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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대각개교절- 일간지 보도내용

강자현 | 2010-04-26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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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원불교가 오는 28일로 개교 95년을 맞는다.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개창한 원불교는 민족종교의 하나로 아직 탄생 100년이 채 안 됐지만,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4대 종단의 하나로 성장했다.

이런 괄목할 만한 교세 확장을 두고 감회가 색다른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교조(敎祖)인 소태산 대종사 때의 원불교 초기 교단에서부터 몸을 담고 활약했던 원로 교무들이다. 이들은 원불교가 처음 교단의 틀을 갖출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원불교와 함께한 산증인들이다.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지난 19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원불교 원로인 김정용(85) 종사(宗師·원불교 법계 중 하나)와 전팔근(81) 종사를 만났다. 생전에 소태산 대종사를 친견한 몇 안 되는 제자 중 하나인 이들은 자상하면서 빈틈이 없었던 생전 소태산 대종사의 모습에 대해 전했다.

원불교 교단 내에서 대종사를 친견한 제자들은 남녀 교무를 합해 20명 정도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중 생전 대종사의 모습을 구술할 수 있는 제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중 김 종사는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4살에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 만났다. 그때 기억을 두고 김 종사는 “대종사의 성체(聖體)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큰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대종사는 신장이 180㎝가 넘었고 목소리 역시 남달라 먼 곳에서도 설법하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면서 “그런 모습은 그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성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가 대종사를 친견한 건 5년 동안이었다. 그가 19살 때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김 종사는 주로 교단 교육계에서 활동했다. 20대 후반에 원광대학교에 처음 부임한 그는 학교 교무행정 등을 관장하다 총장까지 역임한다. 김 종사는 대종사 생존 당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종교 핍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당시 한 일본 순사가 밤마다 와서는 대종사가 머무르는 방 툇마루 아래에 숨어 있었지. 그러고는 대종사께서 누구를 만나는지, 또 독립운동 자금이 오고가지는 않는지 밤새 거기 누워 감시를 했어.”

김 종사는 원불교 경전인 ‘교전(敎典)’이나 ‘대종경(大宗經)’에 그런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어릴 때 직접 듣고 보았던 것들이 지금 와서 보니 경전에도 많이 빠져 있다.”면서 “우리 원로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 종사가 최근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생불님의 함박웃음’(원불교출판사 펴냄)을 낸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편 전 종사는 대종사 생전에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바로 이웃에 살아 생전 그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는 “대종사는 당시 제자들을 꾸지람하는 소리가 이웃에 모두 울릴 만큼 음성이 컸고, 매사 철저한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전 종사는 초창기 원불교 해외 포교 활동의 주역이었다. 그는 ‘Won-Buddisim’이란 영문잡지를 펴내는가 하면, 처음으로 교전을 영문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원불교가 언제까지 한국에만 머무르겠나.”라는 생각에 해외 포교를 겨냥해 서울대 영어교육과에서 영어 실력을 기르기도 했다.

교단 초기 그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원불교는 전 세계 19개국에 60여명의 교무가 진출해 교당을 세우고 해외 포교에 힘쓰고 있다. 그런 발전된 모습을 보고 전 종사는 “생전 대종사께서 머지않아 서양인들이 와서 우리의 법을 가져 가려고 애쓸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지금 그대로 실현된 것 같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또 “원불교는 인간 본성에 있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고 처음으로 말한 종교”라며 “이런 평등 사상이 앞으로 원불교 발전의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도학에 과학 버무려야 세상을 위해 쓰지…" -한국경제신문

 

28일 원불교 대각개교절…제자들이 들려준 소태산의 가르침

지난 19일 오후 전북 익산 신룡동 원불교 중앙총부 구내의 종법실(宗法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년)가 생전에 기거했던 방에 앉은 문산(文山) 김정용 종사(85)는 이렇게 회고했다.

자리를 함께 한 아타원(阿陀圓) 전팔근 종사(81 · 여)도 "나는 총부 구내에서 태어나 대종사님 무릎에서 자랐다. 그 분의 선견(先見)과 개혁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여기 있겠느냐"며 감회에 젖었다.

전남 영광에서 1916년 4월 28일 큰 깨달음(大覺)을 이룬 소태산은 1924년 활동의 중심을 현재 중앙총부가 있는 익산(옛 이리)으로 옮겨 원불교 교단의 문을 열었다. 문산 종사와 아타원 종사는 익산 총부 초기에 태어나 소태산 슬하에서 직접 배우고 자란 인물들.2000명 가까운 원불교 교무(출가교역자) 가운데 소태산을 직접 친견한 제자는 20명가량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아 이들처럼 소태산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제자는 5~6명뿐이라고 한다.

