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 2011-04-03 16: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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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주제 : 겸 양 (謙讓)
(3단) 김 성 규
- 봄인듯 하더니, 또 눈이 와서 어린 새싹과 꽃망울들을 얼게 하고 또, 때 아닌 저 일본 지진.해일(海溢) 같은 큰 재앙으로 온 세계를 얼어붙게 하더니 . . . . .그래도, 남쪽에는 뒤늦게나마 예쁜 꽃들이 만발하여 그간 움츠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녹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흰 눈이 쌓인 겨울 산도 좋지만, 요즈음 같아서는 그래도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이 따뜻하고 환한 봄볕이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을 듯 합니다. -
오늘 강연의 주제(主題)는 <겸양(謙讓)>입니다.
이 ‘겸양(謙讓)’은, 한자(漢字)로는 <겸손할 겸(謙), 사양 할 양(讓)> 으로서, 그 뜻은 - 문자 그대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또 자신을 미루어 사양(辭讓)하는 그런 <마음가짐-몸가짐>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늘 ‘겸손 하라. 교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또, 겸허할 줄 모르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흔히 ‘좀 더 사람이 되어라’ 하고 질타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또 예로부터, 우리는 <인격!>하면 <예의!>요, <예의!> 하면 = <겸손!>이라고 할 정도로 이 ‘겸손’을 사람 됨됨이의 기본으로 여겨왔고, 또 이 ‘겸손’을 겸양지덕(謙讓之德)이라 하여 모든 훈육의 지표(指標)로 삼아왔습니다.
이렇게 이 겸양은 그 어떤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일상(日常)의 도덕적 삶을 위한 생활 속 자기수양의 표준이 되어 온 것입니다.
이 겸양을 뜻하는 <Modesty> 라는 영어단어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여태까지는 그저 ‘겸손하다. 겸허하다’라는 뜻으로만 알아왔는데, 그런 뜻 외에도 또 ‘순수하다. 점잖다. 꾸밈이 없다’라는 어의(語義)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 겸양이라는 어휘의 함의(含意)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겸양이야 말로 순수하고, 맑고, 꾸밈이 없는 우리의 원초적 심상(心象) 그 자체이자, 또 우리 인격의 기본과 그 핵심을 이루는 자기수양의 참덕목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짧은 한 마디의 말이나 조그만 동작 하나에서도 그 사람의 품성이나 도량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인격을 가늠하는 인성이요 성품인 것이지요.
우리 교단(敎團)에서도 <신분검사>에서 이 겸양을 각자의 수양과 성품을 점검하는 주요요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산종법사 법문집 제4장 훈련 항목에 - 겸양에 대하여 말씀 하시기를“겸양은,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이다. 일은 남보다 먼저하고 공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야 한다. 굴기하심(屈己下心), 즉 몸을 낮추고 항상 마음을 겸허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 겸양을 내겸(內謙)과 외양(外讓)으로 나누시고,“내겸이라 함은 안으로 공경하고 조심하는 마음이니, 늘 교만하지 말고 공손하 라 하셨고,외양이라 함은 양보하는 마음이니, 어떠한 공로나 명예나 의식(衣食)까지도 남 에게 먼저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또 이 겸양은 평화의 근본이 되나, 교만은 다툼의 시작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삶에서 이 겸양만큼 중요한 대목도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원로교무님은 이 ‘겸양’이야 말로 자기수양의 가장 기본을 이루는 마음바탕으로서, 겸손할 겸(謙)자(字) - 이 겸(謙)자 한 글자만 열심히 짊어지고 다녀도 성불(成佛)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외출할 때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살펴봅니다.
내가 얼마나 멋이 있는가 - 이만하면 아무데나 가도 손색이 없겠는가 - 하고 스스로를 점검을 해 보는 것이지요.그러나, 그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마음가짐까지를 그렇게 열심히 비춰보는 것인지는, 글쎄요 . . . . . 아마 각자 자기가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맞는 얘긴지는 모르지만, 특히 우리 여성분들은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다 나름대로는 ‘나도 이만 하면 . . . . !’ 하고 자신의 ‘미모’에 대해 얼마쯤은 자부심들을 갖는다고 하지요?
아마도,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외양뿐만 아니라 자기마음 속 마음가짐까지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면 우리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리고, 또 가르치신바 그대로, 우리들이 신(身). 구(口). 의(意) - 즉, 마음속 생각이나 말 한 마디, 동작 하나 하나를 그렇게 잘 점검하며 살아간다면, 아마 매일 매일 큰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지난 3월은 우리에게 실로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달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번 일본의 지진과 해일과(海溢), 원전(原電)사고 앞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우리 중생들의 모든 것을 본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우리는 저 초자연의 섭리 앞에서 겸허히 머리 숙여 우리자신을 깊이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자연의 섭리. 우주의 진리 앞에서 크게 자각(自覺)을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끝을 맺겠습니다.
첫째, 겸양은 - 자기성찰이 먼저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사(每事)에 (땅에) ‘누운 풀처럼 겸손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들 삶의 가장 기본적인 성찰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 일진데, 스스로를 저 풀처럼 낮추고 마음을 비워야만 그때에 비로소 자신과의 솔직한 대면과 진정한 성찰의 눈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둘째, 나보다는 타자(他者)를 먼저 배려하는 겸양인(謙讓人)이 되어아 합니다.
혹자(或者)는 그렇게 밑바닥까지 누운 <나>를 업신여기고 짓밟고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 밟히고 눌리고 다져지고 아픈 것이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떠한 상대이든지 자비로 감싸 안는 것도 또 하나의 큰 <겸양>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아픔을 견디고 기꺼이 자신을 비워낸 그런 무아(無我)와 상생의 겸양이 아니면 그것은 진정한 <참겸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셋째, 늘 내 마음의 거울을 열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칫, 자만(自慢)하고 교만해지기 쉬운 게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럴 때면 <한 사이즈 더 큰 모자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막혔던 마음의 벽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새 회상은 생명존중의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공감과 협력, 상생의 지혜가 이끌어가는 도덕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크고 넓은 겸양의 정신이 바로 새 회상을 열어가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겸양의 덕목을 통해서 또 다른 <나>를 세우시고, 더 큰 불성(佛性)을 이루시는 교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
< 2011. 4. 3. 법회에서 >
*. (꺼워넣기) : 이 겸양의 한자를 파자(破字)해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겸(謙) = 말씀 언(言) + 겸할 겸(兼)
양(讓) = 말씀 언(言) + 도울 양(襄) 으로 두 글자가 다
말씀 언(言)자를 똑같이 그 변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모든 마음가짐이나 몸가짐은 바로 이 말(언어)로 하여 드러나고,그 언행이 곧 우리의 됨됨이와 성품의 모든 것을 겸손하게도 / 교만하게도 보이게 하는 우리 인격의 거울이자 겸양의 실체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말에는 우리의 영혼(靈魂)과 인격(人格)이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인격은 곧 말이요 <말로부터 시작하고 말로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예의바르고 고상한 말을 <말씀>이라 하여 높여 부르고
교만하고 버릇없는 말을 <말따위>라고 낮추어 부릅니다.말을 주의해서 겸손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겸양은 그 안에 말씀 언(言)자를 2개나 가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
아름 다운 인격 겸양에 대해 감명깊은 감상을 했습니다.
겸을 잘 길러야 함을 절감 합니다. 이선조 | 11-04-09 10:08 | 댓글달기
좋은글 자주 보여주시고 자타원님과 멋진 노후 보내십시요. 박덕수 | 11-05-01 20:00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