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민 2009-01-30 08: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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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맹수 원광대학교 교수님 글
“본년(1932) 정기총회를 대신한 제 8회 평의원회 석상에서 어떤 간부들(원불교 교무)의 생활보장 여부의 건을 토의할 새, 사정은 대단히 난처하였다. 생활을 보장하여 주자면 회(會)(원불교)의 예산이 부족하고, 생활을 보장치 아니하여 주자면, 그들 사가(私家) 생활이 막연하여 그들을 회중에서 내놓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으며(집에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집 식구들이 생계가 막연하여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겠는지라), 그들을 내어 놓는다면 회중 사업은 운전할 수 없는 난경에 빠지게 될 가위 진퇴유곡의 경계이었다. 그리하여 평의원 이하 일반은(원불교 교무와 신도는) 용이한 해결을 얻지 못하고(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장내는 침묵한 그대로 일분 이분을 경과할 그 찰나, 덕의심(德義心)이 무비한 예의 이공주(李共珠) 선생은 정중하고 쾌활하고 또 선명하게도 그 생활을 자기의 절약 절검으로써 독단 보장할 것을 선언하였다.(신도한명이 그 교무들의 사가 생계를 책임져 주기로 하였다.) 때에 장내는 마치 깊은 함정에서 살아 올라온 것 같은 환희와 안심의 빛이 모든 사람의 얼굴에 돌고, 이어서 감사를 표시하는 박수소리가 요란하였다.
이 때에 회장(會場) 서쪽 편에 좌정하였던 종사주(宗師主; 소태산 박중빈 선생에 대한 당시의 호칭)께서는 존안에 처연한 빛을 띄우시고 감개 깊으신 어조로,「내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1924년)에 동지 몇 사람인 그들과 영광(靈光)에서 부안(扶安), 부안으로부터 익산(益山)에 나올 때는 우리의 정신과 몸까지 희생하여서라도 일체 인류에게 이익됨을 끼쳐 주자고 굳게 맹세하였더니, 아! 세상일이라는 것은 과연 뜻과 같이 되지 못하는 것이로구나. 남에게 이익됨을 끼쳐 준 것은 아직 없고, 도리어 각 방면으로 소소(小小)한 생활까지 남의 의뢰를(도움을) 받게 되니 이 어찌 우리(원불교)의 본뜻이랴」하시고 성안에는 눈물의 흔적이 나타나시었다.” (불법연구회 기관지,『월말통신』35호, 1932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