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조 2012-02-18 10: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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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조(순주)
우연히 그 청년의 근황이 궁금해져서 전화를 해 보았더니, 아버지 초상을 치르는 중이라고 했다.
마음이 쓰인다는 일은 인연이 부르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청년은 엘리베이터 기사자격증을 가지고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가 파산되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 개인사업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게 되어 또 사업이 망하고 빈 털털이 신세가 되어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직장을 구하다가 돈이 떨어지면, 내게 찾아와 며칠 지낼 돈을 요구했었다. 그럴 때마다 병환 중인 아버지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한다는 속내를 마지못해 꺼내던 청년이었다. 한두 번은 돈을 조금 주다가 또 오게되면 막일이라도 해보라고 잔소리를 쏟아냈었다. 그러다가도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는 나라의 현실이 걱정되어 밥이나 제대로 먹나 싶어 찜질방에서 먹을 것을 싸 주곤 했었다.
2년 전 신림교당 증개축공사에 일용직 임부로 소개해 주면서 1년간 교당주인처럼 일하다가 공사가 끝나고 나는 분당교당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그 청년은 그 때 번돈을 아버지 생활비와 약값으로 보내게 되어 기뻐하며 고향인 전주방향으로 내려 간후 1년간 소식이 없었다.
설 무렵 내 핸드폰에 그 청년의 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나는 좀 여유있을 때 답신을 하려다가 십여 일이 지난 뒤 우연히 그와 통화를 하면서 가까운 교당을 찾아가서 천도독경을 하라고 하였다.
어제는 나 후배 부친상에 익산으로 조문을 다녀왔다. 오늘 또 조문을 가기란 부담이 되었다. 한참 망서리다가 그 청년의 아버지는 불쌍하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의 죽음인데 내가 그의 아버지 문상을 가야겠다는 이유를 챙기며 발인식까지 3시간을 남겨놓고 새벽 6시30분에 진안군 마령으로 출발했다. 청년은 내가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듯 울먹이며 문상을 받았다. 청년의 아버지는 10년 전 부인을 교통사고로 잃고 3남 1녀의 자녀를 아무도 출가시키지 못한 채 술과 벗하다 술에 취해서 길가에 쓰러졌다가 그만 78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의 죽음은 발인식에서 울어주던 동네 사람들의 가슴속에 눈물로 흘러내렸다. 입춘이 지나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잘 가셨다가 새봄따라 새기운을 받고 새몸으로 다시 오시고, 금생보다는 더 따뜻하고 슬기롭게 사시라고 심축했다..
상가 조문을 하다 보면 여러 경우가 발생한다.
첫째는 죽은 사람의 인품이 훌륭하고 나에게 잘해주어서 존경과 보은의 인사차 그 일생을 추모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조문.
둘째는 상주가 잘 나고 힘이 있어서 앞으로 관계를 맺으면 서로 도움이 되니까 친교상 가는 조문.
셋째는 죽은 사람이나 상주가 외롭거나 처지가 딱하여 그야말로 위로차 가는 조문.
넷째는 사람으로 살다 맺히고 엉키고 슬퍼하고 기뻐했던 모든 업보를 씻어주고 다음 생에는 이 생보다 더 훌륭한 삶이 이뤄지도록 천도를 빌어주는 조문.
다섯째는 온라인으로 보내는 문자나 이메일 조문과 온라인으로 조의금을 보내는 조문.
나의 이번 조문은 셋째와 넷째에 해당한다. 요즈음 온라인으로 부의금만 보내는 조문과는 달리 성의를 낸 것이다. 6년전에 아버지상을 당하여 조문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그때 조문을 와 주신 법사님들과 선후배 지인들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특히 장지까지 따라와 주신 그 얼굴들은 좀처럼 잊을 수없다. 두고두고 그 고마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 조문은 상주에게 위로가 되고 상가 주변을 훈훈하게 만든다. 오늘 이 조문이 그 청년과 부모 형제들에게 정말 가족 같은 위로가 되었다고 본다. 가슴뚜듯한 조문이 된 샘이다.
돌아오는 길에 전혜경 할머니 남편 열반이라는 소식이 온다.
(2012.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