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 2012-07-23 20: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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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매 에세이>
편안한 법복
秀山 조정제
원기 96년 꽃피는 5월
교단의 두 어른이 입적하셨다.
5월 7일 오전 10시에는 常山大圓正師님,
오후 2시에는 亢山圓正師님의 발인식이 거행되었다.
형 먼저 아우 먼저 하다,
아우가 큰형님 소식 듣고 급히 따라 나선 것일까.
발인식은 반백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오전 大圓正師 발인식이 끝나고
우리는 영정 뒤이어 함께 걸었다.
반백년 기념관에서 나와 성탑을 향하다가
영모전 앞을 가로 질러 천천히 걸었다.
왜정시대부터 두고두고
교단 구석구석에 족적을 남기신
걸음걸음 無相 公道行의 큰 걸음
흠모의 걸음으로 따라 걸었다.
좌산 종법사님 법좌에 오르신 소식을 듣고
자신보다 훨씬 젊은 신임 종법사님 발아래
오체투지 하고 신심의 본을 보이신 그곳이 어디쯤일까
휘 둘러보고
총부정문으로 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大圓正師님을 영모공원으로 모셔갔다.
육신이 靈呪, 일원상서원문 독경 속에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불타는 영산홍이 곳곳에서 매스게임을 펼치고 있었다.
오후에는 亢山圓正師 발인식에 재가대표로 고사를 올렸다.
단상에 올라 무릎을 꿇앉아 지척의 圓正師님을 올려보았다.
탈속한 청정법신불이 거기 앉아계셨다.
“잘 있게 또 만나세, 그려.”
“다음 생은 미국이 어떨까요.”
대화를 나누며 뒤따라 걸었다.
하루 종일 법복 차림이었다.
헐렁한 법복, 소매가 길고 거추장스러웠다.
소매 밖으로 손을 내밀고 걸어도 불편했다.
두 분의 원정사님도 거기 함께
법복 차림으로 거닐고 계시거니
함께 걷는 원로법사님들을 힐긋힐긋 보았다.
손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법복 속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워보였다.
나도
어느새
손을 잊고
따라 걸었다.
그냥 걷고 걸었다.
내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 사 나도 법복 속이 편안해졌다.
이런저런 핑계로 지나쳤습니다.
글벗들이 쪼그리고 앉아 반갑게 맞아주는 군요.
무더운 찜통 속에 건강 유의 하시고
그댁 安宅도 잘 돌봐야 겠지요? 수산 | 12-07-24 06:12 | 댓글달기
저희 어머님이 제 여동생이 카나다에서 법호를타고 법복 입은 사진을 보시고 "너의 법복 입은 모습보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그 법복은 호사로 입는것이 아니다. 부처님 법 잘 믿고 마음공부 잘 하여서 세세생생 사람몸 잃지않고 일원회상 떠나지 않고 살면서 부모에게 효 하고 미운사람 잘 보는 사람 되어라" 고 메일로 보내셨어요
저희들도 법복이 편해지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박덕수 | 12-07-24 09:06 | 댓글달기
수산님의 <법복>이 이렇게 스처만가도 조바심치며 바둥거리던 뱁새들의 발걸음에
이리도 힘이 솟고, 좁기만 하던 우리들의 뜨락이 이리도 시원스레 밝아지는 것을 . . . . .
왜 수산님은 일찌기 모른척 하셨던가요? 여기서 뵈니 더욱 좋네요. 김성규 | 12-07-24 09:19 | 댓글달기
이글은 진작 초를 잡아두었었는데 최근에 수필화해보았습니다.
거추장스런 법복이 편안해지니 어!신통도 하였습니다. 진 종일 입고 낑낑 대면서 원로 법사님의 훈증을 듬뿍 받아서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수산 | 12-07-24 21:43 | 댓글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