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태양의 나라를 가다(2)

김인택 | 2010-06-30 07:56:08

조회수 : 2,820











 


제1일: 5월15일(토)

  그룹투어 일행 31명이 오전 11시반 인천공항에 집합하여, 인솔자와 함께 비행기를 탑승하고 14시2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로 향발하였다. 대형 A340형 비행기가 만원인데 전후 좌석사이가 좁아 불편하였고, 시설, 승무원, 식사는 나무랄 데 없었다. 비행 11시간 만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18시20분(한국과 시차 8시간, 서머타임 실시로 7시간) 도착하였다.
 

  환승구역까지 비행장 구내를 2km쯤 걸어가 3시간여 기다린 뒤 최종 목적지인 리스본(Lisbon: 인구 약60만)까지 중형 A321형 비행기를 탑승하니 이내 간단한 석식이 나왔고 3시간 만인 23시40분(한국과 시차 9시간, 서머타임 실시로 8시간)에 도착하였다.

  인천공항에서 리스본공항까지 약17시간 반. 대형버스로 마중 나온 현지 여성가이드는 어제까지 비가 많이 오는 등 날씨가 나빠서 걱정했는데 개여서 다행이라고 했다. 바로 Leziria Parque 호텔로 가서 투숙한 것이 대략 새벽1시(한국시간 아침9시)였다.


제2일: 5월 16일(일)

  2박 중 실제 하루뿐인 포르투갈 관광을 하느라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먼저 리스본 교외를 한참 달려 신트라(Sintra)에 있는 옛 왕실 별궁(別宮)으로 향했다. 아담하게 꾸며진 별궁 내부를 관람하면서 천정에 까치가 그려진 방, 백조가 그려진 방, 부엌의 화덕에서 연기를 배출하는 독특한 굴뚝을 보았다.

  부근 상점을 돌아본 뒤 산꼭대기에 동화나라처럼 되어 있다는 성채를 멀리 쳐다본 뒤 유럽대륙의 서쪽 땅 끝인
로카곶(Cabo da Roca)으로 향했다. 옛 대관령 길처럼 꾸불꾸불 올라가는 좁은 산길에는 오르내리는 오토바이가 많았는데 주말에는 종종 길과 주차장이 자동차로 메워진다고 한다.

  일찍이 엔리케왕자는 로카곶 언덕 위에서 풍랑이 센 대서양을 바라보며 넓은 바다로 진출할 원대한 꿈과 야망을 다짐했다고 한다. 기념비 앞은 그냥 서있기도 어려울 만큼 바람이 세어 모자를 움켜잡고 구부려서 걸어야 했다. 그곳에는 식당과 기념품점으로 사용되는 작은 건물이 두 채 있었다.
 

  이어 우리가 북쪽으로 파티마(Fatima)를 향해 달리는 동안 가이드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세 명의 어린 목동 앞에 현신(顯身)한 성모마리아 얘기를 들려주었다. 백색의 파티마 대성전(Basilica) 앞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넘쳤다. 
  광장 중간쯤에서 한편은 촛불기도 차례를 기다리는 긴 행렬, 한편은 개방형 소성당에서 진행되는 미사를 볼 수 있었고, 십자가상 앞은 수도꼭지에서 성수(聖水)를 받으려는 신자들이 줄을 지었다. 입구에서 성전까지 길게 뻗은 약2m 너비의 고행(苦行)길(?)에는 무릎걸음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아예 맨 무릎으로 기었다.
 

  부근 쇼핑센터에서 가톨릭 관련 기념품과 함께 진열된 각종 기념품 중에서 빨간 수탉머리가 붙은 코르크마개를 몇 개 샀다. 포르투갈에서 수탉은 행운의 상징이라 한다. 귀로에 해안도로를 따라 유명한 해변휴양지들을 지나갔다.

  리스본으로 돌아가 바다처럼 넓은 테후(Teju=Tagus)강 하구에서 16세기 초에 세워진 3층의 벨렝탑(Torre de Belem)과 엔리케왕자 500주기를 기념하여 1960년 세워진 발견기념관을 관람하고 멀리 4월25일 다리(橋)를 바라보았다.

  다시
에두아르두7세 공원으로 가 저 아래 퐁발후작 광장에 서있는 그의 동상과 강을 내려다보았다. 견학은 못했지만 그곳 해양박물관에 있는 선박과 항해에 관련된 다양한 전시물 중에는 우리의 거북선도 있다 한다.
 

