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2010-01-04 08:16:33
조회수 : 2,385
허공 속의 대화
조 정 제
작년 유월, 뜨락은 초여름 진초록의 잔치를 펼치기 시작했다. 상사초는 애타게 꽃님을 그리며 시들시들 멍들어가더니 그만 자취를 감췄다. 산자락의 개나리 울타리 아래 심겨진 영산홍은 이른 봄 붉은 한을 한껏 자지러지게 뿜어내더니 제풀에 지친 듯 멋대로 웃자랐다.
알루미늄 사다리를 꺼내서 전지 작업에 나섰다. 첫날에는 소나무, 백목련, 회화나무 등 큰 나무의 전지 작업을 힘겹게 마쳤고, 이튿날에는 키들이 작은, 사철나무, 은사시, 향나무 가지를 다듬었다. 잠시 휴식삼아 나무 그네를 흔들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뜰 안에 넘치는 나무들의 진액 향기를 맛보았다. 짙은 싱그러움이 코끝에 매달렸다.
끝으로 영산홍을 다듬어주다가 내 주먹보다도 작은 새 집을 발견했다. 새알은 얼핏 보아 서너 개나 되는 듯 했다. 집은 작아도 작은 나뭇가지, 지푸라기 등으로 견고하게 잘 엮은 것이 어느 인간 세공보다 정교하고 참해 보였다. 그 속은 자궁 속같이 안온하리라. 하마터면 이 멋진 작품을 망가뜨릴 뻔 한 터라 놀라서 얼른 나뭇가지로 도로 덮어주었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새 집이 궁금해서 잠옷 바람으로 나가보았다. 조심스레 다가가서 가지를 들쳐보려 했더니 조그마한 새가 포르륵 날아올랐다. 어미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옆에 뻗어 있는 소나무 가지에 올라앉았다. 어미는 안절부절 못함인지 작은 꼬리를 상하로 떨어대고 갈색 몸통에 황금색상의 작은 새 가슴을 두근거렸다. 작은 새가 하도 귀여워서 날아오르는 소리를 연상하여 ‘포름’이라 이름 지었다. 제 알이 걱정 되었는지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포름이 알을 품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나 동물의 본능적인 번식행위를 방해하는 것 같아 슬며시 피해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달려가 보았다. 어미 새는 보이지 않고 세 개의 알이 정물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 개는 나란히 다정하게 자리 잡았고 하나는 심술이 났는지 조금 떨어져서 기울게 앉았다.
그 다음 날 또다시 나가보았다. 포름이 놀라서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국화 화단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제법 시간이 흘러갔으리라, 포름은 제 집에서 좀 떨어진 황매화 위로 내려앉았다. 다리가 저려 왔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기다렸다. 포름은 좀 더 가까이 영산홍 위로 다가와서 눈치를 살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드디어 제 집으로 날아들어 알을 품고 나를 노려(?) 보았다. 포름의 쪼그마한 눈이 나의 왕 눈과 마주쳤다. 포름의 눈은 동그란 게 참 귀여웠지만 나의 부리부리한 큰 눈은 그에게 얼마나 두렵게 보였겠는가. 하지만, 포름은 알을 품기 위해서 그 두려움을 무릅쓰는 듯 했다.
다음 날 나가보니 여전히 알을 품고 눈만 말똥거렸다. 그날 이후로는 마주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새끼 까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어느 새 이웃이자 다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포름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근심도 녹아들고 사랑도 미움도 사라진 무심(無心)의 경지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심이 되면 허공과 하나가 되고 새들과도 통하나 보다. 그 허공 속에 무슨 사심이 있고, 욕심이 나고, 피아의 분별심이 생기랴. 다만 그 속에는 왕눈이 있고 포름이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의 배경이 펼쳐질 뿐이다.
