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2012-10-08 10: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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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5일 저희 5단 단회때 대표발표자였던 제가 발표한 내용을 소개해 올립니다.
인터넷 원불교 용어사전에 나와 있는 내용을 많이 인용하였으니 참고바랍니다.
예도편 (禮道編)
〈정산종사법어〉의 두 번째 편. 총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도(禮道)라 함은 예의·예절의 도리. 또는 예의·예절을 행하는 길을 말하는 것으로 예도편은 예도의 본체, 예절과 처세, 예전에 대한 해설 등에 관한 법문 등을 수록하고 있으며 원불교 신정예법의 정신과 그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1장.
예전 (禮典): 원불교 기본교서의 하나. 소태산 대종사가 1926년(원기 11)에 허례를 폐지하고 예(禮)의 근본정신을 드러내고자 「신정의례」를 제정한 후, 1935년(원기 20)에 8월 당시 위로 대종사님을 모시고 교정원장에 재직 중이던 정산종사께서 처음으로 〈예전〉을 편찬 발행하였다. 그 후 정산종사께서는 조국의 광복을 맞아 정식 교명을 반포하신 후, 건국하는 백성의 도의양양과 새 회상의 주체확립을 위하여 1951년(원기 36년) 더욱 수정 보완하여 개편하셨다. 후에 1968년(원기 53)에 다시 지금의 〈예전〉을 발행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회생활 속에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문제를 예의 규범으로 정한 통례편, 가정생활에 있어서 출생으로부터 성년·결혼·회갑·상장(喪葬)·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 일생의 예법을 규정한 가례편, 교단에서 각종 종교의식을 행하는 규범을 정한 교례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불교의 모든 예법이나 예식 행사는 이 예전에 근거하여 행하게 된다.
※ 누구든지 〈예전〉 대로 잘 실행한다면 능히 예의 본말(本末)을 아울러 얻는 동시에 세상의 발전 향상에 한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니라. ←〈예전〉 총서편(원불교 전서 P.554 ∼P.555)
예 (禮) :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칙(儀則)·예법·예의·예의범절.
원불교 전서 〈예전〉 총서편(원불교 전서 P.553) 서두에 일러주신 말씀을 인용하면, 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예(禮)는 하늘 이치의 절문(節文)이요 사람 일의 의칙(儀則)이라」하였나니, 사람으로써 만일 예(禮)가 없고보면 최령의 가치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공중도덕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니, 예법을 정하는 것이 우리 인류생활에 어찌 중요한 일이 아니리요.」
정산종사 말씀하시기를 「예의 근본정신은 공경이요, 우리 예전의 요지는 널리 공경하고 공(公)을 존숭하자는 데에 있나니라 ,...」
체 (體) : 진리의 본래 모습. 진리 그 자체. 우주 만물의 일정 불변하는 모양.
일체 차별 현상의 근본.
용 (用) : 진리의 작용.
진리의 정태(靜態)를 체(體)라 하고 동태(動態)를 용(用)이라 한다.
공능(功能)·공용(功用)이라는 뜻으로, 진리의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
시자 (侍子·者) : ⑴ 종법사나 원로를 모시고 시중드는 책임을 맡은 사람. 종법사의 시자는 비서 역할을 하게될 경우도 있다. ⑵ 선원 주지와 고승의 문하에서 시봉하면서 여러가지 잡무를 처리하는 승려. ⑶ 귀인을 모시고 시중드는 사람.
이공전 (李空田)
1927~ 본명 순행(順行), 법호 범산(凡山). 전남 영광에서 출생. 1941년(원기 26) 부친 이호춘의 인도로 입교하고 이어서 출가. 〈원광〉지 창간에 역할하고 정화사 사무장으로서 정산종사의 뜻을 받들어 각종 교서편찬과 발행에 공헌하였다. 종사위 법훈을 받았다.
예법 (禮法)
: 원불교 예법의 제정은 창립 당시의 혼란한 시대에서 윤리·도덕의 확립, 번거롭고
공리 공론적인 유교 예법에 대한 혁신, 비현실적이고 미신적인 예법을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예법으로 간소화하려는데 그 근본적인 뜻이 있었다.
따라서 원불교 예법의 특징은 시대상황에 알맞고, 사실적이고 간소하며,현실생활에
적합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전통과 혁신을 조화시킨 예법이다.