  포르투갈은 8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해온 무슬림(Muslim=이슬람교도)을 몰아내기 위하여 장기간 기독교도들이 벌인 국토회복운동<레콘키스타, Reconquista>의 와중에 1249년 카스티야왕국(스페인)에서 독립하였다. 
  그 후 15-16세기에 활발한 해양활동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 큰 식민지를 차지하고 정치, 경제, 군사면에서 세계적 강국이 되었다. 17세기에 60년간 스페인에 합병되었다가 국권을 회복했으나 차츰 국력이 쇠퇴하였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수도의 재건 시 재상 퐁발(Pombal) 후작의 활약이 컸으나 영국에 경제적 종속이 심화했고, 19세기 들어 프랑스<나폴레옹군>의 침략과 브라질의 독립으로 대국의 지위를 잃었다. 20세기 초 국왕과 왕세자의 암살사건 후 60여년  간 계속된 군부독재가 1974년 무혈 <카네이션 혁명>으로 끝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으나 해외식민지를 모두 상실하였다.


제3일: 5월 17일(월)

  아침 8시 버스로 세비야(Sevilla: 스페인 4위의 인구 70만)로 향발하였다.

  리스본에서 바스코다가마 다리(橋)로 테후강을 건너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해안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었다. 3시간여 만에 국경인 과디아나(Guadiana)강을 건너 스페인으로 들어서서 시계를 1시간 앞으로 돌리고 다시 1시간 만에 세비야에 도착하였다.
 

  세비야는 안달루시아(Andalucia) 자치주*의 수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페라 “카르멘”과 “세빌리야의 이발사”의 무대인 곳이다. 이곳은 대항해시대에 신대륙과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는데, 중심을 흐르는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은 콜럼버스의 2, 3차 항해와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시의 출발지였다. (*주: 스페인에는 17개 자치주와 그 아래 50개 주가 있음)
 

  강가에서 13세기 무슬림들이 세운 망루 황금의 탑(Torre del Oro)을 본 뒤 스페인 최대(유럽에서 제3위)를 자랑하는 카테드랄로 들어갔다. 이곳은 이슬람 모스크를 15세기 초부터 백년에 걸쳐 재건축한 성당으로 뒷날 대지진 때 원래부분은 말짱한데 개축부분은 무너져 무슬림의 우수한 건축술이 드러났다고 한다.

  부설된 높이 98m의 4각형
히랄다탑(La Giralda)은 왕과 귀족들이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계단 대신 탑 주변으로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고 사방으로 밖을 내다보는 창구멍을 뚫어놓았다. 우리는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사방의 창을 통해 아름다운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원래 70m인 모스크 첨탑(尖塔, Minaret)이었으나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이 그 위에 종루(鐘樓)를 얹고 큰 종을 매달았다.

  정교한 성당 안을 한참 돌아보고 밖에 나오니 오렌지 가로수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부근의 옛 시가지를 거닌 뒤 약80년 전 만국박람회장으로 조성된 스페인광장에서 대형 반원형 건물을 구경하고, 이웃한 마리아․루이사(Maria Luisa)공원으로 가 땀을 식혔다.

  저녁에는 옵션인
플라멩코(Flamenco)공연을 1시간 반 관람했다. 작은 무대는 현란한 조명이나 무대장치도 없고, 출연자는 1인(남자)의 창(唱)과 2인의 기타(Guitar) 연주에 맞추어 춤추는  남녀 무용수가 주연 1명이나 1쌍, 조연 4-5명 정도가 전부였다. 심각한 표정, 빠른 박자의 손뼉 치기, 요란한 구두소리를 내며 춤추는 남녀 플라멩코 댄서들의 격렬한 몸짓과 템포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댄서의 복장은 남자가 꼭 끼는 바지, 여자가 상하 몇 단의 주름치마 차림이었다.

  Grand Hotel Solucar에 투숙했다.


제4일: 5월 18일(화)

  모로코(Morocco)로 가기 위해 8시 조금 전 세비야에서 남쪽의 지브롤터(Gibraltar)해협으로 향발하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여기저기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눈에 띄는 걸 보니 바람이 아주 센 지역인 모양이다. 타리파(Tarifa)항에서 간단한 출국수속 후 수백 명이 타는 쾌속선에 올랐다. 아래층에는 우리 버스까지 큰 자동차가 여럿 실렸다. 선상에서 모로코측 관리가 입국을 위한 비자수속을 했다.
 

