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2008-07-06 08: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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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못 속의 하늘나라
우리 집 안뜰에 작은 연못이 있다. 지름 2미터 내외의 동그란 인공 연못이다. 우리 아들이 집을 설계하면서 아버지 사주에 물이 없다고 하여 정원에 연못을 만들어준 것이다. 처음에는 연못에서 풍기는 작은 분수가 시청 앞 광장의 분수보다 운치가 더 있어보였으나 차츰 물줄기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 연못에 제대로 연꽃을 심어보자.” 작년 이맘 때였다. 여기저기 화원을 찾아가서 어렵사리 연꽃 모종을 구해다가 연못 안에 자배기를 앉히고 그 속에 정성스레 심었다. 한달이나 지났을까, 잎이 돋아나는데 이상하게 한 쪽이 갈라진 게 작은 부채 같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것은 연꽃이 아니고 사촌 수련이었다. 속이 상했지만 수련은 참한 꽃을 선보였고, 청초한 이미지는 동양 선녀를 보는 듯 하였었다.
이른 봄, 진짜 연근(蓮根)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인터넷을 뒤지다가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연꽃나라>를 찾아내었다. 분당 야탑 아파트촌을 벗어나서 성남시내를 향하면 바로 오른 쪽 숲 속에 파묻혀 있었다. 차를 몰고 찾아드니 벚꽃들이 화사한 봄옷을 갈아입고 길가에 줄지어 서서 귀빈 모시듯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 뿌리에 7천원을 주고 열 뿌리를 샀더니 서너 개 더 얹어주면서 심는 방법을 자상하게 일어주었다. 우선 연못의 깊이를 3등분하여 맨 밑에 유기질 비료를 듬뿍 넣고 그 위에 흙을 덮고 물을 채우라는 것이었다. 연근은 4월 하순에 심되 뿌리 한 쪽은 흙 속에 묻고 다른 쪽은 물위에 나오게 해두라는 것이었다.
4월 하순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중순에 연근을 심었다. 그 후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연못에 나가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자배기에 따로 심어둔 수련은 하순에 이미 잎을 내밀었는데 연꽃은 감감 무소식이라 애를 태웠다. 거름이 너무 독했나, 연근을 잘못 심었나, 연근 순이 물에 잠겨 숨을 쉬지 못 하나, 갖가지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드디어 5월 중순, 고사리 순 같은 잎을 조심스레 밀어 올리더니 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접은 우산 같은 굵은 순을 내밀더니 물위에 제법 호기롭게 동그란 우산을 펼치기 시작했다.
7월 초순, 연못에는 크고 작은 줄무늬 우산이 바람에 하늘하늘 춤사위를 연출하고 있다. 비가 내리면 연 잎 위에 또르르 구르다가 미끄러져 내린다. 연꽃이 흙탕물 진세를 헤치고 솟은, 그 정갈한 기품에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도 머무르기 민망한 것일까.
우리 집 연못은 작아도 이곳 산촌 마을에서는 인기가 대단하다. 주변의 전답이 모두 택지로 바뀌고 나니 많은 새들이 목마를 때에 찾아든다. 자연의 뭇 생명들을 이 연못에 방목하는 것 같다. 아침이면 온갖 새들이 모여들어 서로 안부를 묻는지 재잘거리고 몸매를 뽐낸다. 까치, 산비둘기는 이름을 알지만, 그 외에 이름 모를 크고 작은 새들, 동물도감을 뒤적여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수없이 날아든다. 황갈색 가슴의 새들, 산비둘기 보다 작으나 더 늘씬해 보이는 이들 새들이 떼 지어 날아들면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까치 삼총사도 자리를 내어준다.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 되면 나는 예외 없이 피부과의원의 예쁘고 부드러운 여의사를 만나려 간다. 우리 집에 나만 유독 피부가 약한가 보다. 잡초를 뽑을 때에 그 무더운 날씨에도 작업복을 덮쳐 입고 뜨락에 나서야한다. 우리 집은 산속에 있어서 모기가 많다. 산모기는 까만 여석이 여간 공격적이 아니다. 양말 위로 쏘아서 내 귀한 피를 노린다.
어느 날 연못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자니 모기 유충이 득실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가 바로 모기의 온상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모기 유충을 박멸하는 데는 미꾸라지가 최고라고 했다. 미꾸라지를 구하느라 백방으로 알아보니 모두 추어탕용으로 파는 것뿐이었다. 어릴 적에 농촌에서 미꾸라지 잡던 생각이 나서 가까운 율동공원 개울에 가보았다. 어린 아이들 틈에 끼여서 돌을 들추고 미꾸라지를 찾아보았으나 허탕이었다. 궁리 끝에 내가 가끔 가는 추어탕 집에 가서 사정사정하여 미꾸라지 새끼 열댓 마리를 구해다가 연못에 풀어놓았다. 미꾸라지는 저승사자 앞에 내몰렸다가 운 좋게 목숨을 구한 행운아들이었다.
