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학교를 가다 말고 중간치기를 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학교가는 길이 산길을 돌아 가기에 우리는 항상 동네 어귀 당산나무 아래에 모두 모여 학교엘 갔지요. 당시엔 반공을 국시로 하던 때 이고 이승복 어린이에 대해 공부하던 때라서 우린 그렇게 한 둘이 학교에 갈 처지가 못 되었고요.
그날도 상급 학년인 토막반장 (통학반장)과 부 토막반장의 인솔에 따라 학교엘 가는데 동네 형이 꼬드기는 겁니다. 우리 중간에 빠져서 산속에서 놀다 하교 시간되면 슬쩍 끼에서 집어 오면 누구도 모른다고요.
놀자고 하면 밥먹다 숟가락 놓고 달음질 치는 그 시절, 올커니 하고 중간 치기를 했지요. 산속에서 솔가지 꺽어 집도 만들고, 지나가는 개미 잡아서 뒤 꽁무니 혀에 대면 아 그 시큼한 개미산 맛이라니...
집에 돌아 오니 난리가 났더군요. 안그래도 귀한 외동 아들이 행방불명 되었으니... 거기다 시국이 시국이잖아요.. 간첩이 어떻고 저쩧고... 거의 안죽을 만큼 얻어 맞고 그 이후엔 이 나쁜(?) 버릇을 확 뜯어 고쳤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또 나쁜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40년 만에 다시 지은 죄업이랄까요?
이번엔 같이 사는 사람이 꼬드기는 거예요. 임권택 감독님이 "달빛..." 뭐뭐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남들이 보고 얘기하기전에 그것도 개막날 보자는 거예요. 저는 사실 바쁜 일정으로 출근하여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어쩌겠어요? 저의 미래를 볼 때 이 사람 말 안들으면 안될 것 같고, 더우기 앞으로 영화 보자는 얘기는 더이상 안할 것 같은 그 눈빛과, 속으로는 그래도 내가 종이 관련 업무를 하는데 우리의 한지를 주제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더군요.
그래서 오전 땡땡이를 쳤습니다. 조용히 생각해 봤어요. 오늘날의 아버지가 그러하듯,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 께서 그러 하셨듯 남자로 태어난 죄 때문에 늘 일 속에 묻혀사는 대한민국의 불쌍한 남자들.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고 땡댕이 치던 어린 시절로 돌아 가고 싶습니다. 조제민 | 11-03-22 00:59 | 댓글달기
어머니에게 많이 혼났는데, 얼마나 혼났지 어머니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매던 어머니를 그린답니다. ㅎ ㅎ ㅎ
기억이 아니라 아련한 추억이 그립습니다. 김형안 | 11-03-22 10:38 | 댓글달기
아무튼 어린 시절 생각하면 늘 그립죠.
몇주전에 출장길에 고향마을을 들렀는데 많이 변했더군요. 두그로 당산나무중 죽어서 한그루는 잘려 나갔고... 뛰놀던 고인돌은 세월의 변화에도 그저 여여하고요..
아.. 그립죠. 정종문 | 11-03-23 11:06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