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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잠화 사랑

이선조 | 2011-09-14 04: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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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잠화 사랑

                                                                                       조 정제

   아침에 일어나 안뜰에 나갔더니 상큼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옥잠화의 재스민 향기였다. 아내가 종종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었으나 내 코는 후각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옥잠화는 한자로 玉簪花라고 쓰고 잠(簪)자는 비녀라는 뜻이니 옥비녀 꽃이 아닌가. 옥잠화의 꽃봉오리가 길게 생긴 것이 비녀 모양과 흡사하다 해서 붙인 이름 같다. 옥잠화는 백학석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꽃 색이 옥색이되 백옥(白玉)이기 때문이리라.

  옥잠화는 호방한 태양을 싫어한다. 뜨거운 해가 뜨면 으레 꽃 대문을 닫아건다. 구름이 짙게 끼거나 비오는 날이면 대문을 배시시 열어놓고, 해질녘 어둠이 대지에 깔리면 그제야 옥잠화는 꽃 대문을 활짝 열고 재스민 향기를 맘껏 뽐낸다. 그러니 체질적으로 월광을 그리는 달맞이 꽃인 게다.

달님이 은하(銀河)를 타고 이슬을 맞으며 지상에 소리 소문 없이 내려앉으면 옥잠화는 재스민 향기로 단장하고 달님과 밤새껏 사랑을 나눈다. 희뿌연 꼭두새벽에 나가보면 달님이 목욕하고 떠난 자리에 백옥잔향(殘香)이 자옥하다.

  나도 요사이 달님을 시샘하듯 옥잠화 사랑에 빠졌다. 밤이면 정원에 자주 나가서 그 향기를 깊숙이 들이킨다. 그러고 나면 심신이 정제된 듯 단잠에 쉬이 빠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옥잠화 향기에 이끌린다. 인공 화장품의 느끼한 향기가 아닌, 상큼한 자연 향기에 내가 반했다. 이 나이에 가까이 사랑하는 백옥여인이 있어 밤낮 재스민 향기에 취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나는 오감 중에 귀와 눈이 예민하고 유달리 코 기능이 둔하다는 평판을 들어왔다. 이제 나이 들어 시신경이 둔해 졌고 그렇게 청청하던 청각이 무뎌졌다. 그러니 눈은 어릿어릿 추상해서 보고, 악 쓰는 소리는 고저장단 운율만 들어라, 한평생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코. 너는 그 후각 기능을 살려서 삼라만상의 향기를 찾아 아름다운 세상의 참맛을 들이라는 뜻인가 보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갈 때의 일이다. 80세 내외의 꾸부정한 할머니가 앉아 일심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옆모습은 주름박이 얼굴인데도 달관한 듯 단아한 자태에서 문득 옥잠화의 향기가 묻어났다.

  옥잠화의 향기는 내 후각 속에 배어 있기라도 한 듯 문득문득 재스민 향이 살아나곤 한다.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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