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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섬 연륙교

수산 | 2008-11-04 16:28:55

조회수 : 2,273

 

       *** 이 글은 콩트와 비슷한 장편소설입니다. 단편소설보다 짧은 것이지요. 재미 삼아 읽어보세요.                  
       *** 운영진의 도움으로 1차 수정하였습니다. 콩트의 속성에 따라  막판의 반전을 극화하였고  원불교의 냄새를 더 강하게 풍기려 시도하였습니다.
  

 

사랑섬 연륙교


  늦가을 해질녘 스산하게 단풍잎이 흩날렸다. 정훈은 키미를 이끌고 앞산에 올라갔다. 언젠가 개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가 한 할머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큰 개가 사자같이 무섭다고 자지러졌었다. 그 후론 인적이 뜸한 해거름이 되어서야 키미는 목줄에 묶인 채 주인과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훈은 풍자조의 개그가 떠올라 씩 웃었다.

‘개를 안고가면 개 같은 놈, 개보다 뒤에 가면 개만 못한 놈, 개보다 앞서 가면 개보다는 나은 놈.’ 개판 세상에 사람의 인격이 견격(犬格)이나 진배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해학이 아닌가.

  키미는 멍에에서 풀려나자 꿩을 쫓아 산을 휘젓고 다녔다. 정훈은 낙엽이 쌓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손수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꺼냈다. 냄새를 맡았는지 키미가 달려와 쪼그리고 마주 앉았다. 정훈은 키미에게 빵 한 조각 물려주고 자기도 한 입 씹었다. 키미와 나눠 먹으니 입맛이 도는 것 같았다. 정훈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아내나 딸년에게도 무능력자로 따돌림 당하지만 키미는 한결같았다.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너를 내보내야겠다는 구나. 우리 집에 도둑이 훔쳐갈 것도 없고, 가계비용을 줄이자면 네가 먹어대는 인공사료 값이라도 절약해야한다고…. 한달 사료 값이 3만 원이나 들어간다고 하니 내 주제에 아무 말도 못했지. 네가 없으면 누구랑 정을 붙이고 살지?” 키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픈 눈빛을 보였다.

  정훈은 하루 세끼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다고 해서 삼식(三食)이라 불린다. 정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법 알려진 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불황이란 이유로 허무하게 명예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의 아파트까지 정리해서 분당 중심가에 어렵사리 고급 카레전문점을 차렸다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지금은 불곡산 너머 산골 마을의 허름한 농가개량주택으로 밀려나서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이 외딴 농가는 이른 아침 한차례 부산을 떨고 나면 삼식이와 키미 만 호젓이 남는다. 아내는 아랫마을 아파트촌에 파출부로 일하러 나가고, 여고를 갓 졸업한 영미는 배꼽을 드러내놓고 덩달아 따라 나선다.

  정훈은 아무도 없는 낮에는 산비탈을 층층이 개간해서 만든 채전에 나가 꿈적거리고, 시들하면 키미와 노닥거리며 금쪽같은 시간을 축낸다. 키미는 2년 남짓 된 진도개 잡종이다. 이 수컷 황구(黃狗)는 이미 제법 큰 개로 성장했고 어깨가 짝 벌어진 게 힘깨나 쓰게 생겼다. 정훈은 키미를 볼 때마다 그냥 썩혀두기가 좀이 쑤셨다.

때마침, 저 아래 대궐 같은 전원주택에 울타리 높이 치고 사는 경주 김 씨네가 개싸움을 걸어왔다. 내기로 십만 원을 걸자고 했다. 그 집 개는 독일에서 들여온, 이름난 셰퍼드다. 정훈은 세상에 버림 받고 기가 죽어 사는 마당에 개싸움이라도 붙여서 울화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정훈은 내기 돈이 부담스럽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김 씨네는 자기 셰퍼드가 지면 내기 돈을 배로 올려 주겠노라고 자신 만만했다. 정훈은 오기가 도졌다.