  배는 11시 조금 뒤 출발하여 맑은 하늘 아래 푸른 대서양 바다를 가르며 12시 반 아프리카 땅 모로코의 탕헤르(Tanger: 인구 110만)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입국수속 후 시계를 1시간 뒤로 돌리고 교외의 식당으로 가서 현지식(쿠시쿠시) 점심을 먹었다. 함께 딱딱한 빵, 오렌지, 바나나가 한 개씩 나왔다. 무슬림 여인들은 모두 차도르를 둘렀는데 수니파여서 덜 엄격하다고 한다. 탕헤르는 해양엑스포 개최를 두고 여수와 겨루다가 졌다.
 

  버스가 남서쪽에 있는 수도 라바트(Rabat, 인구 120만)를 향하여 달리는 동안 가끔 도로와 나란히 해안선이 보였고, 넓은 평야에는 올리브나무 밭이 많았다. 도중에 들리는 주유소 겸 상점에는 반드시 뒤편에 화장실 외에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휴게실이 있다고 한다. 유로화를 쓰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모로코는 화폐가 다르지만 마침 1∈=10디람으로 유로화가 통용되었다. 가이드는 초록색 지붕이 있는 관청 건물과 제복의 경비병은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를 뺏기니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라바트 교외로 다가가자 대규모 신도시개발 공사현장이 보였다. 버스를 탄 채 붐비는 시내를 지나서 왕궁 주변을 돈 다음 바로 하산탑(Hassan Tower)으로 갔다. 12세기 말 Yacoub al-Mansour왕이 세계 최대의 모스크와 첨탑을 세울 계획으로 착공했다가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채 붉은 사암(砂岩)으로 된 절반짜리(44m) 첨탑, 200여개의 기둥과 벽체만 남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아름답고 정교한
모하메드5세(Mohamed V)왕릉<Mausoleum, 1972년 완공>에는 그의 두 아들인 하산2세 왕과 다른 왕자가 함께 묻혀있다.
 

  오후 기온은 38℃를 가리켰으나 그늘은 시원했고 우리가 탄 버스는 에어컨이 고장 나 무척 더웠다. 모로코 최대이며 경제 중심지인 카사블랑카(Casablanca, 인구 330만)에 도착하는 길로 Hotel Alen에서 식사하고 방에 가 쉬었다. 모로코에서 이틀간 머리도 감기 어려울 거라던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더운물이 잘 나와 목욕하고 머리도 감았다.
 

  모로코의 베르베르(Berber)인은 7세기에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아랍인의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여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드리스(Idris)왕조 때 페스를 수도로 삼고 아랍인의 통제를 벗어났다. 11세기 이후 여러 왕조가 한 동안 북아프리카 대부분과 이베리아의 일부를 통치했으나 15세기말 이베리아반도를 뺏기고 많은 무슬림과 유태인들이 모로코로 탈출했다. 다시 아랍 왕조가 통치권을 차지한 뒤 스페인과 오토만제국의 공격으로 국토가 줄어들었으나 17-18세기에 걸쳐 안정을 얻고 여러 부족을 묶어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 마그레브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모로코는 유럽열강 사이의 각축장이 되어 결국 20세기 초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으로 나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6년 독립을 쟁취하고 추방되었던 모하메드5세 왕이 귀국하였다. 


제5일: 5월 19일(수)

  아침 일찍 카사블랑카에서 모하메드5세 기념관을 들린 뒤 대서양 해안에 근년(1980-93년) 신축된 웅장한 하산2세 모스크로 향했다. 이 모스크는 설계는 프랑스인, 규모는 세계 5위, 수용능력은 실내 2만5천명과 실외 8만명, 건축비 8억$, 첨탑높이 210m(세계 1위)를 자랑하는 것으로 장관이었다. 너른 광장 건너편에 회랑으로 연결된 학교 등 부설기관이 있다.
 

  해안에서 맥도날드 햄버거점, 유흥음식점과 별장지대를 둘러본 뒤 버스는 동쪽의 옛 수도였던 페스(Fes: 인구 110만)로 향했다. 도중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때 카사블랑카에서 한인교포(여행사 운영)의 어머니가 만든 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을 내놓아 무척 반가웠다.
 

  페스에 도착하여 잠시 왕궁입구를 구경하고 곧 옛 시장거리인 메디나(Medina)로 들어섰다. 일종의 재래시장으로 우리네 옛 남대문시장 비슷하나,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 주변 에 다닥다닥 붙은 작은 아랍식 건물들이 3-4층으로 높고 주민들이 그곳에 살면서 장사를 하는 점이 달랐다. 이들 건물은 창문이 작고 폐쇄적이어서 대체로 안이 어두웠다.
 

