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익 2009-04-21 05: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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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파기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형편이 어려워져 땅의 삼분의 일을 팔았다. 팔지 않은 사과나무가 심어진 쪽은 동네에서 먼 쪽이었다. 집이 팔아 버린 땅위에 있었기 때문에 뜯어서 다시 짓지 않으면 안되었다. 집터를 고려하다보니 마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매일 아침 물 긷는 일이 내 일이다 보니 물 한번 길어오기도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우물을 팠다. 처음 판 우물은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항상 물이 차기를 기다려야 했으며 그것도 오래지 않아 말라버렸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샘을 파고 계셨다. 큰 기둥 세 개를 엮어서 삼각뿔을 만들고 그 곳에 도르래를 달아서 아래에서 아버지가 흙을 파내시고, 신호를 하면 파낸 흙을 어머니가 끌어 올리고 계셨다.
집이 높은 언덕 위에 있었기 때문에 깊이 파지 않으면 지하수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잡을 타고 샘 파는 곳으로 내려가 보니 상당히 깊어 하늘이 조그맣게 보였다. 마침 암반에 나와 그 암반을 뚫지 않으면 지하수를 얻을 수가 없었다. 정을 암반에 고정시키고 무거운 해머로 내리쳐 여러 곳에 금을 가게 한 후 한 조각씩 떼어 내는 방식으로 파내려 가고 계셨다.
혼자서 너무 힘든 일을 하시는 것이 죄송스러워 제가 좀 하겠노라고 나섰다. 해머를 쥐고 혼 힘을 다해서 내리쳤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정에 불꽃이 요란하게 나며 해머가 튕겨 나왔다. 힘만 들고 소리만 요란했지 정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몇 번을 쳤지만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저리 비켜라.”
아버지가 해머를 내리치자 마치 진흙에 말뚝을 박듯이 쑤욱 쑤욱 들어갔다. 하시는 요령을 잘 살피고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저는 왜 안되지요.”
“요령이 없어서 그런다. 바위의 결을 잘 이용하여 정을 박아야 하고, 힘을 몰아서 써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바위의 결을 이용하는 것은 이미 자리를 잡아 박아 놓으셨으니까 그 다음은 내가 똑 같이 내리 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리 치면 전혀 미동도 하지 않다가 아버지가 내리치면 마치 진흙에 박는 것처럼 가볍게 들어가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체구도 나보다 크시지도 않으셨다.
힘이라면 나도 좀 쓴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유도장이 있어서 학교에서 유도를 배웠다. 보통 단을 따려면 매일 유도장에 나가 훈련을 받아야 했다. 나는 학교에서 유일하게 전혀 도장에 다니지 않고도 1년 만에 학교수업만 받고 유단자가 되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많은 후배들이 나를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유도선생님이 후배들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힘으로는 누구한테 밀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굳이 비유를 들어 말하면 마치 어른과 아이처럼 힘쓰는 것이 차이가 있었다. 아무튼 내 힘은 그 암반을 뚫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위로 올라와 타낸 흙을 올리는 일을 했다.
그 암반을 파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가는 정이 말해주었다. 손아귀에 다 잡히지 않을 정도 두께(약 6㎝ 정도)의 정 다섯 개가 끝이 뭉개져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힘을 몰아 쓰는 것도 어려운데 암반을 몇 미터를 뚫어서 결국 물이 콸콸 나오는 샘을 파내 신 것은 내 생각으로는 그냥 힘만 써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마치 무우 조각 떼어 내듯이 툭툭 바위를 잘라내시며 쉬지도 않으시고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3-4일 만에 샘을 파내셨다. 그 물은 너무 깊어 도르래를 달아서 끌어올렸는데 한 20미터 깊이는 되지 않았는가 싶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힘을 쓸 수 있어요?”
“과거 이순신 장군이 장정들 여러 명이 석인을 들지 못해 끙끙거리는 것을 보고, 비키라고 하시고는 혼자서 그 석인을 번쩍 들어서 옮기셨다고 하더구나. 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온 힘을 다해 내리쳐도 전혀 들어가는 기미도 없던 것이 수월하게 내리치시는 것 같은데 한번 칠 때마다 푹푹 들어갔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였다.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 늘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벌컥 벌컥 마신 후에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나는 그 물로 매일 새벽 냉수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