2장. 「평상시에 평범한 예절을 잘 지키는 것으로 예전 실행의 기본을 삼을 것이며,
.....」
3장. 「일원상을 봉안하지 못한 장소에서도 예를 행하는 이의 마음에 일원상을 대상
으로 하면 ...... 그 마음을 따라 감응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라.」
4장. 열반제때 〈불전에 대한 예〉와 〈영전에 대한 예〉를 한 장소에서 하게 됨에
따라 그 예를 어떻게 표현 해야하나? 하는 질문에 답을 주시는 말씀 :
「법신불의 진리는 우주를 다 포섭하는지라 영위를 불전에 모시는 일도 좋은
일이며 구분에 있어서는 예를 행하는 이의 마음에 불전과 영전을 구분하면
그 마음을 따라 자연히 구분되나니라.」
5장. 혼인,회갑,상장(喪葬),제사 등의 의식을 정도에 맞게 간소 절약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생활에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며 넉넉한 사람에게는 그 한 때의 소비를 절약하여 교화, 교육, 자선등 공익사업에 이용하여 영원한 기념이 되는 동시에 당인에게도 명복이 쌓이게 되고 사회에도 그만한 이익을 주게 된다
그러나, 절약도 정도 문제니 현장에 적당히 쓸 것은 쓰고 다만 허비나 과한 부분만 절약하라는 것이니 이것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이요, 또는 절약하는 이가 한갓 인색한 마음으로 현장에 절약만 하고 헌공이나 공익사업에 정성을 바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예의 원리에 모순된 일이며, ......
6장. 영을 대접하는 데에 참다운 방법 : 음식 차리는 정신을 돌려서 천도기원을 극진히 하며, 물질 희사로써 그 명복을 비는 것.
7장. 부모가 열반하시면 재래 복제에는 상주가 흉복을 입고 3년 거상을 하였는데 이것이 열반인의 영근(靈根)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진리와 시대에 맞게 우리 회상에서는 간소한 의복에 작은 복표 하나를 차서 그 복을 표할 뿐이요 복제기간도 49일로 하게 하셨다. 또 슬퍼하고 추모하는 정성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지 흉복을 입고 안 입고, 복제 기간이 길고 짧은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계자의 보은 사상이 철저하고 못한 데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오직 보은 사상을 보급시키면 인륜 정의가 그 가운데에서 자연히 건널 줄로 믿노라」
8장. 「부모가 열반하시면 자손이 토질 좋은 산지를 골라 장사하는 것은 좋으나, 거기에다 자손의 화복을 부쳐서 공연한 노력을 과히 하며 혹 무슨 연고가 있으면 백골 천동(遷動)을 자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나니.....」 ,「생기가 이미 떠나서 토석으로 화한 그 백골이 어찌 땅의 정기를 받아서 자손의 화복을 좌우할 수 있으리요」
← 묘를 쓰는 것으로 인해 후손에게 화복을 준다고 하는 것을 부정하심.
「영을 위해서는 화장하는 것이 도리어 유익될 점이 없지 아니할 것이니라.」
← 화장 권장.
9장. 「마음에 법신불을 상대하여 무슨 서원을 올린 때에도 일심이 지극하면 비록 어떠한 세계에 있을지라도 서로 통하여 감응되고 또는 그 위력이 미쳐 가나니 이것이 곧 일원의 융통한 진리니라.」
← 우리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법신불이나 또는 무형의 영가를 상대로 우리의 무형한 마음이 간절히 서원하고 축원하여 지극하면 서로의 기운이 감응되고 그 위력이 미쳐나가게 된다. (예) 옛 말에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10장. 열반인을 위하여 법요행사(法要行事)를 하면 영가에게 어떠한 공덕이 미치는가에 대한 질문에답 하시기를 : (1)열반인으로 하여금 도문에 인연을 맺게하는 공덕.
(2)재주나 주례나 대중이 일심으로 기원하면 법신불과 우리가 둘 아닌 이치를 따라 영가의 업장이 자연 녹아지는 수도 있고, 또는 도력있는 선지식이 독경이나 설법을
하면 부지중 열반인의 혜로가 혹 열리는 수도 있고, 또는 헌공을 바쳐서 공사에 도움이 있으면 영가의 명복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또는 한 때의 행사 뿐 아니라 관계자가 그 영을 위하여 많은 공사를 하고 모든 선행을 닦으며 수도 문중에 도덕을 얻은 자손이 있다면 그 음덕이 또한 그 영에 미쳐 갈 수 있나니 ...
법요행사 (法要行事) : 원불교 교법을 널리 펴기위해 거행하는 각종 의식행사.
법회·천도재·기도식·기념재·대재·발인식·경축식·봉불식·봉고식 등의 각종 중요한 의식행사.