  우리는 골목에서 일행을 놓질 새라 조심하며 금속세공, 무두질, 가죽제품 등 수공업 현장을 구경하고 더러 선물을 샀다. 샌들을 사려다가 그냥 나오자 값을 반으로 부르면서 끝까지 따라붙는 끈질긴 장사꾼 기질이 대단했다. 작은 가게가 밀집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짐 실은 나귀는 우리의 옛날 지게꾼 격이었고, 골목마다 있는 공동화덕에서는 각자가 가져온 반죽을 맡겨서 빵을 함께 구워낸다고 한다. 물건을 팔다가 우리에게 볼펜과 쓰고 있는 운동모를 달라고 조르는 젊은이들도 인상적이었다.
 

  2시 반 페스를 떠나 8시경 막 탕헤르에 도착할 무렵 해가 대서양으로 졌다. 카사블랑카에서 동으로 페스까지 가는 도로변에는 넓은 올리브밭, 해바라기밭, 바나나용 비닐하우스가 많았다. 멀리 높은 아틀라스(Atlas) 산맥이 보였다. Hotel & Beach Club에 투숙했다.

   

제6일: 5월 20일(목)

  새벽부터 서둘러 8시 출항에 맞춰 항구까지 갔으나 풍랑으로 쾌속선이 오지 않아 다음 배를 타기로 했지만 날씨가 걱정이었다. 배가 뜨지 않으면 여행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탕헤르 선창가 거리 구경을 나섰다. 골목길을 거닐며 동네 상설시장과 생선가게, 고산족인 베르베르 여인들이 전통의상 차림으로 하는 채소, 과일, 치즈, 계란 행상을 구경하다가 항구가 보이는 언덕 위 기념품점을 돌아보고 찻집에서 차를 마셨다.

  다행히 우리 배는 10시 반에 출항하여 1시간 만에 타리파에 도착했으나 반대편으로 갈 다른 한국팀은 세찬 바람 때문에 쾌속선 대신 일반객선을 타고 3시간을 가야한단다. 모로코에서 오는 배는 갈 때와 달리 마약밀수와 불법입국 방지를 위하여 입국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시계를 1시간 앞으로 돌리고 지중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달리면서 영국령 지브롤터를 멀리 바라보고 얼마 뒤 길가에 차를 세워 점심을 먹었다. 지체된 선박운항 때문에 급히 전화로 예약하고 들어간 상해주루(上海酒樓)란 중국집은 의외로 음식이 깨끗하고 맛있었다. 오늘 스케줄에 차질이 생겨 계곡의 경치가 좋다는 론다(Ronda)행이 취소되어 아쉬웠다.
 

  우리는 태양의 해안(Costa del Sol)에 푸른 바다를 끼고 숱하게 들어선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를 지나쳤다. 흰 벽과 빨간 지붕으로 된 집이 많았는데, 그런 고급주택과 별장을 쓰는 사람 중에는 외국인도 많을 것이다. 신축 중인 많은 건물을 보면서 남부유럽의 경제위기설 속에 스페인의 부동산경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유럽에서는 우리와 달리 산 아래 뿐 아니라 중턱과 꼭대기까지 집이 들어서는데 도로와 상하수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도중 말라가(Malaga) 못 미쳐 길을 왼쪽으로 꺾어 산길을 한참 달려서 5시 미하스(Mijas)에 도착했다. 높은 산 중턱에 있는 아름답고 작은 백색마을로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관광객이 많은지 골목마다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늘어선 거리를 4인승 마차로 돌아보고 가게에서 기념품을 샀다. 저 아래 지중해안의 멋진 경치와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을 떠나 늦은 저녁에 목적지인
그라나다(Granada)의 Torreon Hotel에 투숙하였다. 말라가는 들르지 않았지만 빛나는 태양과 훌륭한 항구, 최고급 식당, 좋은 beach를 갖춘 “태양의 해안” 개발의 중심도시라 한다.

  • 여행은 언제나 자유로움을 선사하죠.
    멋있어 보입니다.
    ㅎㅎㅎ
    김형안 | 10-06-30 19:05 | 댓글달기
  • 가이드북 이상으로 자상하고 친절한 은산님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10여년전 남유럽여행이 다시 그림같이 떠오르네요.
     중앙 자리는 넘보지 마십시요. ^^곧 뵙겠습니다.
    고달현 | 10-06-30 19:24 | 댓글달기
  • 눈과 마음이 호사를 합니다*^^* 강자현 | 10-07-01 12:44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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