내 연못은 주인이 많다. 하늘은 까치 삼총사가 지배하고, 개구리 삼형제는 물과 수변(水邊)을 관장하고, 물속과 진흙은 미꾸라지들이 주인이다. 이들은 연못이 작지만 모기 유충 등 먹이가 풍부해서 그런지 별로 서로 큰 마찰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 같다. 아침에 연못에 나오면, 물에 뜬 연 잎 위에 신선같이 앉아 있는 개구리 삼형제와 먼저 눈이 마주친다. 눈은 부리부리하게 튀어나왔고 몸은 바탕이 황갈색인데 몸통 중앙을 가로질러 진녹색 띠를 두르고 있는 게 제법 개구리 중에 귀족 출신인지 귀티가 난다. 귀신 할멈의 마법에 걸려서 개구리로 환생한 것일까. 이 잘난 개구리는 제가 주인이라도 되는 듯 나를 거들떠보지 않고 겁내지도 않는다. 피장파장, 나도 힐긋 쳐다보고 미꾸라지 찾는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한다. 이 여석들은 좀체 그 늘씬한 몸매를 잘 보여주지 않는 게 못마땅하다.
어느 날 나가보니 미꾸라지 한마리가 뒤집어져 떠 있었다. 아마도 새들의 공격을 받고 죽임을 당한 것 같았다. 이놈들은 그동안 인간의 보호 속에 자라다 보니 새들의 공격에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막대기로 건드리면 무감각하게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지금은 기척을 느끼면 잽싸게 흙탕물을 일으키고 감쪽같이 숨어버린다. 야생의 미꾸라지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거품을 방울방울 물 위로 품어내는 것을 보면 거기 숨어 있구나, 알게 된다. 그러다가 가끔 늘씬한 몸매의 유연한 움직임을 훔쳐보게 되면 얼마나 귀엽고 반가운지 모른다.
나는 미꾸라지를 쫓으며 연못 속을 살피고 있다가 그 속에 숨은 하늘나라를 만났다. 물 속에 큰 내 얼굴이 살아있고 건너편에 소나무가 비켜섰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른다. 연잎은 접시 모양 손을 모으고 하늘의 영기(靈氣)를 받아들이는지 기도 속에 빠져 있다.
개구리가 연못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개구리 왕자도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싶었나?
동양선녀 같은 수련과
기품있는 연꽃과
아침이면 서로 안부를 물으며 재잘대는 온갖새들과
다소 공격적인 까만 산모기와
귀티나는 개구리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꾸라지와
그리고 수산님과 전타원님
모두 사이좋게 하나로 어우려져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에
더불어 행복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양효선 | 08-07-06 22:24 | 댓글달기
피는 곷이 보는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쭉 뻗은 연밥 이 또한 도도 하고요.
수산님 산자락 숲 기슬기에 새가날고 짐승이 뛰어 노는 곳에 잔듸를 심고 연못이있는 집
살고 싶은 꿈의 집 입니다. 자연과 사는 숨소리 사랑의 소리를 자주 자주 들려 주세요. 김경원 | 08-07-06 23:51 | 댓글달기
저는 초등학교 시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살면서 마을의 논밭과 야산을 들쑤시며 자랐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제일 많고요.. 정종문 | 08-07-07 09:10 | 댓글달기
禪文이네요.
멋있습니다.
글을 읽노라니 머릿속에 저절로 정갈한 연못과 화사한 연꽃, 그리고 하늘속 세상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 하늘같은 허공세상 속에 수산님은 계시는군요.
합장배례하옵니다. 윤성욱 | 08-07-07 10:45 | 댓글달기
저도 주택에 살면 연꽃과 수련을 기르고 싶습니다.
2년 전 아파트 베란다에서 큰 질그릇에 수련을 길러 보아 수산님 마음에 공감이 갑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에 가곤 했지요. 유신화 | 08-07-07 16:35 | 댓글달기
"도 이루는 법을 알고 보면 밥 먹기 보다 쉽나니
그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을 무엇과 비교 하리요" 서품11장.
넉넉하고 한가한 마음 그대로 느껴지는 글 감사 합니다. 박경원 | 08-07-07 19:34 | 댓글달기
맛 있는것을 보면 먹고 싶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cd를 사고 싶듯 눈앞에
펼쳐지는 작은 연못의 수련 이야기는 정말 바로 달려가 보고싶게 한답니다.
수산님의 수채화같은 글 자주 볼수있게 보시해 주십시요. 기대하겠습니다. 임성명 | 08-07-08 11:17 | 댓글달기
그리운 네님 기다리시듯 기다리면 연분홍 꽃봉우리가 청조한 모습으로 다가올 겁니다.
아무레도 디카를 들고 환영 하시어야 할것 같습니다. 김경원 | 08-07-08 23:08 | 댓글달기
개소리 까치소리 온갓 새소리 가 들리며 아름다웁게 피는 연곷 사진 까지 찍을 수 있어요.
저도 아직은 잘 못 하거든요. 곧 우리 손녀들 한테 배울 겁니다. 김경원 | 08-07-10 11:41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