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명 2011-02-11 16: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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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 95년 5월 2일 경강 (신소명)
세전 <부모의 도>
안녕하세요? 21단 신소명입니다. 제가 오늘 가지고 올라온 주제는 세전에서 <부모의 도>입니다. 우스갯소리가 있던가요? "공자 앞에서 문자 쓰지 말라,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지 말라." 그러니 큰일났습니다. "부모"로 몇 십 년을 사신 분들 앞에서, 부모가 된 지 몇 년 되었다고, 부모의 도를 말씀올리겠습니까? 초짜 부모가 실행은 부족하면서 꿈만 큽니다.
전서 735쪽을 보면, "사람의 부모된 이는 부모로서 지킬 바 도가 있나니"로 시작됩니다. 저는 이 구절이 두렵게 읽혀집니다. 부모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부모가 될 수 없고, 내 자식을 사람으로 길러낼 수 없다는 말씀으로 느껴집니다. 하긴 저한테 7년 전부터 아이가 생기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0세 교육의 비밀] [잠자는 아이의 두뇌를 깨워라] 그런 책을 보면 반드시 그래야 할 것 같고, [독이 되는 부모] 이런 책을 보면 내가 정말 독이 되는 부모가 아닌가 반성하느라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화내는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 그런 책을 읽으면 또 내가 정말 아이를 망치는 건 아닌가 괴로워집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아이들을 만나 정말 큰 행복을 누리는데 동반되는 갈등과 번민도 만만치 않으니 정말 부모되기 어렵습니다.
세전의 가르침에서는, <부모의 도> 첫째, 어느 방면으로든지 자녀가 자력을 얻을 때까지 양육하고 보호하는 데 힘을 다하라 했습니다. 어느 방면으로든지, 즉 정신의 자주력을 얻고 육신의 자활력을 얻고, 경제의 자립력을 얻도록까지 자력이 양성될 때까지 힘을 다해야겠지요.
'부모은'에서 "부모가 아니면 이 몸을 나타내지 못하고 장양되지 못한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무자력할 때에 생육하여 주신 대은과 인도의 정의를 가르쳐 주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렇게 해야 함이, 부모은을 내가 내 부모님께 느끼고 감사하듯 내 아이를 그렇게 길러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부모의 도> 둘째, 어느 방면으로든지 시기를 잃지 말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 힘을 다할 것이요. '시기를 잃지 말고'가 적당히 한글 교육을 시키고, 영어 교육을 시키고 이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도학 교육과 과학 교육을 병진시키는 가운데, 모든 교육의 기초가 이루어지는 가정에서 제가 할 일을 생각해 봅니다.
시시때때로 멈추고, 살피고, 돌아보는 공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눈을 사용할 때, 귀를 사용할 때, 입을 사용할 때 ' O' 이 원상을 사용해야, 아이를 제대로 봐 줄 수 있고, 원만하게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의 표정과 말투를 대하면 그 속에 어렸을 때의 나도 보이고, 지금의 나도 보입니다. 큰 아이는 또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을 둘째에게 그대로 합니다. 둘째도 또 따라합니다. 이러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순간순간 살고 있는지가 바로 내 아이들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을 보면, 내가 내 부모에게 받은 부정적인 영향이 내 자식에게도 대물림된다고 합니다. 내가 고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부정적인 인간형이 내 아이들에게서 내 손자들에게 계속 자라난다니 얼마나 위험합니까?
일원상서원문에서도,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이라고 서원합니다. 이번에 석산종사님께서도 이 일원상서원문을 교도가 아니라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암송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강급이 되고 해독을 입지 아니 하기로써"라고 서원하지요. 자식에게 부모가 강급되고 해독을 입는,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시시때때로 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부모의 도' 두번째로 생각됩니다.
<부모의 도> 셋째, 공도에 공헌하도록 희사하여 인도 정의를 빠짐없이 밟으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할 것이요. 이것 또란 부모로서 이런 모습을 보이며 권장해야지, 말로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인도품 22장을 보면, "부모 자녀와 같이 무간한 사이라도 자기가 실행하지 못하는 조건으로 지도하면 그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고... 그러므로 남을 가르치는 방법은 먼저 내가 실행하는 데 있나니라." 하셨습니다.
인도품 45장에서도 "자녀를 가르치는 네 가지 법 중, '심교'로 마음에 신앙처를 두고 바르고 착하고 평탄하게 마음을 가져서 자녀로 하여금 먼저 그 마음을 체받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제일 해주고 싶은 것은 '보호막'입니다. 이 경강 주제를 받을 때가 1월이었는데, 그 때는 아이티 대지진이 있었지요. 얼마 전에는 천안함 침몰로 청년들을 안타깝게 보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닥쳐올 수많은 위험 앞에 아이들을 어떻게 내어놓아야 할까요?
부처님도 정업은 면할 수 없다 하셨는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에서 어떻게 보호막이 될 수 있을까요? 광고에 나오는 투명한 동그란 막 있잖아요, 그런 걸 하나씩 씌워서 살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보호막은, 생각해 보면 기도가 아닐까요?
부모의 도를 다하며 부족한 것은 기도로 채우고, 또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일원상을 모셨으니, 교법 실천이야말로 저를 어머니다운 어머니로 만들어 갈 것 같습니다.
<부모의 도> 넷째, 자녀의 효와 불효를 계교하지 말고 오직 의무로써 정성과 사랑을 다할 것이니라.
부모가 되는 것은 의무입니다. 처음 서두에서 사람의 부모된 이는 부모로서 지킬 바 도가 있다고 하신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받았던 '정성과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 같은데, 제가 엄마가 되어 보니, '무조건'적이 되기 참 어렵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 뜻을 다 들어주셔서 제 의지대로, 고집대로 하고 산 것 같은데, 저는 우리 아들에게 잘 져지지 않습니다. '너 같은 자식 낳아 길러 보라'는 속말이 있지요. 저희 엄마는 그런 말씀 하신 적도 없는데 저는 꼭 저같은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고집부리고 계속 울고' 그랬던 저를 어떻게 키웠냐고 여쭤 보면 그냥 웃으시더라구요.
부모가 되어가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더욱 느끼게 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제 역할이 변하고, 제가 생각하는 '부모의 도'가 또 변해가겠지요.
'부모의 도'는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겠다, 이제는 이렇게 해야겠다, 멈추어 생각하고, 아이를 지켜보며 기다려 주고, 같이 결정하고, 같이 고쳐나가고......이것이 부모의 도가 아닌가, 인간의 도가 아닌가......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교법대로 살고 싶어하는 제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