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조 2011-07-25 13:34:32
조회수 : 2,356
그 섬에서 나를 찾고 그 파도에 나를 놓고.
-96년 분당교도들과 하섬 훈련원에서-
이 선조 교무.
그 섬도 변하고 싶어 했다. 크게보기
그게 무얼까?
‘하섬은 바다에 뜬 연못 이래요.
하섬은 바다에 뜬 새우라 해요.“ 노래 말을 상기하며 분당교도님들과는 처음으로 정기훈련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장소가 낭만과 의미가 있는 하섬 해상 훈련원이 채택 되었다.
6월5일 변산 고사포에서 하섬 안으로 들어갈 때 안개가 가득하였다. 안개 속에서 보물섬을 찾아가듯이 안개와 물속에 빠져 있는 하섬을 찾아갔다.
하섬 소유의 작은 모터배에 10명씩 태우고 열 한번을 왔다 갔다 하며 109명이 1시간을 겉 쳐 이동되었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정해진 시간에 훈련을 받는 것보다 안개 속을 헤쳐 나가 안전하게 섬 안 에 도착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은생수 (恩生水) 섬 안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식수였던 우물이다. 대산 종사께서 이곳에 물이 있을 거라 하여 몇몇 제자들이 그에 신심을 가지고 물이 나오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바위를 뚫고 또 뚫고 하여 결국 섬 안에 바위에 고인 민물이 솟아 결국 식수를 길어 올려 먹을 수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제는 육지에서 섬 안까지 식수며 전기가 모두 편리하게 시설 되었지만 그 옛날 신심의 상징으로 생긴 은생수 우물을 보면 뭉클한 감동이 생긴다.
나는 이은생수 우물 만 생각하면 스승과 제자와 회상과 진리사이의 통하는 믿음의 열기로 샘솟는 생명력을 느낀다. 어떻게 스승님이 이곳을 파봐라. 그말씀을 밑고 기여히 바위를 뚫고 식수가 나오는 우물을 팠을까? 그정성과 끈기가 전해오며 감동의눈물이 고인다.
그 시절 섬 안에 오면 여름철 훌륭한 간식이 되었던 은생수 우물가에 있었던 무화가 나무는 죽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늘을 온통 주워 담은 섬의 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용화수 떠놓은 듯이 정결하게 만들어져 있고 우리 일행이 올 때를 맞추어 LED로 오색조명이 성성식 成聖式 을 축하하듯이 은은하게 찬란한 문명의 혜택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대학1학년 여름 방학 때 고교선생님과 벗들과 그림을 그리러 왔던 추억. 그때 내가 그렸던 하섬 초당 그 그림이 한동안 파란양철 지붕을 한 생활관 마루에 걸려 있었는데 이제 그 흔적은 붉은 벽돌로 변하여 섬안의 주인처럼 반겨주었다. 교화부에서 유아교육자 세미나를 개최하며 100여명의 교사들과 폭우에 갇혀 동동거렸던 추억. 전주에서 근무 할 때 학생들과 방가로 에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아는 노래를 밤새 연달아 불렀던 추억이 스마트폰에 담은 그림처럼 스쳐갔다.
섬 안은 변함없이 파도소리 정겹고 바람소리 살랑 다정하다. 6월의 목단 꽃이 맑은 공기에 청순하게 피어나 소녀를 만나듯이 기운이 순박해 졌다..
작년에도 서울 신림교도들과 다녀간 섬이지만 나는 올 때 마다 30여 년 전 처음 보았던 오늘도 그 때의 아련한 모습을 찾으며
“ 하섬 새벽별은 씻긴 듯 더 영롱하다.
불타가야 숲 사이로 저 별빛도 그랬던가?
해마다 아쉬운 별아 너는 언제 저별이 될래
그 별이 될래! 이 노래 말이 탄생된 섬 분위기를 그리워했다.
우리 분당 일행들 중에도 한 두 번씩 다녀가신 옛 추억을 더듬어 통통배 돛대 달고 저어 들어가던 그때의 전경이 더 아름다웠다고 회상의 세계에 몰입 하신다.