11장. 우리가 법신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모든 의식에 심고하지만 서가모니불이나 대종사에 대하여는 심고하는 예가 없는데 그렇다면 법신불과 인격 부처님(서가모니불이나 대종사)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며 신앙하는 도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 하시기를 : 「법신불은 우주만유의 근본이시오 제불제성의 본성이신 바, 제불제성께서는 또한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신 어른들이시니 그러므로 법신불에 대하여 심고를 올리는 것이 곧 제불제성에 대하여 심고를 올리는 것이며 ... 」「신앙하는 도가 둘이 아니나 구분하여 말하자면 법신불 신앙은 진리적 신앙이요, 인격 부처님 신앙은 교법적 신봉이라고 할 것이다.」
12장. 우리 회상에서 대종사에 대하여 봉대하는 정성이 서가모니불에 비하여 더 깊은 까닭과 두 분의 관계, 또한 그 신봉하는 도는 어떻게 구분되는 지 잘 설명해 주셨음.「대종사 대각을 하시고 당신 스스로 부처님에게 연원을 정하셨고, 우리들은 또한 대종사의 회상을 만나서 대종사에게 법을 받았으니, 그 관계를 말하자면 서가모니불은 조부님과 같고 대종사는 아버님과 같으며, 신봉하는 도에 있어서도 조부님은 조부님으로 받들고 아버님은 아버님으로 받드나 그 윤기와 인정이 직접 아버님께 더 쏠리는 것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니라.」
13장. 영모전 위패에 대종사에게 여래(如來)의 명호를 바치셨는데 「대종사 뿐 아니라 어느 대를 막론하고 선진 도인이 인가를 하시든지 또는 많은 대중이 일제히 봉대할 때는 그 실력을 따라 여래의 명호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음. 「법위를 올릴 때에는 반드시 승진에 대한 조례가 있고 법통에 대하여도 조상은 조상이요, 자손은 자손인 그 대수(代數) 구분이 역력히 있나니 ...」
← 종래의 법통을 문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의 조례에 의하여 절차와 심의를 거쳐야겠지만 후진들에게 불법의 문을 크게 열어 주는 획기적인 발상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듬.
14장. 영모전 위패가 대종사 이외에는 다 공동위패로 봉안되어져 있는데 그 수 많은 선령께옵서 어찌 작은 위패 하나에 공동으로 머무실 수 있사오리까 라는 질문에 답하시기를, 「위폐를 봉안하는 것은 선령께옵서 그 위패에 상주에 계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세계에 게시든지 통하여 조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 조감하시는 것이야 천리 만리가 무슨 계한이 있으며 천령 만령이 한 곳에 조감하지 못할 것이 무엇 있겠는가. 그런 즉 공동위패를 봉안하는 것이 영계에 조금도 착란하지 않나니라.
15장. 예문 (禮文) : 각종 예식을 진행할 때에 읽는 글. 원불교의 경우에 통용예문·가례예문·교례예문 등이 있다. 〈일원상 서원문〉·〈반야심경〉·〈천도법문〉·〈성주·영주·청정주〉·〈참회문〉 등의 경문도 예식 행사 때에 읽으면 예문에 속한다. 성년식·결혼식·회갑식·열반식 등 가정의 예식행사 때에 읽는 심고문이나 고유문 등은 가례예문에 속한다. 예회 때의 선서문이나 심고문 또는 사축이재 등의 고축문이나 기도문 등 교단적 예식 행사 때에 읽는 글은 교례예문에 속한다.
묵상심고 (默想心告) : 법신불 사은전에 묵묵히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는 것.
말이나 글로 하지 않고 오직 마음속으로 일원상의 진리를 생각하고 찬양하며 자기의 소망하는 일을 고백하고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
조석심고와 각종 법회나 예식 때에 묵상심고를 많이 올린다.
설명기도 (說明祈禱) : 법회나 기도행사 때에 말이나 글로써 법신불 전에 감사·사죄·기원 등을 올리고 맹세하는 것. 같이 참석한 대중들이 잘 듣고 감동을 받아 스스로 큰 각성이 생길 수 있는 내용의 글이나 말로써 법신불 전에 기원을 올린다. 설명기도는 미리 내용을 작성할 수도 있고, 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당한 내용으로 할 수도 있다.
묵상심고에 상대되는 말.
16장. 예를 행하는 이의 먼저 주의할 바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 : 「무슨 일이나 준비가 없는 일은 분망하고 질서가 맞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예의 실현이 먼저 연마와 준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요, 혼자 있는 때에 방심하고 몸을 함부로 가지면 남이 있는 때에도 그 습관이 나오게 되나니, 옛 성현의 말씀에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 하신 것은 숨은 것과 나타난 것이 곧 둘이 아닌 까닭이니, .....」
17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해서는 안될 것〉과 〈해야 할 것〉들을 일러 주심.
