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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수산 | 2013-02-08 12:24:16

조회수 : 2,317

   5매에세이            은하철도 999

                                                              조정제

  언젠가 밤늦게 신분당선을 타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어쩌다가 맨 뒤 칸에 타고 기차꽁무니에 펼쳐지는 불빛을 바라다보았다. 꼬불꼬불 유선형의 불빛을 헤집고 광속으로 내닫는 정경이 짜릿한 황홀감을 자아냈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우주 속으로 달리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우주기차가 무수한 별들이 길을 급히 터주는 속으로 요리저리 내닫는 기분이었다. 내가 70고개에 접어들어 드디어 우주선을 타보는 구나.

   은하철도 999. 일본의 대표적인 드라마 만화지만 지금 나이 40대에 들어가는 장남이 즐기던 영화였고 그 주인공 일본 이름의 <데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철이>로 통했다. 용감한 철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하여 은하기차를 타고 먼 우주여행을 떠난다. 철이는 수많은 별들을 지나며 결국 기계인간이 살고 있는 기계제국에 도착한다.

   지하철 안을 휘둘러보았다. 저기 건너편에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와 메텔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해병대 모자를 눌러쓴 철이는 짙은 안경을 걸쳤고 밀리터리 룩의 메텔은 마스크 까지 썼다. 사람들은 작은 전자기계를 손에 쥐고 내려도 보고 앉아있었다. 손은 바쁘게 움직였고 때때는 혼자 실실 웃었다. 서로 마주 얼굴을 보고 대화하거나 웃는 이들은 없었다. 그새 책이 없어졌는지 책 읽는 사람은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신분당선은 무인자동으로 운전되는, 기계인간들이 타고 다니는 우주기차였다.

   우주기차는 메탈음악이 울리더니 찍∼ 소리를 내고 판교라는 우주공간에 섰다. 쭈르륵 몇 사람이 내리고 몇이 탔다.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드디어 온천지가 환한 강남이라는 별천지에 내렸다. 화상에서는 기계군상이 강남스타일이라는 기계 춤을 추고 있었다. 더러는 기계 쌍쌍이 인간의 흉내라고 내려는 듯 과하다 싶은 기계적 애정행각을 펼치고 있었다.

   다시 우주기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분당에서 내렸다. 천당 밑에 분당이 아니라 천당 옆에 분당이라는 곳이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건물 마다 불빛이 총총히 흘러나왔고 은하수는 가물가물 졸고 있었다. 별안간 별똥이 긴 꼬리를 물고 떨어졌다.

   나는, 주인공 철이 기계제국에 도착한 후 한참 만에 철들어 느끼듯이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 보다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인간으로 되돌아오고 싶었다. 사람이다 외치고 싶었다.

  •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와 일맥상통하여 여기 실었습니다. 수필문학 <5매에세이>에 실을 것입니다. 혹 신분당선을 타게 되걸랑 맨꽁무니에 서서 한번 우주공간 비행체험을 한번 해보세요. 수산 | 13-02-08 12:29 | 댓글달기
  • 수산님! 저도 신분당선이 무인운전 된다기에 호기심으로 일부러 타본 적이 있었는데, 맨 뒷칸에 서서 보는 열차가 어둠 속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이런 장면을 본 듯한 생각이 들었는데 수산님의 글을 뵈오니 그것이 바로 은하철도999 장면이었군요. 많은 깨우침을 주신 감각감상을 고맙게 받들겠습니다. 이대연 | 13-02-09 08:54 | 댓글달기
  • 이대연님. 맨 뒤칸에 타보앗그먼요.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는 느낌? 그것도 색다르네요.
    세상이 온통 기계화되어가는 듯 해요.
    수산 | 13-02-10 17:34 | 댓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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