하섬 안의 초당도 기와집으로 변해있고 명상의 거리 불타가야 숲길도 넓어져서 봄베 자락에 묻혀 나온 이슬 자국이 아쉽고 좁은 길을 걸으며 풀 이슬에 옷자락 젖을 까 조심했던 순수의 아스라이 멀어져 있어서 아쉬웠다. 하섬 의 역사 속에 함께하시는 정양진 교무님의 재판과 하섬 3씨 밭 잘 메는 할머니 맵시 음식 솜씨 좋은 순일교무님 여인의 음식 솜씨. 망치 하나면 뭐든 손으로다 만들어 내시던 손재주 좋은 석원 교무님. 글재주 대왕 법산 법사님. 정전대의 공부로 인재양성하시며 미래를 준비하셨던 대산 여래 의 이야기들이 섬 안으로 들어오는 파도 속에 들어났다 숨겨졌다 했다.
= 섬 안의 잠자리=
1. 낭만의 쉼터 방가루
크게보기
하섬 안에서 즐거운 일 중 하나가 시냇물 소리 들리듯이 들려오는 바다소리와 멀리서 질주하듯이 달려오는 파도소리와 물때에 맞추어 물이 나가는 소리다.
솔 숲 사이로 활기차게 넘실거리는 물결이 예전과 변함없이 정겹다.
들어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정겹고 시원한 파도소리를 리듬삼아 잠을 잘 수 있는 방갈로에 짐을 풀었다. 여름 마다 이곳 하섬에 올 때는 방안보다 원두막 같이 생긴 방가 로 에서 잠을 잤다. 문틈 새로 달빛과 별빛이 들어오면 작은 방갈로 방안은 하늘이 꽉 차 있는 방이 되어 넉넉하면서도 아늑한 마음이 생겨난다. 마음의 안을 객관적으로 들여 다 보는 여유도 생기고 상처 입은 도반이나 청년들, 어린조카들과 이곳에 와서 바다를 향해 기도를 하면 꼭 좋은 일 이 생겼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2. 정전대의 가 탄생된 숲속 종각방
숲속에 대산여래께서 절은 시절에 정전대의를 연마하고 제자들을 길러내셨던 토담으로 만들어진 종각방이 있다. 큰 스승의 혼을 체 받고 싶고 정전에 대한 깊은 연구의 맛을 갈망하며 그 방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그 방은 큰 스승님이 계실 수 있는 조실 방이다. 방갈로가 만들어지기 전에 나는 이 방에서 머무르며 숲속 벌레들과 동침을 했었다. 사실 화장실이 딸리지 않아서 불편하지만 숲속의 음이온 가득한 공기 속에서 흙냄새를 창자 속 까지 들어 마실 수 있는 토속적인 방이다. 대산 스승님이 정진하셨던 성지 같은 방에서 아침저녁 종소리를 가장 가깝게 듣는 다는 법정 때문에 긴 여행 일정을 잡아서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방이다. 그 조실 방에 몸이 불편 하신 중년층 여자교도님들 11명을 주무시게 하며 스승님의 훈증을 온통 체 받으시라고 했다.
3. 태양도 푹 쉬는 토굴 방 크게보기
새로 건축한 장작불을 태워서 따끈해진 구들장에 황토 방으로 꾸민 토굴 방이 있다. 반 지하처럼 보이고 위는 언덕이나 앞은 바다와 가깝게 훤히 트이게 건축되어졌다. 섬 안에서 적멸보궁의 선력을 체험 할 수 있는 방이다. 섬 원장님은 이 토굴 방에서 교무님들이 주무 시라고 했다. 나는 귀하신 남자 원로님들 11명이 주무시도록 했다. 따끈한 방이 그리운 여자 원로님들이 남자들이 산후조리에 들어간다는 농을 하였다.
하루 밤 주무시고 남자 원로들은 코고는 사람 과 코를 골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서 주무셨다며 수산님께서 잠자리에서 있었던 코골이 해프닝을 익살스럽게 구사 하셨다.