  투견 당일 동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토종과 셰퍼드는 보자마자 포효했다. 마주 세워놓고 보니 셰퍼드가 훨씬 컸으나 키미는 대차게 덤벼들 기세였다. 두 녀석은 산골마을에서 짖기로 자웅을 겨뤄왔었지만 우렁차기로는 키미가 단연 최고였다. 끈을 풀어놓기가 무섭게 싸움이 벌어졌다. 피 터지는 싸움에 오금이 저렸다. 한 동안 두 녀석은 숨을 고르는지 서로 대치하고 으르렁거렸다. 갑자기 부잣집 셰퍼드가 순식간에 키미를 덮치더니 목을 물고 흔들었다. 정훈은 무식 중에 개판에 뛰어들었다. 김씨가 휘파람을 불어 떼어 말렸기 망정이지 인명 피해가 생길 뻔 했었다. 정훈은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정훈이 움직이는 족족 가계에 손해를 입힌다고 빈정거렸다. 빈털터리 정훈은 도리 없이 부잣집의 장작을 패주는, 십만 원 어치의 노역을 제공하는 수모를 당했다.

  정훈은 아내의 눈치도 보이고 해서 일자리 구한답시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여기저기 아파트단지나 학원가에 가서 수위나 청소부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빈 자리가 없었다. 주유소도 알아보았으나「셀프」(self) 주유제로 전환되어감에 따라 주유소요 인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정훈은 자존심을 팽개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어둠이 깔린 뒤에 산골동네에 들어섰다. 키미의 반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매어둔 끈을 누가 풀어준 것 같았다. 아내에게 심증이 갔으나 운을 떼어보지도 못했다. 정훈은 둘이 잘 다니는 산동네를 휘둘러보고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키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동이 터도 소식이 없고 그 다음날에도 키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란 재래시장을 찾아갔다. 쇠창살 우리 속에는 누렁이 황구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저 속에 혹시 키미가 갇혀 있으면 주인을 알아보고 얼마나 반길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녀석이 키미와 비슷해서 가만히 키미 하고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개 세상도 불공평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놈은 평생 좁은 우리에 갇혀서 바깥세상 나들이 한 번 못해보고 보신용으로 개장수에게 팔려 가는가 하면, 어떤 견공은 부잣집에 태어나서 BMW 타고 다니고 비만을 걱정하는 판이니 개도 팔자가 다르고 기연(機緣)이 따로 있으렷다.

  우리에 갇힌 개들을 보니 숨이 막히고 처연했다. 개들은, 평소에 스치기만 해도 서로 으르렁대는데 쇠창살 속에서는 겹겹이 포개고 누워서 주어진 운명에 평온한 얼굴로 순응하고 있었다. 너희 인간들아! 한 생각 돌리고 보면, 조촐하고 고요한 마음의 고향에 안주하게 되는 거야, 무언의 격외(格外)법문을 호소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정훈은 넋을 놓고 시장 뒷골목을 헤매다가 포장마차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김치를 안주 삼아 깡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옆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타락한 돈 세상을 탓하고 버릇장머리 없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며 의기투합해서 시간을 보냈다. 술이 거나해서 두 사람은 서울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정훈은 은하철도를 타고 걸림 없는 우주공간 속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내려보니 종로 3가역이었다. 쭈뼛쭈뼛 종묘와 파고다 공원을 기어들었다. 여기저기 어디를 기웃거려도 소외받은 노인들의 어지러운 시장바닥이었다. 정훈은 아직 나이가 젊어서 그 곳에도 이방인 같이 어울리지 못했다.

  초겨울 찬바람이 뜰에 떨어진 낙엽을 휩쓸고 다녔다. 키미도 아빠도 없는 산골 집은 유령의 집같이 침울하고 썰렁했다. 영미는 한기를 느끼며 아빠 걱정을 슬그머니 꺼냈으나 엄마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정훈은 막일도 하고 길거리를 전전하다가 문득문득 따스하고 정겨운 안방이 그리웠지만 감히 집에 전화 걸 엄두는 내지 못했었다. 그날은 술기운을 빌어 전화번호의 마지막 숫자를 눌렀다. “여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훈은 감전된 듯이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눈발이 사선으로 흩날리는 날이었다. 뜻밖에 키미가 빠삭 여윈 모습으로 나타나서 끙끙거렸다. 엄마와 영미는 눈이 휘둥그러졌다. 영미는 덥석 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차에 싣고 태재고개 너머 멀리 가서 풀어주었는데 어떻게 찾아 왔을까? 영물이네.” “좋은 징조야, 엄마.”

  키미는 살이 토실토실 오르기 시작했다. 밤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영미가 엄마를 물리치고 냉큼 수화기를 집었다. 숨소리가 전해왔다.

