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익 2013-03-16 11: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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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존재
어느날 새벽 승산님께서 "대종사님은 '나라는 존재는 공부를 하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본래)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존재'라고 하셨다"하시던 말씀이 귀에 쟁쟁하게 울렸습니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이 일며 목이 메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 모든 숙제를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무엇인가 부족하고 허전했습니다. 저는 자기도취의 감옥에 갇혀 괴로웠습니다. 분별과 주착이 따르지 않은 본 모습으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이거나 '나의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는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투영되어 비춰지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늘 생노병사에 괴로워하는 내가 있었고, 수행해야 할 내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 한 법어는 나는 본래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는 그런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더 이상 구할 것이 있거나, 추구해야 할 것이 있거나, 의지해야 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이미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여 더 이상 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의 말씀이며, 위로의 말씀이며, 격려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접근으로는 알 수 없고, 우리의 온 몸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내가 원만구족하며 지공무사한 존재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시방삼계가 다 내 집이니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닙니다.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니 이 얼마나 통쾌합니까?"
삶의 목적은 특정한 일의 성취가 아니라 인생 그 자체의 수행입니다. 즉 우리의 타고난 참 모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삶이란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입니다. 생의 목표는 충분히 태어나는 데 있습니다. 운문선사는 '날마다 좋은 날('부처님 오신 날'에 하신 법문이므로 실은 '날마다 생일'이라는 의미)'이라는 법문을 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부처가 되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무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성불이 바로 삶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란 나라는 한 물건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고, 나인 존재를 사용하는데 있습니다. 법어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사용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행은 곧 인사를 주고받거나,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는 등 일상의 세세한 일을 성심성의를 다하여 수행하며, 성의를 가지고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부처'인 것을 제대로 알았다라면 더 이상의 욕심도 아쉬움도 없이 至公無私한 부처의 길을 걸었을 것인 즉, 하지만 한발 한발 그 究境處를 찾아가는 즐거움도 바로 우리들이 더욱 좋은 날들을 바라 오손도손 함게 人生을 살아가는 妙味가 아닐지요 . . . . . . 김성규 | 13-03-17 09:04 | 댓글달기