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국 2012-03-03 15: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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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견자단"이라는 영화배우가 있다.
그 사람이 [정무문]이라는 시리즈물의 주연을 했었는데 그 정무문은 13편짜리 장편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진진". 어린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여동생도 일찍 잃었다.
서양과 일본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혼란한 중국 상해에서 홀로 남겨진 진진을 거두어 준 곳은 무술도장 "정무문".
무술 실력이 익어가던 진진은 중국 침략의 선봉에 있는 일본인 사업가의 딸과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그 일본인 여인은 결국에는 일본인 무사 "이시따"와 결혼하게 된다.
이시따에게 진진은 연적이자 장인어른의 침략자적 사명을 가로막는 방해꾼이며 또한 한번의 대결로 친형을 불구로 만든 원수다.
그러나 이시따는 진진을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에 있는 남자이기 때문이었으며, 또한 이시따 자신도 진진의 인간적인 면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
이시따와 진진은 수없이 마주치며 수없이 대결하며 수없이 번뇌하는 사이가 된다.
일본인들과의 암투 속에서 정무문의 소중한 사문 형제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정무문의 주인인 곽원갑 사범까지 독살을 당하게 되자 진진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처지가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도탄에 빠진 중국을 구해내야 하는 국가적 사명뿐이었다.
그런 진진과의 대결에서 이시따는 패배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 둘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대결 후 이시따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된다.
이시따는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도 못했으며 일본인 무사로서의 승부에서도 패배했다.
불구가 된 친형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강인했던 장인어른은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진과 친구가 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무엇보다도 중국 백성들에게 이시따는 이미 악마였기 때문이다.
이시따는 국가적 사명과 인간적인 고뇌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였고 끝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된다.
시리즈 전체에서 상당한 비중과 존재감.. 그리고 슬픈 남자로서 최선의 선택을 보여준 이시따는 내 기억 속에 주인공 진진 만큼이나 소중한 캐릭터로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날, 13편짜리 정무문이 1편짜리 축약본으로 나왔다.
새로 만든 영화는 아니고, 단지 13편 전체 중에 부분 부분을 잘라 편집해서 만들어낸 것이었는데
그 짧은 영화를 보면서 나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본의 내용에서 왜곡한 것은 없고 단지 일부분의 내용만 노출했을 뿐인데,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원본에서는 죽는 순간까지 '번민하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인간'이었던 이시따가 축약본에서는 뼛속까지 악랄한 완벽한 악당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중국 침략의 선봉에 있었던 이시따의 장인어른(사업가) 보다 더 악랄한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존재로 표현된 이시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
세상을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또는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축약본 영화에 표현된 이시따처럼 그 사람의 일부분만을 보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겠으나
사람을 너무 함부로 평가하는 습관은 어서 고쳐야겠다.
필경에는 이 세상에 수많은 이시따들의 참 모습이 모두 알려져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