“아빠지? 아빠, 아빠. 키미가 돌아왔어.”

키미가 호응하듯 짖어댔다.

“아빠. 지난 번 폭설이 내릴 때 우리 집은 눈 속에 파묻혀 고립무원이었어. 그날 밤 TV에 방영된 노숙자 르포를 우리는 걱정스레 지켜봤지. 이튿날 엄마는 꿈속에 아빠가 나타났었다고 울먹였고….”

“…….”

“아빠 듣고 있지? 엄마는 이제 잊고 있던 교당에 다시 나가고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아. 요새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염불하듯  중얼중얼 해…. 아빠, 나도 편의점에 가서 일해. 우리 식구랬자, 아빠, 엄마, 나, 그리고 키미, 넷뿐이잖아. 보고 싶어, 아빠.”

키미가 응석을 부리는지 앙앙거렸다.

“키미!” 아빠의 젖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키미는 허공에 호소하듯 늑대 울음을 애처로이 내뽑았다.

 

  • 수산님 글을 애독하는 팬으로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콩트가  문학성이 가장 뛰아나다고 사료됩니다. 점점 경지에 오르시는 것 같습니다. 경하드립니다. 조제민 | 08-11-05 11:05 | 댓글달기
  • 수산님!! 수산님 글이 언제 올라오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얼마전 안재환,최 진실이 세상에 고별을 알린후 연일 잇달았던 보도는 이렇게 까지 해야할까 할 정도였으며 특히 최 진실이 가고 난 후엔 중요한 인물 어느누구도 메스컴에서 알리지 않았던 삼우제 까지
    케이블 방송에서 중계하듯하는 방송을 보고 이 세태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이든 콩트든 항상 그 시대배경을 대변한다는데 수산님 꽁트야 말로 제대로 대변하신거 같습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깊은 우울에 빠져 힘든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다음엔 희망적이고 보람된 꽁트 한편 올려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임성명 | 08-11-05 14:27 | 댓글달기
  • 회장님 칭찬 날 춤추게 합니다. 고래나 나나 같은 포유동물 아닌가요. 콩트는 처음입니다. 계속 천착해보렵니다.
    임성영님. 이 고된 세상, 삼식이 많는 세상, 이긑에서는 새삶의 희망을  넌짓이 던져주고 있는 건데, 보다 벍은 글을 쓰보고 싶지만, 소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답니다. 이 산속에 쳐박혀 지내다 보니....
    수산 | 08-11-05 18:19 | 댓글달기
  • 반갑습니다. 사랑과 증오는 연육되어 있어서 오락가락 하나봅니다. 이 글에서 증오의 연육은 키미와 원망심 털어내기 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산 | 08-11-16 15:24 | 댓글달기
  • 고맙습니다.  본문울 좀 고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그냥 두고 있습니다. 수산 | 08-11-12 12:24 | 댓글달기
  • 운영진 고맙습니다. 그런데, 내 컴퓨터에는 <댓글입력> 아래 <수정>이 떠오르지 않고, <목록>만 나오는 군요. 수산 | 08-11-13 11:35 | 댓글달기
  • 댓글 입력을 하신 분의 법명중에 굵은 글씨체의 법명(예, 조제민, 임성명)은 로그인을 하신 후에 댓글 입력을 하신 경우이고,
    엷은 글씨체의 법명(수산)은 로그인을 하지 않고 임의로 댓글을 쓰신 경우입니다.
    글은 본인 만이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산님께서 로그인을 하신 후에 들어 가시면 <수정> 항목이 나올 것 같습니다.
    운영진 | 08-11-14 03:42 | 댓글달기
  • 본문을 고치시려면, 로그인 하신 상태에서,  [댓글입력] 아래에 [수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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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진 | 08-11-12 13:23 | 댓글달기
  • 감사합니다, 운영자님. 드디어 수정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원불교의 <감사생활>법문을 뚜렷이 하였습니다. 수산 | 08-11-14 15:21 | 댓글달기
  • 이글은 원불교신문 신년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고치고 또 고치고 한답니다. 수산 | 08-12-01 15:21 | 댓글달기
  • 드디어 퇴고하여 원불교 신문에 보냈습니다. 신년호에서 만납시다. 새해 밝고 건강한 출발을 기원합니다. 수산 | 08-12-08 20:12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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