(1) 해서는 안될 것 :
☆ 불의한 말로써 사람의 천륜을 끊는 것. ← 곧 인간의 강상(?)을 파괴하는 큰 죄.
☆ 고의로나 또는 무의식 중 일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지 못한 말을 함부
로 전하여 서로 원망과 원수가 나게 하는 것. ← 그 죄가 심히 크다고 하심.
(2) 해야 할 것.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말을 잘 연락시켜서 종래에 있던 원망과 원수라도
풀리게 하며, 옳은 일에는 상대로 하여금 매양 발심이 나게 하고 그 잘한 일을
추진해 주는 것이 곧 사람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참다운 예가 되고 좋은 공덕이
되나니라.
18장. 「이해와 은현을 막론하고 의리와 예의를 잃지 않는 것이 예의 본의를 알아 행하는 것이니라.」
19장. 「사람이 처세할 때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하나는 〈승상(承上)의 도?〉요, 둘은 〈접하의 도?〉요, 셋은 〈교제의 도?〉니라.」 ← ‘승상의 도’와 ‘접하의 도’ 그리고 '교제의 도'에 대해선 확실한 뜻을 모르겠음.
〈승상(承上)의 道〉? :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도리(?)
〈접하(接下)의 道〉? :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갖추어야 할 도리(?)
〈교제(交際)의 道〉? : 동기간에 지켜야 할 도리(?)
20장. 단독제사와 공동제사의 공덕차이를 물은 학인의 질문에 답하시기를 : 「공덕의 차이는 제주의 정성과 법사의 법력 여하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요 단독이나 합동으로 차가 있는 것은 아니나, 교단적으로 합동 행사를 하면 많은 대중의 공동 추모와 많은 선지식의 합동 축원을 받게 되므로 그만큼 공덕이 크게 되나니라.」
또한 큰 도력을 갖추지 못한 교역자가 재를 모시어도 예전에 정한대로 사심 없이 정성을 다하면 천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심.
21장. 영주 (靈呪) : 정신을 통일하여 천지의 기운과 나의 기운이 하나가 되기를 염원하는 주문으로, 원불교에서는 주술적인 의미보다 일심 청정과 진리에 대한 귀의를 목적하고 있다. 영주는 정산종사가 〈예전〉을 편찬할 때 제정하였다. 주로 기도시간에 많이 외우는데, 마음이 어지러울때, 번뇌망상이 끓어오를 때,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외우면 큰 효과가 있다. 보통 때에도 이 영주를 외우면 정신수양에 큰 힘을 얻게 된다.
「천지영기아심정(天地靈氣我心定) 만사여의아심통(萬事如意我心通)
천지여아동일체( 天地與我同一體) 아여천지동심정(我與天地同心正)」
영주의 뜻을 해석해본다. 이 천지에는 한없이 신령스럽고 불가사의한 큰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 나의 마음에 분별주착심과 산란심을 끊어 세상경계에 흔들리지 않으면 천지의 기운과 나의 기운은 하나가 되어 우주에 가득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 모든 일이 나의 마음대로 이루어지게 되고, 내 마음은 세상의 모든 일을 훤히 꿰뚫어 손바닥 위의 구슬보듯 한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천지와 나는 하나가 되어 천지가 곧 내가 되고 내가 곧 천지가 되어 나는 천지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나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이 되고 천지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어, 그 하나된 마음에는 삿되고 거짓된 것은 없고 오직 진실하고 바른 것 뿐이다. 내 스스로가 우주의 창조적 주체자가 된다.
청정주 (淸淨呪) : 일체의 재액을 면하고 원한을 풀며 죄업에 물든 마음을 청정히 하기 위하여 외우는 주문.
「법신청정본무애 아득회광역부여 태화원기성일단 사마악취자소멸
(法身淸淨本無碍 我得廻光亦復如 太和元氣成一團 邪魔惡趣自消滅)」
의 28자로 된 주문이다.
그 뜻은 법신불은 원래 청정무구·청정무위해서 어떠한 것에도 걸리고 막힐 것이 없는 것이다. 깨끗하고 더러운 것도 없고, 원망과 불평도 없고, 애착과 탐착도 없고, 선과 악도 없고, 두려움과 공포도 없고, 불평과 불만도 없고, 아름답고 추한 것도 없어서 그 어떠한 것에도 걸리고 막힐 것이 없어서 자유 자재하는 것이다. 나의 본래 마음도 역시 청정법신불이다. 회광반조해서 자성본원을 깨치고 보면 차별심·분별심·망상심·집착심·증애심·애착심·번뇌심이 없는 것이다. 법신불처럼 내 마음도 역시 천만 경계 속에서 자유자재하는 것이다. 태초에 이 우주에는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기본이 되는 큰 기운이 뭉쳐 있는데, 그것은 곧 만물을 살리는 화(和)한 기운이다. 그 화한 천지의 기운을 내 마음속에 가득 채우고 보면 백천사마며 육도윤회가 스스로 사라져 버리고 오직 해탈·열반의 길만이 앞에 크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미움도 원망도 없고 사랑도 원수도 없는 것이다.
