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안 2009-06-07 00: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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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마에 대해서
수행편 17장 법위등급조항에서
법마상전급은 보통급 십계와 특신급 십계를 일일이 실행하고 예비 법마상전급에 승급하여 법마상전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 우리의 경전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으며,
천만 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으며,
법마상전의 뜻을 알아 법마상전을 하되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대기사(大忌事)는 아니하고,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의 승(勝)을 얻는 사람의 급
빨강색 글 여기에서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고“에서 법과 마란 무엇인가?
원불교 용어사전에 살펴보면
법이란 일원의 진리에 바탕하여 대도정법 즉 삼학팔조, 사은 사요, 생사해탈 성불제중, 등이다.
마는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 대도정법의 수행에 방해하는 모든 것 즉 재물, 명예, 자식, 지식 등 나의 본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마구니, 방해꾼, 악마, 등)
마에도 바깥경계와 내면경계가 있다. 내면경계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번뇌 망상, 사심잡념, 분별, 시비, 시기질투, 삼독오욕등 신앙과 수행에 방해가 되는 마군은 다 포함된다. 그리고 과거의 나쁜습관도 해당된다.
그러면 법되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30계문을 철저히 지키며 기도생활과 염불좌선과 같은 정신수양을 꾸준히 하며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 일기와 같은 사리 연구도 하고, 상시 일기·주의·조행과 같은 작업 취사를 잘하는 것이 잘사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면 일심공부가 잘되며, 선을 열심히 하면 무심공부가 잘되며, 그러면 몸뚱이 위주의 삶 즉 물질 위주의 삶에서 마음 위주의 삶으로 전환이 된다.
여기에서 마음 위주의 삶으로 전환이 되어 마음이 바뀌면 그 전에는 몸뚱이가 잘 먹고 잡 입고 그리고 이 몸에서 나온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내 몸뚱에서 착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다가 몸 위주의 삶 즉 물질 위주의 삶에서 마음 위주의 삶으로 전환이 가능합니다.
몸뚱이 존재 인식이 너무 소유욕과 애착심으로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과 몸뚱이가 물거품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지 몸뚱이는 학습교재로 잘 활용하는 것이다.
아프면 아! 아플뿐이다.
늙으면, 아! 늙었을 뿐이다.
죽을땐 아! 죽을 뿐이다.
이렇게 될 때 마는 사라지고 법대로 사는 삶이 보다 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침 4시30분에 기상하기로 하여 1시간 몸풀기 1시간 염불좌선 1시간 책 읽기를 정했으면 일어나야한다. 그런데 어제 늦게 잤으니, 눈이 무거우니, 어제 술을 먹었으니 ,오늘은 토요일이잖아,......
이런 저런 핑계를 되고 잠을 더 청하는 나를 본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습관에 붙들려 핑개를 되는 고정관념속에서 몸뚱이가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즉 마에 법이 항복하는 것이다.
하기로 하였으면(정의) 하여야 하는데, 만약 이런 저런 핑개를 되며(불의)변명하거나 하는 모습은 진리의 법되로 살지 못하고 마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리되로 법되로 사는 것은 내 몸이 실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마구니가 침투하더라도 메인바 붙들린바 없이 허공처럼 바람처럼 살며 언제나 깨어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진리되로 사는 것이 마가 없이 사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마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단지 존재할 뿐이다 라는 사실 말입니다.
또한 자신을 살펴보면 :~무엇 무엇때문에 못한다. 무엇 때문에 한다 ."라는 핑개를 대는 것은 법대로 사는 것이 아니지요. 돈때문에, 자식 때문에 못한다. 한다. 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이것은 마에 붙들려 마치 주인인 듯히 사는 삶이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