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2008-09-04 17: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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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추상(追想)
조 정제
작년에 서재 앞에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곳은 추워서 단감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홍시를 그리며 보통 감나무를 심었다. 키가 내 두 배나 된다. 올해는 감을 수확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나는 정원에 두세 번 감나무를 심었지만 번번이 살려내지 못했다. 우리 집은 분당 너머 해발 270미터나 되는 불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날씨가 추운 탓인가 모르겠다. 겨울에 내 딴엔 월동에 대비하느라 감나무 둥치를 헌 옷가지 같을 것으로 싸주었으나 견뎌내지 못했다.
작년 겨울에는 감나무가 추위를 견뎌내도록 새끼를 한 묶음 사와서 큰 둥치 뿐 아니라 잔가지 까지 정성스레 겹겹이 감아주었다. 미술작품 같이 제법 근사했다. 드디어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나는 감나무가 살았는지 아침마다 살펴보았다. 성질이 급한 나는 가지를 손톱으로 쪼금씩 볏겨 보면서 애를 태웠다.
늦은 4월인가 이른 5월이었든가? 드디어 양지 바른 가지에 움이 돋기 시작하나 했더니 순식간에 많은 잎이 뻥긋뻥긋 경쟁하듯이 터져 나왔다. 5월이 지나갈 즈음에는 흰 감꽃이 무수히 피어나기에 지레 맛있는 홍시를 기대하고 행복감에 졌었다.
웬걸! 어느 날 비가 쏟아진 다음날 뜰에 나가보았더니 감꽃이 하얗게 시체같이 나둥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몇 개가 살아남아 가지에 옹골차게 매달려 있어 위안 삼았으나 그 뒤에 그마저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겨우 하나만 달랑 외롭게 남아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 속에 작은 감이 악착스레 버티고 있고 그것도 나날이 커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부듯하였는지 모른다.
내 고향 따스한 남도의 시골 농가에는 100평가량의 남새밭이 있었고 돌담 가까이 큰 감나무가 서너 그루 버티고 서 있었다. 감꽃이 필 때면 떨어진 감꽃을 실에 엮어서 어머니 목에 걸어주기도 하고 할머니 머리에 월계관같이 얹어 드리기도 했었다. 할머니는 손자의 재롱이 귀여웠던지 삼배 일손은 멈추지 않고 잠깐 웃음을 지워 보이고 엉덩이를 똑똑 두들겨 주었었지.
가을이 되어 풋감이 떨어지면 우리 집 풋감이 모자랐던지 나는 일찍 일어나 이웃 숙부 집에 살금살금 들어가 떨어진 풋감을 주어오기도 했다. 그 풋감을 선반에 올려놓고 기다리면 작아도 홍시가 되었고 과자라고 구경하지 못하던 그 시절이라 그 홍시는 참 맛있었다. 홍시는 이 빠지고 볼이 패인 할머니도 매우 즐겨 드셨다. 감나무에 홍시가 익어 가면 그걸 따느라 나무에 올라갔다. 까치가 먼저 쪼느냐 내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기도 했다. 저 높이 올라 갈 수 없는데 있는 홍시는 장대로 작은가지를 꺾어서 기어코 따내었다.
윗동네에 있는 외가 집에 가면, 우리 집에 없는 단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간혹 심부름 갈 때면 난 우물가 단감나무 주변을 맴돌았다. 단감이 어린 내 주먹만 했으나 외숙모는 따먹어 보란 말이 없었다. 참으로 서운했다. 아마도 외숙모는 아직 덜 익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나 그 당시 난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섭섭했기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까.
가을하면 파란 하늘을 배경삼고 발갛게 익은 감나무를 연상한다. 추석 지내려 진주를 지나 고성으로 접어드는 고향 가는 길 연변에는 초가가 옹기종기 졸고 앉았고 그 위에 감나무들이 태양을 갈무린 듯 눈부신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뽐내었다. 참으로 한가롭고 풍요로웠다.