여자들이 따끈한 장작불로 데운 방에 잤어야 했다 하시며 불만을 토하면서도 남편님들이 건강하셔야 한다는 사랑 심 때문인지 내생에는 부처님 출산 많이 하시라는 농이 오고 갔다.
하섬이 코고는 소리는 이 방에서만 들을 수 있는 파도소리 아니었을까?
물 건너오시느라 지친 몸이 따끈한 구들방에 누우면 모두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자게 했고 새벽에 일어나 보면 코는 파도가 골았지 사람이 골았는지 숙면 속에서 자연리듬과 인간리듬이 하나로 합일되는 그런 방 이었다.
4. 양실. 2층 별채. 그리고 훈련실
88세 여타원 등 왕 원로어르신 일행은 화장실이 붙어 있는 생활관의 양실로 자리를 잡으시고 젊은 남자교도 들은 바다가 하섬 별장이라 부르는 1층방 3개에서 주무시며 젊은 직장인들과 어린이 부모들은 바다가 보이는 별채 2층에서 다른 교도님들은 생활관과 도서실에서 주무시게 되었다. 일단 자리가 정해지면 평온해 진다. 인연 된 분 들 끼리 바다를 점령하며 고동도 잡고 굴도 따서 향기와 같이 먹고 뛰며 하섬 안을 즐기는 2층 양실에는 젊음이 가득 넘쳤다.
여름 이면 유아교사들크게보기을 초청 하여 교육세미나를 개최했던 훈련 실은 습기가 촉촉하게 베어있다. 우리 분당교도들은 훈련 객이라 좋은 방에 불을 넣고 자고 우리들의 밥을 만들고 하섬안의 전기공사 하는 뒤를 따라다니며 쓰레기를 정리하는 봉사자들은 섬의 주인처럼 칙칙한 훈련실에 자리를 풀고 있어 우리로 어느 곳에서는 주인처럼 양보하며 잘 수 있겠지! 마음을 챙겨보며 평온한 밤으로 들어갔다.
- 자율 속에서-
하섬훈련원 프로그램은 한가롭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연출이 특징 이었다.
오전 내 분당에서 서전주 교당 봉불축하와 금산사 성적지 순례 후 작은 모터크게보기에 안전하게 섬 안에 들오는 일이 저녁 식사 전 까지 프로그램이었다. 훈련은 시작부터 이미 마감을 예측 하였고 도심의 일상에서 섬의 여유를 선택하여 리듬감 있는 시간 속으로 찾아왔다는 시간의 선택이 훌륭한 단련이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염불로 달래며 하루를 마감하고 교당 자체프로그램으로 9시30분에서 밤 10시까지 연못가에 둘러서서 서원의 밤을 진행하였다.
각자 당면한 소원과 영생을 통해 변치 않을 서원을 올리며 3번의 일원상 서원문을 독경하고 염원을 올리며 바다를 향하여 나라와 세상에 다가온 어둠과 모든 업장이 다 물러서길 기도하였다 모두 숙연하고 고요하였다.크게보기
교도들은 밤바다를 보며 명상에 들기도 하고 숲속을 거리기도 하였다.
새벽5시 좌선시간에 모두 일어나 아침 선에 임하였다.
선이 끝나고 아침 산책을 하면서 북쪽 바다에서는 액을 사하는 기도하고 동서쪽 바다에서는 비전 성공을 축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각자와 교당과 교단의 비전을 대종사님과 대산종사의 비젼 과크게보기 짝 맞춤을 해보면서 기도한 그 숨결은 맑은 파도음성과 하나의 호흡으로 뻥 뚫어 버리며 허공법계에 한줄기로 뻗어 나갔다. 빌면 빌수록 빌 것이 많은 게 사람들의 마음인가 마음을 놓고 마음을 찾고 기도가 마음속 깊은 계속으로 자유롭게 인도하였다.
크게보기
세상을 정화 하는 마음으로 5분-10여분씩 풀을 뽑기도 하고 청소를 하고 8시30분부터 오전 1시간동안 선정진에 들었다. 크게보기
20분은 법당 안에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바다를 보며 밖에서 입정을 체험 한 후
10시부터 1시간의 김정륜 원장님의 성리법문 강좌를 듣고 12시에 공식 일정이 마쳐졌다.
