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택 2009-03-26 20: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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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문
삐죽삐죽 둘러선 시커먼 바위 가운데 평평한 곳에 방한복을 껴입은 남녀가 둘러 앉아 세찬 바람과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느라 허연 입김을 내뿜는다.
십여년 전 구정 때 우리 형제 부부가 제주도로 함께 놀러가서 콘도에 머무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던 광경이다.
이렇게 우리 4형제 부부는 20여년 전부터 매년 전국 여러 곳으로 함께 여행을 했다. 추석 때는 차례 대신 귀향하여 생가에 묵으며 시제(時祭)를 지내고 인근을 돌아보는데 전에는 더러 자녀들도 동행하다가 그들의 취직, 결혼, 출산으로 어려워졌다.
양력설에는 차례를 지내고 음력설에 각지의 콘도나 팬션에 머물며 돌아다녔다. 가끔 노래방에서 목청을 뽑고 바닷가 횟집을 찾는 외에 식사는 싸간 음식으로 길에서 해결하니 비용도 얼마 들지 않는다.
이런 얘기에 자주 받는 질문은 두 가지다. 구정과 추석처럼 도로가 막힐 때 어떻게 차로 움직이느냐, 또 형제부부가 무슨 재미로 함께 여행하느냐이다. 첫째는 형님과 막내(주로 운전대를 잡는다)가 전국 도로망에 밝아서 사정에 따라 고속도, 국도, 지방도를 골라 가끔 우회도 하면서 운행하면 큰 지장이 없다.
둘째는 집안일을 의좋게 상의하고 분담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즐겁게 지내는 동안 우애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생가에 머무를 때 마치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면서 옛 추억담을 나눈다.
고향 경북 예천(醴泉)의 생가는 우리 가족에게 아주 뜻깊은 곳이다. 90년 전 할아버지가 지으셨고, 아버지의 4남매가 자라셨고, 우리 7남매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30여년 전 부모님 상경시 그 집을 인수한 서울의 4촌 누님이 뼈대만 남기고 큰 보수공사를 한 덕분에 우리는 종종 콘도처럼 사용할 수 있는데, 그곳은 4촌 누님의 생가이기도 하다.
읍내에 있던 비슷한 기와집 댓 채가 다 사라진 지금 겨우 향교와 함께 남아있는 대표적 고가(古家)이다.
아버지는 부잣집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바른 처사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선승(禪僧)처럼 맑게 사신 ‘예천의 어른’으로 평소 정직, 성실, 검소를 강조하셨다. 10대에 맺어져 맞지 않은 어머니와 80평생을 해로하며 ‘작은댁’과 ‘곁가지’를 안 두신 것에 감사한다.
다만 광복 후 큰 농토와 예금이 쪼그라들고 휴지쪽이 되는 시대적 격변 속에 6.25 후 가세가 급히 기울어 우리 남매는 모두 어렵게 대학을 나와 자력으로 결혼을 했다. 어머니는 묵묵히 가사에 헌신하셨다. 역설적으로 유산 가지고 다툴 일이 없어서 우애가 돈독한 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80대의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작고하셨을 때 아버지와 형제들은 종교가 같지 않았지만 원불교의식이 간소하고 엄숙하다는 내 설명을 수긍하여 장례식과 49재에 함께 정성을 모았다.
청소년시절 아버지한테서 “반촌(班村: 양반마을) 방문시 유의사항”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랑에 나가 인사드릴 때 “안행(雁行)이 몇이신가?” 또는 “관향(貫鄕)이 어디신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못 배운 집 자손’으로 망신이라는 것이었다.
‘안행’은 “남의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사전의 표준음은 안항), ‘관향’은 “시조의 고향, 본관(本貫)”으로 내 경우 정답은 “4형제”와 “경주김씨”가 된다. 덧붙여 같은 씨족에 정승판서가 몇 명인지 묻는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 나는 반촌 방문의 기회가 없었다.
형제가 많은 집 자녀들은 어른들 호칭이 좀 헷갈릴 것 같다.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단수면 쉬우나 복수가 되면 어렵다. ‘큰아버지’ 중 맏이는 ‘백부(伯父)’, 나머지는 ‘중부(仲父)’, ‘작은아버지’는 숙부(叔父)인데, 몇째 중부/숙부인지 구분해야 할 때 더 그렇다.
요즈음은 흔히 자녀수가 하나 둘 뿐이니 ‘형제자매’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그들의 자녀 대에는 아예 삼촌(백부, 숙부, 외숙), 고모, 이모란 호칭이 사라지게 생겼다.
우리의 형제여행은 막내동생이 환갑을 넘고 자식들이 40대가 된 이제 언제까지 이어질지?
저희집 가훈 중에 첫번째가 효제인데 효제의 제가 형제간의 우애지요.
그럼에도 제대로 도리를 못하고 살아서 늘 부끄러운데 참으로 인생을 잘 살고 계시는군요.
열심히 본 받겠습니다. chonho | 09-03-27 06:59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