오늘도 하나 뎅그렇게 매달려 익어가고 있는 감을 바라보니 저 옛날 감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아놓고 누어서 <루팡(?)>이란 탐정이야기나 만화를 읽으며 노닥거리던 기억이 살아난다. 언뜻 진묵대사의 일화가 스쳐간다. 대사님이 감나무 아래 앉아서 한 여인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인의 은근한 교태에 스님이 솔깃해 보였다. 그 때에 홍시가 떨어지자 스님은 여인을 매정하게 밀치고 홍시를 주우려 손을 뻗쳤다. 아마도 그 여인은 술잔을 내밀었으나 대사님은 찻잔으로 받았으리라. 나도 홍시를 워낙 좋아하니 그 까짓 이쁜 여인은 밀쳐버리겠지?
올해 감꽃이 많이 떨어진 것은 아마도 작년에 심었기 때문에 채 착근이 잘 안되었고 그름 기운이 모자랐기 때문인지 모른다. 올 겨울에는 미리 유기질 비료를 잔뜩 주어보련다. 홍시 하나 갖고야 도반(道伴)과 나눠 먹을 수 있겠는가?
감나무 입장에서 보면 수산님네 밭 적응기도 있고 하니 하나 키워보고 저도 내년에는 주렁주렁 열어주지 않을까요? 그땅에서 뿌리 내리고 열매 맺을 힘을 축적하느라 그랬을까 싶습니다.
감나무 말씀하시니 저희 친정 옛집 마당이 생각납니다. 친정아버지께서 감나무를 두 그루 사오셔서 심으셨는데 다음 해 수산님네 감나무처럼 도대체 열매를 맺을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께서는 감나무가 아니라 고염나무 사온 것 아니냐며 타박을 하셨지요. 그러더니 이듬 해부터는 아주 튼실한 감을 주렁주렁 열리더라구요. 아버지 어깨가 으쓱하셨구요. 막내 사위 주겠다고 바구니에 고이 두었다가 내주시던 그 집, 그 부모님 마음이 새삼 떠오릅니다.
내년에는 감따는데 일손 빌려 드릴게요..... 김경애 | 08-09-04 20:17 | 댓글달기
감나무 가지에 마지막 잎새 같은 홍시 하나를 늘 바라보시는 수산님, 전타원님.....
지극히 한국적인 전타원님 모습에서 홍시가 괜히 떨어질리 없고,
설령 떨어진들.... 아무려면 어느 누구가 감히 매정하게 조 나무에 달린 전 홍시님을 밀치고, 마트에서나 파는 감나무에 달린 그저 그런 홍시 하나를 주우려고 손을 뻗칠까?
꾸벅. 못된 놈이 엉덩이에 뿔난다고 수산님에게 감히 죄송스런 농 한 글 올렸습니다. 최명찬 | 08-09-04 23:59 | 댓글달기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산님 대단하십니다. 유신화 | 08-09-05 19:10 | 댓글달기
감나무는 남쪽 지방 양지바른 곳에서 잘 크고 감도 잘 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자라다가도 한해 겨울이 몹시 추우면 잘 죽기도 합니다.
하기야 옛날에 비하면 많이 따뜻 해졌스니까 잘 자랄 지도 모르겟네요.
감 한두게는 까치 밥으로 둔다고 하지요.
하얗게 눈 내린 감나무에 빨간 홍시감 따뜻한 그림이네요. 김경원 | 08-09-05 21:46 | 댓글달기
전문가 수준 이십니다. 특히 수산님의 글엔 이렇게 꼬리글이
많이 달리는건 너무나 공감할수 있는 글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수산님댁 연꽃과 감 나무는 분당교당 도반들이 같이 키워가는
기분입니다. 꾸준히 관심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임성명 | 08-09-08 16:10 | 댓글달기
기분이라는 표현이 매우 함축적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수산 | 08-09-09 23:03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