문산 종사는 18세까지 대종사를 직접 모셨고,아타원 종사는 원불교 초창기 여성 교무로서 해외 교화에 앞장선 원불교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문산 종사는 "당시 원불교에 대한 일제의 압박이 매우 심해서 일본 순사가 매일 저녁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툇마루 밑에 숨어서 대종사님이 혹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는지,독립자금을 대주는지 감시했다"며 "우리는 자율방범대를 가장해 짐짓 툇마루 밑을 작대기로 훑고 다니곤 했다"고 전했다.

또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대각전에서 법문을 하면 50m밖에서도 뚜렷이 들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기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영문과를 졸업한 아타원 종사는 "원불교가 앞으로 세계를 오갈 테니 지금부터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며 외국어 공부를 강조했던 분도 대종사였다"며 "초기부터 남녀동권(同權)을 강조하셨고 교단제도도 혁신적으로 정비하는 등 선견이 뛰어났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여고에 다닐 때 대종사께서 '네가 배우고 있는 것은 과학이다. 그러나 과학만으로는 살 수 없다. 도학을 바탕으로 과학을 해야 세상을 위해 크게 쓸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해요. 한번은 학교 성적표를 보여드렸는데 '너 혼자만 공부하려고 애쓰면 안 된다. 너보다 못한 친구를 네가 아는 만큼 끌어올리도록 마음을 써야 진짜 큰 사람이 된다'고 강조하셨지요. "

원불교의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28일)을 앞두고 기자들을 만난 이들은 "대종사님은 20세기를 구원할 구세불로 세상에 오신 분"이라며 "욕심으로 인한 탐진치(貪瞋痴,탐욕 · 분노 ·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원불교 95년… "묵은 먼지 대청소하고 더 멀리 나아갈 것"
-조선일보

소태산 대종사 깨달음 얻은 날… 28일 '대각개교절' 맞아 봉축행사
"물질이 개벽(開闢)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1916년 4월 28일 소태산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우주의 진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 문을 연 원불교는 창시자가 깨달은 날을 최대의 명절로 삼는다.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들은 이 날을 공동의 생일로 삼고 있다.

원기(圓紀) 95년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을 맞아 원불교는 다양한 봉축행사를 마련했다. 4월초부터 '법잔치' '놀이잔치' '은혜잔치' 등 3개 범주로 나눠 전북 익산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특별기도를 비롯해 문화행사, 소외된 이웃돕기 행사 등을 벌이고 있다.

원불교는 원기 100년을 앞두고 국내·외적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주원 교정원장은 19일 기자들과 만나 "아무리 좋은 조직도 역사가 오래되면 묵은 먼지도 쌓이고 정비할 곳이 생긴다"며 "이제 대청소를 하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올해 안에 교구별로 재단을 만들어 분리독립하는 원년으로 삼을 방침이다. 또 내년 9월에는 익산의 중앙총부 외에 처음으로 미주(美洲)총부를 개설할 예정이다. 김 교정원장은 "대종사께서 '장차 중앙 종법사와 국가(별) 종법사가 책임지고 교화하는 체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첫 걸음이 미주총부 건설"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자리에는 소태산 대종사에게서 직접 법문을 듣고 수행방법을 지도받은 전 원광대 총장 문산(文山) 김정용(金正勇·85·본명 김삼룡) 종사와 해외포교에 앞장서 온 전 원광대 부총장 아타원(阿陀圓) 전팔근(全八根·81) 종사 등 원로들이 함께해 소태산 대종사의 생전 모습을 들려줬다. "소탈하고 검소하고, 세상사에 두루 능통하고 미래에 대한 예견이 탁월하시면서 늘 공부를 강조했던 분"이라는 게 두 원로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소태산 대종사의 모습이다.

문산 종사는 소태산 대종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일화를 바탕으로 원불교 경전을 해설한 '생불님의 함박웃음'(원불교출판사)을 최근 펴냈다. 그는 "대종사님은 원불교 총부에서 함께 살던 모든 사람의 사정을 다 꿰뚫고 계셨고 어쩌다 찌푸린 사람을 보면 '공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경책하셨다"고 말했다. 아타원 종사는 "대종사님은 제가 서울에서 여고를 다니다 방학 때 익산에 돌아오면 '요즘 배우는 게 뭔지 아느냐'고 물으시고는 '그게 과학이다. 그러나 과학만으로는 살 수 없다. 도학(道學)이 바탕돼야 세상을 위해 크게 쓰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칭찬 대신 '곁의 사람들도 함께 끌어올리려는 마음이 없이 혼자만 공부 잘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고 말씀하셨다"며 "특히 '앞으로는 코 큰 사람들이 이 법(法)을 비행기로 모셔가려고 애쓸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40년간 해외포교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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