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민 2008-10-10 10:34:43
조회수 : 2,886
지난 달 9월 9일 비원옆 은덕문화원에서 개최된 소태산 아카데미 2기 강좌 개강일 김지하 선생님의 2시간짜리 강연 ‘촛불과 횃불의 차이’를 들었습니다. 촛불집회를 후천개벽의 표징으로 여기고 이를 찬양하였으며 또한 촛불집회를 저지한 정부와 그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을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있구나라는 인상을 심어 주는 강의였습니다. 저는 김지하 선생님이 좌익 극렬분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자가 소태산 아카데미라는 이름하의 강의가 가능하도록 기획을 주도한 이선종 서울 교구장님께 절망하였습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원광지 8월호에서 원불교가 7월 5일 시청앞 집회에 참가한 사실을 특집으로 다루었을때 몹시 부끄러워 하고 있던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는데 마침 김 지하 선생의 그런 강의를 듣고 소태산의 개벽 운동과 좌익 운동가들의 세상 바꾸기 운동이 등가의 대우를 받고 있는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분기 탱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름 후 제가 이선종 교구장님과 다른 수강생 약 40여명 앞에 나가 발언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촛불집회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 하엿습니다.
“외국인들이 볼때 부러워하던 한국인들의 집단행동은 IMF 때 금모으기 운동과 월드컵때 시청앞에 모인 응원인파였다. 이제 외국인들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부끄러운 집단 행동 하나가 바로 촛불집회였다. 한 마리의 광우병 소도 없었고 한사람의 광우병 사망자도 없었는데 앞으로 생길지 모른다는 앞선 걱정과 근거없는 거짓 괴담 소문에 근거해서 철없는 중학생들 아줌마들 유모차 부대들 그리고 쇠고기와 무관하게 이명박 보기싫다는 인상주의 반대파들 또한 그들을 이용하겠다는 훅(좌익) 성향운동가들이 모여 난동을 부린 것이 촛불집회였다. 그들은 멜라민 분유로 어린이 들이 죽어 가고 있는 실체 앞에서는 왜 모이지 않는가? 무슨 후천개벽의 표징이냐? ”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내 놓지 못하는 (대다수의 원불교인들이 그렇기 때문에 한심하다는 욕을 듣고 있지마는) 많은 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조선일보 1면에 김지하 선생의 글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찬양한 것은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기 전의 그러니까 순수한 걱정과 깨끗한 염원의 모임 그리도 그 모임의 도구로서의 촛불, 그런 것이었구나, 내가 오해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할려면 바빠 죽겠는데 이를 미루고 부랴부랴 이 글을 씁니다. 왜냐하면 김지하 선생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는 고백을 빨리 해야 할 만큼 그는 한국 지성계를 리더하는 큰 지식인이요 사상가이며 시인이며 또한 소태산 아카데미 원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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