어느 암자의 스님이 새와 함께 한가로이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새가 스님의 머리 위에도 앉고 손에 놓은 먹이도 서슴없이 먹고…, 부러웠다. 그런데 한 마리 잡아보자고 마음먹었더니 한 녀석도 오지 않더라고 했다. 그렇게 마음이 서로 통하나 보다. 나도 포름과 아기자기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우리가 친구가 된지 일주일 쯤 지났을까, 아침에 나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새집이 망가졌고 알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는 뱀이 해치웠을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야생 고양이 짓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내 탓이라는 자괴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그들의 종족번식 공간을 노출시켰고 내 호기심 때문에 자주 들락거려서 사방에 소문을 퍼트려 놓았으니 약육강식의 냉엄한 세상에서 어찌 작은 새 집이 안전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무심이 되면 서로 마음이 통하느니 하는 것은 인간중심, 나 중심의 오만이고 독선이었다. 새가 안방에서 먹지고 않고 알을 품고 있는데 불량배가 문구멍을 뚫고 쳐다본다면 이 얼마나 무례한 짓이며 당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으랴.
우리 집에는 지금도 크고 작은 새들이 자주 들락날락거린다. 가끔, 몸통은 갈색인데 가슴에만 황금색상을 띤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꼬리를 방정맞게 움직이며 촐랑거리면, 포름이 나 왔소! 인사하는 듯하다. 나도 만남의 희열이 넘친다.
감사합니다. 수산 | 10-01-04 08:29 | 댓글달기
연전에 벌들이 마당의 연못에 소담스럽게 피어 오른 연꽃속으로 드나들때 정말 꿀이 있는지 궁금하시어 연꽃속을 젓가락으로 쑤신 일, 이른 봄 감나무가 싹을 늦게 올린다고 묘목이 죽었는지 확인하신다고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 보신 일, 이층 베란다 벌집을 물총으로 박멸 하신일, 연못에 모기 유충을 없앨려고 미꾸라지를 풀어 지옥으로 만드신 일, 이러한 과거를 수산님 독자들은 이미 정독하여 다 알고 있는 터라 이번 새알 실종사건과 새집 붕괴 사건도 수산님께서 직접 연루되셨다는 증거는 없지만 조사하면 다 밝혀 지리라고 봅니다. (증거도 없이 언론(원비디)에 벌써 흘리고 있는 모양새 같습니다.)
어쨌던 제가 대신 천도재를 올립니다.
"불곡초당에서 수산 거사님 전원생활 하시는데 기쁨조하는 거룩한 임무를 다하고 짦은 삶을 불꽃같이 마감한 미물 곤충과 식물 영령들이여, 그대들의 이름은 수산님께서 수필에 이미 올렸으니 후손 만대에 그 이름이 길이 회자될 것인 즉, 부디 이 생에서의 애착과 탐착을 버리고 진급의 다음 생을 위해 즐거이 길을 떠나시오. 그런즉 그대들이 전생에 수산님과 잛은 순간 함께 했던 인연 공덕으로 수산님께서 신선되어 하늘을 날으실제 그 곁에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비가 될 것이니라."
그리고 글 올리신 것 수정은 수정 메뉴를 눌러시면 수정할 수 있는 모드로 바뀝니다. 타인은 수산님의 비밀번호를 몰라서 못 고칩니다. 운영자가 바빠서 늦게 보는 것 같습니다. 조제민 | 10-01-04 20:01 | 댓글달기
제목이 멋있습니다.
"허공 속의 대화"라
낭만적인 천진 난만한 어린 소년 같군요.
게시판에 포름이 올라온지도 모르고 폭설에 한눈을 팔았네요.
새알 실종사건에 대해 수사는 교도 회장님께서 하시니
저도 함께 천도재를 모실게요.
영천영지,....미움도 원망도 분별도 내려 놓고,..
업장소멸로 참회하오니 눈물만 주루룩 흘립니다.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곳에서 그냥 참회 합니다.
만남의 희열도 슬픔도 질투도 없구나.!
작년 유월은 잔인한 달이었군요.
그도 없어라! 단지 생각이란 것을 ,... 김형안 | 10-01-07 00:30 | 댓글달기
그런 글 종종 올려주세요. 김인택 | 10-01-15 14:43 | 댓글달기
우리는 언제나 신을 만나지요.
함께하시는 신께 두손 합장 하옵고
감사드리옵니다. 김형안 | 10-07-05 22:17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