청정주는 애착·탐착·원착을 끊지 못하여 천도받지 못한 영혼의 천도를 위하여 많이 독송한다. 누구나 이 청정주를 지성으로 독송하면 마음이 청정무구해진다.
〈예도편〉을 연마하면서 제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과 느낌.
예도편을 연마하면서 전통있는 선비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신 정산종사님께서는 7세부터 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웠고 또 14, 5세 부터는 당시 유명했던 송준필 문하에서 한 철씩 한학을 공부하였기에 고루한 유교적 사상이 깊은 소유자 일거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대단한 실학적 사고와 크게 열린 생각을 가지신 성자라고 보여집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과 그리고 여러 선진님들과 함께 겪어야 했던 혼란했던 일제강점시대와 조국해방, 그리고 원불교라는 이름을 새로 내 걸면서 새 시대에 걸맞는 제도를 조속히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당시의〈예전〉의 편찬을 서두르신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하리라 생각됩니다.
또한 정산종사님이 원기 36년 예전의 편찬을 마치셨지만 당신 스스로도 이 예전이 완성된 것으로 보지 않았고 앞으로 좀 더 다듬어야 함을 일러 두심. 2장 맨 끝에 하신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 「너무 자상한 주해설명은 앞으로 예전을 완정할 때에 줄일 수 있는 데 까지 줄이자.」
예도편에서 정산종사님의 실학적 사고와 열린 생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2장에서 : 「무슨 법이나 고원하고 심오한 이론은 기특하게 생각하나 평범하고 비근한 실학은 등한히 아는 것이 지금 사람들의 병이니」
6장에서 : 「수의는 묵은 옷이라도 새 옷과 다름 없는 옷이 있다면 기어이 새로 지을 것이 없다」
7장에서 : 부모가 열반시에 상주가 흉복을 입고 3년을 거상하는 것을 열반인의 영근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시고 진리와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함을 강조하심.
(우리 원불교에서는 간소한 의복에 작은 복표 하나, 그리고 복제기간은 49일로 함.)
8장에서 : 영을 위해서는 화장하는 것이 도리어 유익할 수 있다고 하심.
그 외 예도편 12장에서는 서가모니불과 대종사님의 관계, 그리고 우리는 왜 대종사님에게 봉대하는 정성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는지를 잘 설명하심. (서가모니불 : 조부님에 비유, 대종사님 : 아버님에 비유)
그리고 그동안 제가 교당에서 열반제나 법회에 참석할 때 의문이 났던 두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는데 그 대목은 하나는 4장. ‘불전에 대한 예’와 ‘영전에 대한 예’를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 하시기를, 예를 행위를 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자연히 구분된다고 하신 것과 다른 하나는 우리가 심고를 모실 때 법신불에만 하고 대종사님께는 안 올리는 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11장 말씀에 나오는데 소개해 올리자면「법신불은 우주만유의 근본이시오 제불제성의 본성이신 바, 제불제성께서는 또한 자성을 떠나지 않으신 어른들이시니, 그러므로 법신불에 대하여 심고를 올리는 것이 곧 제불제성에 대하여 심고를 올리는 것이 되며」
또한 13장에 여래(如來)의 명호를 대종사님께도 바쳤지만 후진들도 어느 대를 막론하고 절차와 검증을 거쳐 그 실력에 따라 여래의 명호를 제한하지 않겠다라는 말씀은 후진을 위해 불법의 문을 크게 열어 주겠다는 열린 생각을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깊게 동감되는 대목중 하나는 16장 말씀중에 「무슨 일이나 준비가 없는 일은 분망하고 질서가 맞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예의 실현이 먼저 연마와 준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요, 혼자 있는 때에 방심하고 몸을 함부로 가지면 남이 있는 때에도 그 습관이 나오게 되나니」 와 17장 말씀중에 「옳은 일에는 상대로 하여금 매양 발심이 나게 하고 그 잘한 일을 추진해 주는 것이 곧 사람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예가 되고 좋은 공덕
이 되나니라.」 ← 17장 말씀은 우리 5단 단원님들이 평소 저에게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