는 몸 받은 생활을 중시하는 후천 현재 일반인의 상황을 고려한 후, 확장하여 신앙문과 수행문 이외에 저는 추가로 삼학처럼 3개로 나누어 (기실은 ‘하나’로 서로 연결) 후천 종교에 필요한 것 같아 새롭게 취사/사요 생활문 (대종경 제15 부촉품 18장 참고, 비종교적)을 가운데에 넣은 새 교리도를 잠정 제안하여 첨부하였는데, 욕심이 과하여 복잡해졌습니다. 연마 중간 과정이라 여기시기 바랍니다. 역사에서 쌓인 모든 원한을 증산 천사의 해원 상생으로 해소하여 인간 몸 받은 은혜로서 합력하여야 합니다. 기존 불교와는 달리 보통 일반인이 깨닫기 전 [견성은 밥 먹기보다 쉬운 것 (대종경 제1 서품 11장 참고)]이라도 생활 중 어느 때라도 시작할 수 있게 ‘사은사요’ ‘삼학팔조’ 교리를 소태산 대종사님은 간단히 내 놓으시었습니다. 일원상, 사은, 삼학 이외에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대종경 제15 부촉품 16장 참고). 이것들만 건드리지 않아 주세불의 제생의세 취지를 살린다면 각자 자기에 맞게 수정하여 항상 유념 사용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물질개벽의 과학 발전과 인터넷으로 진실을 알게 된 후천 일반인은, 음계 신 자체 신앙하며 신앙 (모두 원래 부처 → 간단하게 세례하며 사후 천국 보장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