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운 2011-10-29 22: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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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 오지운
10월에 컬럼 위원이라고 회보에 이름이 있는걸 보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무거운 마음으로 무슨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나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원불교와의 인연에 관해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기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저희 가정은 불심이 아주 깊은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님께서 갑자기 갱년기에 접어들어불면증과 우울증 등의 증세로 마음을 잡지 못하시고 방황하시던 중 누군가가 원불교를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이것이 인연되어 어머님께서 원불교에 입교하시게 되었고 원기85.4.28. 돈암교당에서 법호를 받으셨습니다. 이때도 저는 분당에서 돈암교당까지 어머님을 모셔 드리고 교당 밖 차에서 기다리는 불효자였습니다.지금 생각하면 너무 사무치게 후회가 됩니다. 세월이 흘러 몸이 불편하셔서 분당교당으로 옮기시고 수년이 지나던 해 결국 제일 무서운 췌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원기 90년10월4일 새벽 열반하셨습니다.어머님께서는 평소 깔끔하셨던 성격이시라 병중에 방문하신 교도님들께 추한 모습 안보이시려고 많은 걱정을 하셨습니다. 원불교와 저의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49재 및 천도재를 지내며 어머님을 뵙고자 매일 새벽마다 법당에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법당 어딘가에 어머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고 싶었습니다. 자녀를 대표해 어머님께 고사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 원불교와의 결정적 인연의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고사를 준비하려고 어머님의 유품들을 수습 하던 중 원불교와 관련된 책들 그리고 평소에 어머님께서 사은님께 간절히 기도하셨던 일기장을 보게 되었습니다.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께서는 오직 자녀들 잘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들뿐이었습니다.어머님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불효자였습니다. 이때 자식 중 나 하나라도 어머님 뜻을 받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그 후 분당교당에 정식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죠. 교도님들께서 따뜻하게 반겨주셨습니다.이렇게 인연되어 교당을 열심히 다니던 중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하게 되었는데 박연덕형님께서합창단 입단을 거의 강제적으로 권유하셨습니다(웃음)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죠. 그래서 많은 성가를 접하다 보니 제 마음에 와 닿는 뭔가가 느껴지더군요. 아마도 성가를 통해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열심히 합창단 활동을 하던 중 합창단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어머님 살아생전에 이런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습니다.17회(91.10.15) 제주 전국원음합창제를 계기로 22회(96.10.16) 대구 원음 합창제까지 매년 참가를 해보니 날로 실력들이 향상되고 이로 인해 교도들 간의 음악을 통한 화합의장으로 승화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가는 정산종사님께서 화(和)로 표현 하셨다 합니다. 노래로만 알지 말고 그 속에 진리가 들어 있다 하시며 그 가사를 새기며 경건히 부르라 하셨다고 합니다.저희 합창단은 조대근지휘자를 비롯해 단원들 정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교도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적극적인 지원에 감사드리며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故 敬陀圓 文敬善 子 오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