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민 2010-06-02 08: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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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양성,지자본위,공도자숭배,타자녀교육을 4요라고 한다.
교리도에 보면 사은 사요는 신앙문에 들어 있고 삼학팔조는 수행문에 들어 있는데 교리 공부를 처음할 때 (한 20년 전에) 왜 사요가 신앙문에 들어 가게 되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은은 신앙의 대상이니까 당연히 신앙문에 들고 삼학 팔조는 수행의 지침이니까 당연히 수행문에 드는데 사요는 아무리 봐도 국민교육헌장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솔성요론에 넣던지 무슨 '바른 사회 되기 지침’ 같이 한 항목을 따로 하면 될 것을 왜 신앙문에 넣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개교의 동기에서 밝히시기를 많은 사람을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그 지향점임을 명확히 한 것과 같이 이 사회를 평등사회 낙원사회로 만들지 않는다면 혼자 갈고 닦고 부처 되어서 이 사회가 낙원 세계가 될수 없다고 보는 견해에서 사요가 신앙문에 들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부촉품 16장에 의하면 교법 중에 일원 종지와 삼학팔조, 사은은 변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이나 제도는 시대와 국가를 따라 혹 변경할 수도 있다라고 하시었으니 1000년 후 미주 총부에서 이 사요를 신앙문에서 빼더라도 이단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신 것이다.
이 사요가 평등 사회 만들기 지침이므로 자력양성은 인권평등을 지향하고 지자본위는 지식평등을 타자녀교육은 교육평등을 공도자숭배는 생활평등을 지향하는 항목이라고 하여 교리시험에 간혹 나오는 문제인데 지난 5월 23일 교리시험에서 조제민이는 자력양성를 생활평등이라고 답하여 틀리게 되었다. 채점자가 엉터리로 답을 발표하고 넘어 갈려던 것을 지타원 교감님께서 스톱시키고 정답을 새로 밝히셨다.
이제 조제민이는 교리 공부 건성으로 한 것을 반성하는 뜻에서 자력양성과 인권평등에 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놓고자 한다.
자력양성이 생활평등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완전히 월산님 때문이다. 민성권이가 어느날 저녁 늦게 교당에서 일하다가 저녁에 남편 퇴근할 때 되어서 밥차려 주려 가야 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월산님께서 조제민에게 저녁 밥 차려 먹는 것 조차 마누라에게 의지해야 하는 것도 다 자력양성이 안된 탓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기에 밥이라던지 청소라던지 이런 것은 생활이니까 자력양성은 생활평등이구나 이렇게 평소에 생각했으니 시험문제 나오면 틀릴 수밖에.
그런데 이 자력양성의 초기 법문은 남녀권리 동일이었다. 엤날에는 남녀가 인권적으로 평등하지 못하였다. 남녀권리동일이 지금에 와서 자력양성으로 바뀌었으니 자력양성과 인권평등이 개념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생각하기 전에 한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대종사님이 인권평등을 주장하신 것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인권 얘기를 할 때는 권력을 가진 자가 들어라고 초점을 맞추어서 말을 한다. 미국의 흑인노예에 대해서 인권평등을 이야기 할 때는 백인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만델라가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을 외칠때 힘을 가진 백인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제 자력양성과 인권평등을 개념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에 교리시험에 안 틀릴려면, 자력양성이라는 대 사회 포고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게 여자들에게도 평등권을 보장해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 없고 가진 것 없고 억울한 약자들이여, 그대 들이 약한 이유은 그대들 스스로의 자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력을 길러라! 그래서 자력양성이 인권평등과 연결되는 것이다.
강자현 합장 강자현 | 10-06-03 13:12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