급해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어도 흩어지지 않으며 한마음에 하섬 바다를 들이켰다 내품었다 하며 자유롭게 파도소리만 찰알-싹 차알-싹 나를 놓았다 잡았다 하였다.
배가 다닐 정도로 물이 들어오기는 오후4시. 우린 4시 까지 파래 입은 푸른 바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바다의 파도의 파장과 하나가 되었다. 나를 파도에 내던지니 내가 바다가 되었다. 얼마나 닦아야 끝간데 없이 저 바다처럼 내마음이 넓고 자유스러 울까? 고요는 마음을 찾고 마음은 바다와 함께 했다.크게보기
멀리 갔다 짐 퍼주고 새물로 다시 돌아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나를 놓고 나를 찾는 시간 에 메몰 되며 자유로움을 가득 찬 일정을 보냈다.
바지락
우린 하섬 안에서 3끼 식사를 하였다. 식사 때마다 바지락국은 인기가 올라갔다.
밤 2시경 바닷물이 갈라지면 하섬 식구들과 봉사자들이 바닷가에 나가 바지락을 잡아다가
소금물에 잠수시켜 놓으면 저녁내 모래를 토해내고 뽀얗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 아침.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시원한 국으로 밥상에 올라왔다 크게보기
교도님들의 극진한 사랑으로 바지락 국을 즐겼고 바닷물이 갈라지자 바다 속으로 달려가 고동도 캐고 바지락도 줍고 굴도 따며 바닷사람들이 되어갔다. 어느새 고동을 삶아왔는지 맛있게 먹고 추억을 만들고 하면서 바지락에 대한 추억을 만들었다.
오후4시경에크게보기 하섬 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변산 온천 부근에서 바지락 죽 전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민첩하신 헌산 석타원 내외분께서 식사비를 계산하시니 일행들은 더욱 행복해 하는 듯 했다.
모두들 맛과 양에 만족하고 저녁 7시 해질 무렵에 32킬로나 되는 부안에서 군산까지의 새만금 바다 막은 길을 달려오며 바다를 막은 후 기후변화 생태계변화 경제변화가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토론 하며 이제는 바지락도 자연산보다 종자를 양성 하여 생산 하겠지! 하는 생각을 상상하며 어떻게 변하던 현장의 주민이 주인이 되어 국가와 국민이 건강한 나라에서 살기를 빌었다.
나는 10여 년 전 서전주 교당 근무시절에 해창벌 에서 자연을 자연으로 살아있게 하자며 3보1배를 떠나는 4종단 성직자들에게 바다막지 말라고 기도하는 콘테이너 박스 법당을 희사해가며 부안 사람들과 핵폐기장 설치 반대와 새만금 갯벌이 살아있게 개발하가기를 기도하며 바지락을 잡아먹는 불가사리를 잡는 환경을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역사 속에는 변하는 방향이 좋던 틀리던 간에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고 방안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게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3보1배하는 성직자들이 아스라이 손짓 하는 착시현상을 가슴에 품고 밤10시 분당교당에 도착 하자마자 하섬 에서 사온 바지락이 싱싱한가를 살폈다. 바지락은 죽을 써서 병문도하고 미리출발하신 가족들에게 나눠도 주고 칼국수로 된장찌개로 바지락 카레로 변신하며 삼사일 동안의 식탁에서 하섬의 추억과 함께 했다.
나를 놓고 나를 찾고 하는 마음이 파도치는 일과 같다
섬을 떠날 올 때는 좀 더 여유 있게 모터 배에 오르며 사진 촬영의 모델들이 되어 손을 흔들며 하섬 과 바다에 사랑으로 이별하는 모습들이 연출되었다.
아름답습니다.
그 섬에서 나를 찾고
그 파도에 나를 놓고
그 바람에 자유인이 되었네.
분당교도님들 화이팅!
그 화려한 외출처럼 행복한 나날 되시길,..
난 8월에 갑니다.
그런데 신청자가 없네요.
아마도 혼자가지는 않겠죠.ㅎㅎㅎ 김형안 | 11-07-29 11:21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