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안 2009-09-22 21: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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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면서 중앙공원을 한바퀴 돌면서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셨습니다. 산 토끼, 까치들 ,다람쥐들이 나를 좇아 다닙니다. 심지어 다람쥐들이 내 머리 위로 도토리를 입으로 갈아서 꽃을 만들어 뿌렸습니다.
벤취에 앉아 명상을 하니 모기님께서 헌혈을 강요합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산다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루 살이 날파리를 애처럽게 생각합니다. 하루 밖에 살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는 인생도 천상세계에서는 한낱 점심식사 후 잠깐 단잠을 자다 꾼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종을 앞에 둔 분에게 “인생이 어느 정도 깁니까?”라고 여쭈면 이렇게 말한답니다. “눈 깜짝 할 사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은 마치 몸뚱이와 형체도 없는 마음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 속에서 내 몸 , 내 자식, 내 아내, 내 남편, 내 가족, 내 형제, 내 자동차, 내 집,... 이러한 울타리를 치면서 어떤 라인에 안주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 명예, 권력 등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움켜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과 비교하면서 적게 가졌다고 불만족 속에서 자신을 괴롭힌답니다. 난 왜 이래! 저 사람은 나 보다 조금 더 가졌잖아! 저 집 아이는 내 아이 보다 공부를 더 잘 하잖아! 왜 내 부인, 내 남편은 부정적이며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 말만 하지! 끊임없이 상대와 비교하면서 괴롭고 고통스런 생각만 합니다.
사실 생각이란 것은 우리 뇌의 신피질에서 나오며 그 생각은 과거생에 자신이 지어 놓은 종자에서 생겨난 열매 즉 인과라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생각에 사로잡히고 돌아 오지도 않은 미래에 사로잡혀 스스로 고해의 바다를 자처하여 잔잔한 호수(본래의 마음)에 바람(번뇌, 분별)을 일으킨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고통의 원인을 상대의 탓이라고 하며 혹은 자신을 비하하여 나는 왜! 라고 자신을 격하시키기도 하지요. 저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해서 기분 나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고해를 스스로 찾아다니는 우를 범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 랍니다.
세월의 나이 많아도 자신의 영혼은 얼마나 성숙되었는지 스스로 테스트해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눈물이 난답니다. 어린아이 처럼 사랑을, 인정을, 자랑을, 먹을 것을, 입을 것을,..달라고 때쓰지는 않는지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그 동안 넘어지고 무릎팍이 깨지고 낭떨어지에서 굴러 머리가 깨지고 어깨뼈가 문질러 지고 손이 찢어지고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가만히 생각해 해보니 고통 뒤에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 쓰면 행복과 평화가 찾아온답니다. 보통 우리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멈추려고 하며 “난 안 돼, 혹은 이러다 어떻게 되겠는데“ 걱정과 두려움으로 자포자기하며 멈추려 합니다. 이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은 우리 뇌의 구피질에서 생겨난답니다. 그리고 이 경계를 넘어가면 피안의 세계, 열반의 세계라고 하는 뇌관으로 진입을 합니다.
마치 풀숲을 헤치고 헤치고 지나다 악어가 기다립니다. 무서워서 두려움에 걸리면 다시 숲으로 떨어지고 이렇게 되면 생각에 사로잡혀 감정의 고통 속에서 순환의 고통을 죽을 때까지 계속 된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어 까짓 것 악어야! 날 먹어봐! 하는 배짱이 있어야 한답니다.
그 한계를 넘어 보면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며 또 경계가 오면 이것은 가짜야! 혹은 이 보다 더한 것과 비교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하면 순탄한 길(평화)로 간다고 생각 합니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면 국가의 영웅, 인류를 위해 일하면 인류에 영웅이 되죠.
우리는 살면서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 생각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수행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비젼을 세워야 합니다. 목표와 원이 없다면 그 사람은 살았으되 산 사람이 아니고 마치 태평양 바다에 표류하는 나무토막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원을 세워야 합니다. 이왕이면 원대하고 큰 것을 이 목숨 다 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을 세우면 낫겠죠.
감~ 사합니다. 하하하
지나가는 바람도 쉬~이~ㅇ~ 흔적을 남긴답니다. 김형안 | 09-09-23 10:36 | 댓글달기
다시 들어와서 수정 댓글 덧 붙입니다. 제가 토를 달은 것은 오직 토 그 자체의 의미입니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형안님의 깨달음의 감상문은 그 의미가 크고 이런 글을 게시판에 올릴 수 있는 분이 우리 교당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우리의 큰 복입니다. 그러니 형안님의 이런 감상담 발표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제가 토를 다는 것은 일종의 맞장구입니다. 손 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날 수 없지요. 토는 토 그 자체의 의미다라는 말은 원문이 있어야 토가 있고 앞으로도 원문과 토가 계속 이어지기을 기대합니다. 조제민 | 09-09-27 07:05 | 댓글달기
계속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최명찬 | 09-09-27 23:22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